'정말 그래서였나' 싶은 생각 때문이다. 삼성SDS가 입찰 조건을 속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가 명백한 상황에서도 검찰은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이 '로비'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었다. "검찰에 뭘 기대하느냐, 삼성과 법정에서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때는 '그래도 혹시', '설마'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PD수첩>을 보고난 지금, 모든 게 분명해졌다. (☞관련 기사: "기업가 정신? 삼성이 죽였다", "중소기업, 삼성과 인연을 맺어 망가지다", "삼성과 맺은 질긴 악연, 싸워서 끊겠다", "재벌에 유리할 때만 '시장경제' 들먹이나", 삼성SDS, 사기 혐의로 검찰 조사)
한국 사회에서 사업을 하려면, 검찰을 포함한 권력기관에 두루 돈을 뿌려둬야 한다는 것 말이다. 여기에는 작은 건설업체부터 거대 재벌까지 예외가 없다.
그저 '제품만 잘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방송을 보는 내내 가슴을 쳤다.
검찰 수뇌부는 <PD수첩> 방송에서 거론된 검사들을 조사한다고 한다. '제대로 될까' 싶으면서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하는 마음도 든다. 그러나 여전히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 조성구 전 얼라이언스시스템 대표이사. ⓒ프레시안 |
한때 미국 시장에서도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았던 회사가, 한순간에 공중분해 됐다. 삼성을 고소하자 거래처들이 일제히 계약을 취소했고, 사장인 나는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랐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는 지금 지방에서 생선을 팔며 근근이 지낸다.
도마에 오른 생선 머리를 칼로 내리칠 때마다, 생각해 본다. 삼성이 계약조건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하는 생각이다. 그때 발끈해서 삼성을 고소하기로 했던 내 결정이 과연 잘못이었을까. <PD수첩>과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고 난 지금, 모든 게 헷갈리기만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가 썩은 검사들에게 오입질이나 시켜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 대기업의 횡포 앞에서 굽실거려가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인데도, 굳이 창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힘 있는 곳에 든든한 연줄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바보짓'이라고 말하고 싶다. 삼성과 검찰이 바뀌지 않는 한, '빽' 없는 사람이 한국에서 창업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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