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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를 이건희라 부르지 못하고…"

[삼성을 생각한다] "'우리 안의 이건희'와 싸울 때"

사람들은 대개 이중적이다. 옳은 일을 알고 실행하지 않는다. 말로는 비판하고, 머리 속으로도 욕하면서 현실에선 비판의 대상이었던 그들처럼 산다. 조금은 괴로워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만 더 받을 뿐이다. 그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생각과 행동을 분리시킬 뿐이다. 우린 철학가나 운동가가 아니니까.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켜야만 하는 건 그네들 의무니까. 하지만 정말 그네들만의 몫일까?

400페이지가 넘는 종이에 삼성의 범죄, 정계, 법조계와의 검은 관계, 이건희 일가에 대한 가십까지 빼곡히 채운 책을 보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했던 그 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왕관을 만들었던 백성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걸 들어주는 대나무 숲이 된 심정으로 꼼꼼히 읽었다. 나도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이야길 퍼뜨리라 생각하면서.

자본이 선악을 결정한다

삼성이 노조를 막기 위해 저지르는 악랄하고 치밀한, 때로는 불법적인 방법들, 반도체 공장에서 불치병을 얻어 채 피지 못하고 쓰러진 목숨들, 회사의 재산을 개인의 것으로 만들고, 자본으로 국가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이건희를 비롯한 삼성의 몇몇 사람들. 피상적으로 아는 삼성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다. 물론, 외국에서 한국의 위치는 잘 몰라도 삼성 휴대폰은 알고, 몇 가지 제품이 세계 최고라는 점, 좋은 부분도 많이 알고 있다. 문제는 이 사회에서는 자본이 선악을 결정짓는다는 거다.

삼성의 나쁜 점을 알면서도 대학생들은 삼성맨이 되기 위해 SSAT 스터디를 만들어 공부한다. 한창 삼성을 자본주의의 악의 축인 것처럼 비판했던 사람이, 이젠 이건희를 이건희라 부르지 못하고 사적인 자리에서도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걸 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개 개인에게나, 국가 조직에게나, 아니면 국가에게나, 자본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구나. 아무리 삼성이 이런저런 불법을 저질러도, 나도 알고 세상도 알고, 열이 받을지언정, 그 조직은 나를 먹여 살리고,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그러기 위해서 국가 조직을 조금 마음대로 움직일 뿐이야. 이렇게 우리는 다시 회의에 빠진다. 다들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보아왔기 때문에 미리 포기한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국가가 나서서 비호해주는 자본의 무시무시함과 힘들게 맞서야 한다. 이렇게 자본은 강자이면서 선이 되어버린다.

▲ 삼성특검 사건 재판 풍경.이 재판을 통해 이건희 회장과 그 가신들은 면죄부를 얻었다. ⓒ손문상

결국 나의 문제다

누구를 욕할까.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고 삼성맨이 된 친구들을 욕할까, 아니면 삼성 비리의 정점에 있는 이건희 일가? 그들이 관리해 온, 그리고 기꺼이 받아주고 있는 국가 조직? 언론? 아니면 전부 욕하고, 그걸로 끝낼까? 난 우선, 회의에 빠져, 현실에 지쳐, 사회 의식이 무능력해진 나 자신부터 욕해야겠다. 거대한 힘과 싸우는 일은 그네들의 몫으로만 맡겨뒀던 나 자신부터. 이 모든 건 내가 속한 체제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결국 영향을 받는 건 우리 모두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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