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남한강은 처절히 파괴되고 있고, 거대한 준설토 산은 심각한 황사의 원천이 되고 있다. 바야흐로 '토건 악마'가 막대한 혈세를 퍼먹기 위해 이 나라를 극단적인 파괴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토건국가를 복지국가로!' 우리는 서둘러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
참담한 '4대강 죽이기'의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토건국가에 대해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토건국가의 개혁은 한국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구조적 과제이다. 물론 평화 체제의 구축, 재벌 국가의 해체, 학력 경쟁의 완화, 생태 위기의 해소 등 한국의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는 많다.
그러나 이런 여러 과제들의 바탕에 토건국가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막대한 혈세를 탕진해서 소중한 국토를 파괴하고 후진적 부패를 조장하고 망국적 투기를 촉진하는 토건국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토건 정치와 토건 경제의 덫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선진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내가 토건국가의 문제와 그 개혁 방향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도 어느덧 7년째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 동안 이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확산되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문제는 더욱 더 악화되었다. 진보와 개혁을 외치는 쪽도 토건국가의 문제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크게 낮고, 보수 세력은 토건 정치와 토건 경제의 주도 세력으로서 여전히 막강한 위세를 부리고 있다.
지역주의의 바탕에도 개발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개발을 발전과 동일시하는 파괴적인 이데올로기인 개발주의는 망국적인 토건국가의 산물이자 동력이다. 이 문제에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면, 진보와 개혁은 언제까지나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보수 세력은 내가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해서 '4대강 살리기'에 반대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개발주의를 비판한다>(당대 펴냄), <민주화의 민주화-노무현과 이명박을 넘어서>(현실문화연구 펴냄) 등의 내 책들이나 참여연대에 연재했던 내 칼럼에서 잘 볼 수 있듯이, 나는 토건국가의 문제를 개혁하지 못한 '민주 정부'에 지속적으로 신랄한 비판을 해 왔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살리기'와 같은 토건국가의 극단화 정책을 반민주적으로 강행하기 때문에 그를 싫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성직자들이 문제의 개혁을 촉구하고 있어도 그저 막무가내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것이 아니겠는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쟁 영웅이었던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1961년 1월 17일에 행한 퇴임 연설에서 놀랍게도 "미국의 민주주의는 군산복합체라는 새로운 음험한 세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부터 '군산복합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이젠하워의 뒤를 이은 케네디, 존슨, 닉슨은 모두 '군산복합체'를 개혁하기는커녕 더욱 확대했다.
▲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와 같은 토건국가의 극단화 정책을 반민주적으로 강행했다. ⓒ프레시안(손문상) |
한국에 미국과 같은 '군산복합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신에 한국에는 '토건복합체'가 존재한다. '군산복합체'가 군수 산업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언론, 학술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세력들이 결합된 것을 뜻한다면, '토건복합체'는 토건업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언론, 학술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세력들이 결합된 것을 뜻한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미국을 늘 전쟁을 벌여야 하는 기형적인 전쟁 국가로 만들었다면, 한국의 '토건복합체'는 한국을 늘 불필요한 대규모 토건 사업을 벌여야 하는 기형적인 토건국가로 만들었다. '4대강 살리기'를 내걸고 강행되는 '4대강 죽이기'는 토건국가의 문제가 어느 정도로 악화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토건복합체'의 해체를 핵심으로 하는 토건국가의 개혁은 한국의 '진정한 선진화'를 위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은 토건국가의 대표적인 예이다. 단지 전체 경제에서 토건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만이 아니라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토건 사업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하부구조(간척, 매립, 개간, 산단, 농지, 발전, 댐, 보, 제방, 다리, 도로, 고가도로, 지하도로, 자전거 도로, 철도, 공항, 항만, 운하, 농수로, 송전탑, 전봇대, 보도블록 등), 주거(아파트, 주택, 신도시 등), 여가(골프장, 스키장, 유원지, 콘도 등) 등 여러 분야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토건 사업들이 전국에서 끊임없이 시행되고 있다. 이미 한 세대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이 나라는 말 그대로 '전국이 공사판'인 상황이다. 그 결과 국토가 심하게 파괴된 것을 넘어서 아예 '공구리 공화국'이 된 듯하다. '4대강 죽이기'는 그 결정판이다.
토건국가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통계청의 '국가 통계 포털'(☞바로 가기www.kosis.kr.)을 이용한 몇 가지 토건 통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0년 3월 현재, 통계청의 관련 통계는 2008년까지 제시되어 있다. 정부의 공식 용어는 토건이 아니라 건설이다. 다음은 '건설' 분야에서 '건설업 조사'의 '산업편 총괄'과 '공사 실적편 총괄'에서 정리한 것이다. 2007년까지는 구산업 분류 기준을 따르고 있어서 '건설업 조사'의 '건설업'에 제시되어 있다.
2007년에 비해 2008년에는 기업체 수는 크게 늘었으나 종사자 수는 오히려 크게 줄었다. 여기서 토건업 활성화를 통한 고용 증대 정책의 문제를 잘 알 수 있다. 매출액 기준 GDP 대비 토건업 비중은 2007년 975조130억 원의 17.1퍼센트에서 2008년 1023조9377억 원의 18.8퍼센트로 크게 늘었다. 피고용자는 줄었으나 토건 업체는 훨씬 더 많은 돈을 번 것이다. 수주액의 공공 부문 발주를 보면, 2007년 75조1816억여 원(45.1퍼센트)에서 2008년 87조7648억여 원(45.52퍼센트)로 늘었다.
아마도 2009년부터 토건업의 매출액과 공공 부문 발주는 크게 늘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나라 살림 예산 개요>와 기획재정부가 2009년 12월 31일 낸 '보도 참고 자료-10년 나라 살림 국회 확정 주요 내용'에서 제시된 중앙 정부 예산과 그 중의 SOC 관련 예산을 보자(단위는 조 원).
실제로 2008년에 비해 2009년에 SOC 관련 예산이 대단히 크게 늘어났다. 2010년 예산을 보면, 국가 하천 정비 사업을 제외하고 21.6조 원이 책정되었고, '4대강 살리기'에는 3.2조 원이 책정되었다.
그런데 토건국가를 주도하는 공공 부문 발주는 정부 예산에 공공 기관 투자를 더해야 제대로 파악될 것이다. 요컨대 공공 부문 발주는 정부 기관 투자와 공공 기관 투자로 이루어진다. 2010년에는 29개 중앙 공공 기관이 총 48조5000억 원을 SOC 분야에 투자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따라서 중앙 정부와 중앙 공공 기관의 SOC 분야로 공표된 것만을 보았을 때, 2010년의 공공 부문 발주는 73.6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것은 2007년의 공공 부문 발주액보다도 더 적은 액수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더욱이 공공 기관 투자의 SOC 분야는 2009년에 비해 2010년에 무려 14.2퍼센트가 늘어나지 않았나?
먼저 공공 부문의 발주는 SOC 분야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분야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로 15조 원이 투입될 에너지 분야 중앙 공공 기관의 투자에는 발전소 건설도 포함되어 있다("29개 공공기관 내년 66조 투자", <서울경제>, 2009년 11월 27일). 여기에 정부가 수익을 보장해줘야 하는 '민간 투자'(사기업이 SOC에 투자하는 것)까지 더하면 사실상의 공공 부문 발주는 더욱 더 늘어난다.
그리고 지방 정부와 지방 공공 기관의 투자, 지방 정부의 '민간 투자'를 포함하면 공공 부문 발주는 훨씬 더 늘어난다. 예컨대 '4대강 살리기'의 중앙 정부 예산은 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방 정부가 제출한 관련 사업의 총예산은 무려 100조 원에 이른다. 따라서 2008년에 87조7648억여 원이었던 공공부문 발주는 2010년에는 10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토건국가의 문제는 여러 면에서 확인된다. 그것은 탕진, 파괴, 부패, 투기 등으로 간추릴 수 있다. 그 출발은 혈세의 탕진이다. 토건국가를 단순히 환경문제로만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토건국가는 무엇보다 재정의 비정상적 운용에서 기인하는 비정상적 국가로 파악해야 한다.
ⓒ동아일보 |
"정부가 2000년 이후 8년간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130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지만 SOC 재정 투자의 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동유럽 2개국을 빼고는 최하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 통행이 뜸한 곳에 도로를 깔고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등 경기 부양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나랏돈을 함부로 쓴 결과다" ("SOC 재정효율성 OECD 최하위권", <동아일보>, 2010년 3월 5일).
이것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지만 이명박 정부 시기를 대상으로 하면 아마도 문제는 더욱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미 2006년에 97퍼센트나 끝난 4대강의 하천 정비 사업을 불과 2년여 만에 다시 벌이는 식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극구 '토건국가의 극단화'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경향신문>, 2009년 7월 22일. ⓒ토건국가 |
토건국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극단적인 경제 위기와 생태 위기를 모두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10월에 경제개혁연대(대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OECD(2008)의 'National Accounts of OECD Countries : 1995~2006'를 기초로 30개 OECD 회원국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GDP 대비 건설업 부가 가치의 비중', '(총고정 자본 형성 중) 건설 투자의 GDP 대비 비중'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그 결과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건설업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GDP 대비 건설업 부가 가치의 비중'을 보면, 1995~2006년의 평균이 한국은 8.80퍼센트이고 OECD 전체는 5.48퍼센트였다. 또한 '(총고정 자본 형성 중) 건설 투자의 GDP 대비 비중'을 보면, 1995~2006년의 평균이 한국은 19.22퍼센트이고 OECD 전체는 11.67퍼센트였다.
이에 따라 경제개혁연대는 한국을 '건설업 과다 의존 국가'로 규정하고 그 개혁을 촉구했다. 특히 경제개혁연대는 'OECD 회원국 중 건설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 특히 1995~2000년에 비해 2001~2006년에 건설업의 비중이 크게 증가한 나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최근 심각한 금융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최근 미국발 금융 위기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 차원을 넘어, 경기 회복을 위해 신도시·뉴타운 건설 및 부동산 규제 완화, 그리고 대형 토목 공사의 발주 등을 통해 또다시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건설업의 산업 구조적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구리 공화국'에는 희망이 없다.
여러 자료들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우리가 살 길은 토건국가의 강화가 아니라 약화, 아니 해체에 있다. 막대한 재정을 탕진해서 국토를 파괴하고 부패를 촉진하고 투기를 조장하는 토건국가의 강화는 결코 흥국의 길이 아니라 망국의 길이다. 토건 예산, 토건 산업, 토건 고용을 크게 줄이고, 복지, 문화, 환경을 크게 늘리는 것이 '진정한 선진화'의 길이다.
그 길은 저기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찍이 김남주 시인이 '길'이라는 시에서 노래했듯이,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정·관·재·언·학'의 5각 구조로 작동하는 '토건복합체'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을 강고히 막고 있을 뿐이다. 개발공사의 개혁을 중심으로 '토건복합체'를 해체하면, '진정한 선진화'의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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