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코 앞에 둔 민주당의 내부 균열이 심상치 않다. 호남을 중심으로 한 공천 갈등은 정세균, 손학규, 정동영 등 당의 지도급 인사들의 불화설로 비화되고 있고, 자연스럽게 차기 당권 구도와 연계된 해석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지방선거의 승패에 따라서는 심각한 후폭풍을 수반할 수 있는 먹구름이다.
손학규 복귀 임박?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는 1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4.19 50주년을 맞이하며'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려 "국민들이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에게 주문하는 것은 명확하다"면서 "'사욕'을 버리고 '역사'를 만드는 큰 정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 야권은 이익 앞에 '야권 대연합으로 희망의 정치를 만들겠다'는 대의를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며 "국민과 국가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정치하겠다면 어느 국민이 믿고 정치를 맡기겠는가?"라고 비난했다.
손 전 대표는 특히 "각 당이 지방자치단체장 몇 명 당선시키는 것만으로 이번 선거에서 승리했다 할 수 없다. 야권 대연합으로 국민과 함께 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며 "모든 민주세력, 진보진영은 결연한 자세로 나서야 하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면 나 역시 몸을 사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야권 연합'에 대한 원칙론을 강조한 것 같지만 '사욕', '지방자치단체장 몇 명 당선…' 등을 언급한 것이 다른 군소야당이 아니라 정세균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당 관계자는 "2006년 지방선거 때 '전패'의 경험에 비춰보면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산술적으로는 승리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손 전 대표가 이번 지방선거의 '승리' 기준을 '야권 연합 성사'로 한 단계 높여 지도부를 압박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손 전 대표 본인은 정 대표의 갈등설에 대해 이날 기자들에게 "소설"이라고 일축했으나 당 안팎에서는 최소한 손 전 대표가 이전과 달리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적극적으로 본인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정세균 견제론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예전 재보궐 선거 때는 '부르면 간다'는 식이었는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점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전당대회 목전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의 시기적 특성상 확실하게 존재감을 남기지 않으면 향후 전당대회와 이어지는 총선 대선 구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지방선거 국면에서 급속히 세를 불려가는 정세균 대표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정 대표 측에서는 지방선거 승리 업적을 바탕으로 한 당권에 재도전은 거의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분위기다.
한 비주류 측 의원은 "손 전 대표는 대권에 뜻을 두고 있어 당권 싸움에서는 최대한 거리를 두며 신비주의 포지션을 유지하려 했으나, 계속 거리를 두다가는 세를 다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지방선거를 계기로 당권 싸움에도 본격 뛰어들지 않겠느냐"고 해석했다. 한 당직자는 "손 전 대표가 느닷없이 나오는 것 같지만 이미 몇 달 전부터 '내 새끼'라고 하면서 측근들을 열심히 챙기고 다녔다"고 전했다.
비주류, '반 정세균'
국회 재입성 후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정동영 의원도 손 전 대표와 처지가 비슷하다. 정 의원은 전주 출마라는 '원죄' 때문에 전북에서의 공천 갈등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있고, 그가 이번 전당대회에 직접 출마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하지만 정 의원이 최근 비주류 측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늘리고 있고, '반 정세균'의 구심점으로 권토중래를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게다가 대선, 총선에서의 잇따른 패배, 전주 출마 논란으로 인해 세력이 급속히 위축된 상태라 이 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의 당 내 잡음도 '대안 세력'에 대한 욕구를 키우고 있다. 한 3선 의원은 "비주류만 아니라 주류 내에서도 지도부의 리더십이나 리스크 관리 능력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고 있다"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욕구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이 지점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는 인물은 4선의 천정배 의원이다. 천 의원은 최근 '뉴민주당 플랜 비판 토론회'를 여는가 하면 '쇄신 모임' 등을 이끌면서 차기 당권 도전에 대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 정세균-손학규-정동영-천정배 등의 세력관계와 합종연횡도 변수다.
지방선거, '야권 연합'으로 공적 경쟁
사실상 당권경쟁이 시작된 셈이지만 당분간은 '심심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 시점이 지방선거 승리에 매진해야 하는데, '아군의 등에 칼을 꽂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주류 의원들도 사석에서는 상당히 거칠게 정세균 대표를 공격하지만, 표면적으로는 공세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그래서 초점은 당분간 지도부 비판이라는 부정적(네거티브) 전략보다 지방선거에서 공적을 세우는 긍정적(포지티브) 전략을 구사하며 당권 경쟁 입지를 닦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천정배 의원이 최근 야권 선거연합 테이블에 대표 선수로 나서겠다고 자천 타천 나서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손 전 대표가 야권 연합 지방선거 승리의 기준으로 내세우며 "몸을 사리지 않겠다"고 한 점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세균 지도부가 선거판을 다 짜 놓은 뒤 '공동 선대본부장'으로 얼굴 마담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대표 측에서는 "협상 중에 장수를 바꿀 수 없다"고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로써 6월 지방선거, 7월 재보궐 선거가, 8월 전당대회로 이어지는 정치 일정은 사실상 개막됐다. 민주당 차기 당권을 둔 미묘한 신경전이 어떤 긴장관계를 조성하며 전개될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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