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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미실'도 설탕에 푹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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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미실'도 설탕에 푹 빠졌을까?

[판다곰의 음식 여행·8] 단맛에 길든다는 것

대부분 사람은 단것을 좋아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이라면 단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이 늘 문제가 된다. 단것을 좋아하는 것이 과연 본성일까, 아니면 나중에 생긴 습성일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인간이 단것을 좋아하도록 진화해왔으며 뇌는 단것을 먹으라고 입에 지령을 계속 내린다, 즉 단것을 좋아하는 것은 본성이라는 것이다.

단것이란 대부분이 당류를 뜻하고 우리 몸을 움직이는 모든 힘은 바로 이 당분에서 나온다. 더군다나 사람 몸에서 가장 많은 당류를 소비하는 곳이 뇌다. 그러므로 사람은 저절로 단것을 좋아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다이어트로 단것을 멀리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 본성을 위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꿀 앞에서는 사람도 곰과 다르지 않다

이 달콤함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사탕이나 초콜릿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신대륙의 발견으로 사탕수수가 대량으로 재배되고 나서 흔해진 설탕에 열광하던 유럽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현대 문명과 떨어져 사는 밀림의 원시인들이라 해도 그러하다. 원시인들이 단것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벌들이 모아둔 꿀을 약탈하는 것이다. 벌에 쏘이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이 단것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 않는다. 숲 속 꿀의 또 다른 약탈자인 잡식동물 곰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숲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하는 이 약탈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벌들의 집을 수색하기도 어렵거니와, 벌도 약탈자를 피해 손이 닿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에 집을 짓고, 자신이 비축한 식량을 약탈하는 침략자에게는 가혹한 벌침을 쏘아대기 때문이다.

곰들은 벌이 쏘아대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약탈하지만 사람들은 곰과 달리 꾀를 써서 벌들을 속인다. 가까운 곳에다 벌이 집을 지을 만한 곳을 마련해주고 꿀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연기로 벌을 쫓아내고 약탈하는 방법이다. 벌들이 사람들의 속임수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기에 이 방법이 꽤 유효했겠지만 이것도 단것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에는 미흡했다. 이 원시적인 양봉은 현대의 양봉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대의 양봉은 꿀을 모아온 벌들에게 설탕이라는 대체 음식을 제공한다.

단맛의 추구는 엿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사람들이 농사를 짓게 되면서 곡식이 풍족해졌다. 곡식을 입에서 씹으면 단맛이 난다. 곡식의 전분이 침에 섞인 효소 때문에 단당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단맛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고 그래서 다른 방법을 개발해냈다. 무슨 원인인지는 몰라도 보리나 밀이 싹을 틔울 때 밥과 함께 두면 단맛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방법을 정량화한 것이 바로 식혜다. 혜(醯)는 '삭힌 것'이라는 뜻을 지녔으니 밥을 삭힌 것이 이것이다. 밥을 삭혀 단맛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술과 비슷한 액체가 되니 '단 술'이라는 뜻의 감주(甘酒)라 부르기도 한다. 혜의 비슷한 말인 함경도 가자미식해의 '해(醢)'는 가자미와 좁쌀과 소금을 넣고 삭힌 것이니 젓갈의 일종이다. 삭힌다는 뜻도 곡식과 고기를 나누어 이렇게 구분했다.

감주를 만들려면 먼저 보리나 밀의 싹을 틔워야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보리가 흔하여 주로 사용했다. 보리의 싹이 보리 알갱이보다 두 배쯤 되면 이를 말려서 잘 간 것이 바로 엿기름이다. 물기가 많지 않은 지에밥을 지어서 고운체에 엿기름을 내린 물과 섞어 뜨뜻하게 해주면 감주가 된다. 꿀만큼은 달지 않더라도 단것에 대한 욕망을 채워줄 만한 것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감주를 만들고 나서 다시 쌀알을 걸러내고 불에 졸이면 묽은 조청이 된다. 수분을 줄이며 졸였으니 단맛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 물엿은 귀한 꿀을 대신해 여러 종류의 과자를 만드는 데에 쓰이게 된다. 조청을 더욱 졸이면 단단한 갈색의 갱엿이 되는데 여기에 깨나 콩을 박아 그냥 먹기도 하지만, 여러 번 잡아 늘이면 흰색의 가락엿이 된다. 어릴 적 엿치기를 하던 놀이 겸 간식인 엿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런데 보리 싹이나 밀 싹은 왜 이렇게 단것을 만드는가? 엿기름이 쌀의 전분을 당화시키는 것은 싹이 틀 때 아밀라아제라는 효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효소가 쌀의 전분과 반응하여 전분을 단당류로 달게 변화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왜 싹을 틔울 때 이런 효소가 생산되느냐 하면, 씨앗에 있는 전분은 자라는 데에 쓰이려면 단당류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자신의 생육을 위해 생산하는 효소를 사람이 이용하는 셈이다. 보리나 밀이 싹 틀 때 먹어보면 단맛이 나는 것도 이 효소들이 씨앗의 전분을 당류로 활발하게 바꾸어주기 때문이다.

여하튼 쌀을 기반으로 한 농업 사회에서는 엿의 발명으로 단맛에 훨씬 익숙해지게 되었다. 꿀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단맛에 대한 갈증을 풀어줬던 것이다. 그리고 단맛을 음식의 한 가지 맛으로 여기는 것도 훨씬 빨랐던 것 같다. 우리가 설탕의 단맛에 빨리 적응하고 단맛으로 된 음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은 엿을 오랫동안 상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감주를 만들 때에는 반드시 쌀로 밥을 지어야 그 맛이 나지만 보통 조청을 만들 때에는 비싼 쌀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좁쌀이나 수수, 옥수수나 고구마같이 전분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 다 재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엿 공장에서 만든 엿들은 엿기름을 쓰지 않는다. 미생물에서 대량으로 뽑아낸 아밀라아제를 당화의 원료로 쓴다.

또 호박엿을 호박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호박에는 전분이 부족해 엿이 되지 않는다. 엿을 만들고 나서 부재료로 호박을 넣어 맛을 냈다는 뜻이다. 사실 원래부터 호박을 넣던 것도 아니다. 울릉도에서 자생하던 후박나무껍질을 벗겨 달인 물을 조청과 섞어 후박엿을 만들던 것이 후박나무가 귀해지자 호박으로 대체된 것이다. 원래 호박엿은 충청북도 진천이 유명하다고 한다.

노예가 만든 설탕이 노동자의 노동 열량을 채운다

쌀을 주식으로 하던 동양은 단맛을 쟁취하기 위해 엿을 고안해냈지만, 서양은 밀이 엿을 만드는 데에 적합지 않아 다른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꿀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이도 단것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에 미흡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엿을 만들지 못하니, 서양이 가진 것은 과일이었다.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란 당도 높은 포도와 베리 종류의 과일들은 잘 가공하면 설탕을 넣지 않고도 단맛을 낼 수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설탕을 전혀 넣지 않고 과일만을 졸여 만든 달콤한 잼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생산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돌파구를 열어준 사람들이 아랍인들이었다. 물론 알렉산더의 인도 원정 당시에 단맛이 나는 갈대를 보았다는 기록은 있지만 재배까지 할 수는 없었다. 단맛이 나는 갈대란 바로 사탕수수였다.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까지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그들의 장기인 관개와 함께 이 사탕수수를 들여왔다. 사탕수수가 퍼지기는 했지만 지중해의 기후에서는 잘 키울 수가 없었고 몰타와 북아프리카, 카나리아 제도와 같은 지방에서만 상품성 있게 재배할 수 있었다.

식물의 수액에 들어 있는, 설탕의 원료가 되는 자당은 이당류의 단맛이 강한 수액이다. 특히 사탕수수와 사탕무에 많아서 사탕수수는 20퍼센트, 사탕무는 15퍼센트가 들어 있다. 옥수수에도 자당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옥수숫대의 껍질을 벗기고 즙을 빨면 단맛이 나는 이유는 이 자당 성분 때문이다.

하지만 옥수수는 당도가 낮아 경제성이 없으므로 설탕으로 만들지 않는다. 메이플시럽을 만드는 단풍나무도 수액에 자당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메이플슈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단풍나무는 날씨가 몹시 추워야만 수액의 당도가 올라간다. 요즘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캐나다는 메이플슈가의 생산에 먹구름이 끼었다고 한다.

아랍인들이 사탕수수를 전해주었다고는 하지만, 12세기 초 유럽에서는 설탕이 식품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없었다. 이때의 설탕은 꿀보다 더 귀했기에, 아주 지극히 적은 양만이 의약품과 향신료로 유통되었을 따름이다. 의약품으로서의 설탕의 전통은 요즘도 볼 수가 있다. 설탕을 곱게 씌운 당의정이 바로 그것이다. 설탕이 향신료의 일종이었다는 것은 요즘 생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그 당시로는 설탕 자체가 아주 고가품이어서 요리의 본맛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아직은 단맛 자체가 음식의 한 가지 맛으로 대접받지 못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설탕이 제대로 맛으로 대접받고 생활필수품으로 된 것은 신대륙 발견 이후의 일이었다. 신대륙의 발견과 함께 항로의 중간 기점이 된 카나리아 제도에서 카리브 해 지역으로 건너간 사탕수수는 시험 재배가 되다가 고온다습한 이 지역 기후에 힘입어 아예 본격적인 설탕 산업을 일으키게 되었다.

사탕수수는 다년생 풀이라서 새로이 씨앗을 심어 경작하는 방식이 아니다. 1년이면 잘라낸 줄기 옆으로 새로운 줄기가 솟아 다시 자란다. 그렇지만 지력을 심하게 소모하는 작물인 만큼 윤작을 통해 지력을 회복해줘야 한다. 사탕수수를 베어내고 여기에서 즙을 짜내어 이를 다시 졸이고 정제하는 데에는 아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카리브 해 지역에서 사탕수수가 잘 자라고 이윤을 꽤 남길 수 있는 산업적 전망이 보이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실어다가 이 지역에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예, 담배, 설탕의 삼각무역을 통해 유럽으로 실려 가는 설탕과 럼주의 원료인 당밀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마침내 유럽 전체가 이 설탕의 단맛에 풍덩 빠지게 되었다.

커피, 홍차에 설탕을 넣어 먹게 되고, 카카오와 결합하여 초콜릿이 탄생한다. 삼각무역을 통해 들어온 차에 타서 먹는 값싼 설탕은 산업혁명 시기에는 굶주린 노동자들의 노동 열량을 책임지기에 이르렀다.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까지도 단맛에 빠져버린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설탕

설탕이 우리에게 들어온 것은 중국 원나라 때인 고려시대였다고 한다. 중국은 일찍이 아랍을 거치지 않고 인도로부터 직접 사탕수수의 재배와 설탕 제조법을 배웠다. 당나라 때는 비록 사치품이기는 했어도 상품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아마 당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통일신라의 귀족도 이 설탕을 수입해 맛보았으리라 짐작하지만 문헌상의 기록은 없다.

분명한 기록은 고려 말에 원으로부터 수입한 품목에 설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백설탕이 최고급품으로 인정받고 있었으니 중국의 설탕 제조 기술도 꽤 발달했던 성싶다. 하지만 이 진귀한 수입품은 몇몇 돈 많은 귀족의 사치품이었을 뿐이다. 고려 말기에 '백설기에는 설탕을 넣어야 제 맛'이라고 했으니 상류계층에서는 설탕의 소비가 웬만큼 자리를 잡았었던 것 같다. 사실 쌀가루를 곱게 빻아 만든 백설기에 꿀이나 조청을 넣으면 가루가 뭉쳐 모양도 버리고 식감도 나빠진다.

이 설탕이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설탕은 인도에서 아랍으로, 다시 유럽과 신대륙을 돌고 돌아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에 상륙한다. 일본은 이 설탕을 만들기 위해, 청일전쟁으로 빼앗은 타이완을 사탕수수 재배의 전초기지로 삼는다. 여기서 만든 설탕을 일본 본토와 만주, 한국에까지 들여온 것이다.

한국의 서민들이 설탕을 맛보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타이완 설탕을 배급받은 것이 시초다. 해방 후에도 꽤 여러 해 동안 타이완에서 원당을 수입했다. 이렇게 들여온 설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되고, 1950~6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의 가정주부들은 귀한 설탕을 장롱에 곱게 모셔놨을 뿐더러 현재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도 이 원당을 들여다가 설탕을 만든 제일제당이 모기업이라 할 수 있다.

설탕, 그 달콤한 위험

단맛이 애국을 뜻할 때까지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은 일반 가정에는 배급제를 통해 설탕 배급을 제한했지만, 코카콜라에는 특별히 설탕을 무제한으로 공급해 유럽의 전선에 이 단물을 보급하도록 배려했다. 코카콜라라는 환상을 통해 병사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의도였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단맛에 빠져 살기는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그에 못지않은 듯하다. 음식들은 예전보다 훨씬 달아졌으며, 고유의 음식이라는 불고기나 떡볶이만 하더라도 예전과 비교하면 단맛이 매우 강하다. 젊은이들은 단맛에 더욱 심하게 중독되고 있는 듯싶다. 젊은이들이 즐기는 불닭 같은 음식들을 보더라도 매운맛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단맛도 강하다.

단맛을 탐하는 이유는 우리 몸에 필요한 열량이 음식에 들어 있음을 알려주는 표식이 바로 이 맛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몸은 단맛을 좋아하도록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자연 상태에서 단맛은 흔한 것이 아니어서 더욱 귀했지만,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대규모 노예 농장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단맛이 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단 것을 실컷 맛보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은 이 단맛에 흠뻑 빠져서 산다. 설탕의 과다한 소비는 비만과 당뇨병과 충치처럼 건강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에게 보이는 설탕은 그래도 자제할 수 있지만 수많은 가공식품 안의 설탕은 본디 재료의 맛을 왜곡하고 건강을 해친다. 우리 건강을 위해서라도 본능을 억제하고 단맛 경계령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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