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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의 지혜…"왜 이래? 선수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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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의 지혜…"왜 이래? 선수끼리!"

[철학자의 서재] 남 몰래 보는 책, <귀곡자>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눈 이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아토포스(atopos)'라는 명칭을 부여했다고 한다. '아토포스'란 원래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가 없다는 말이다. 롤랑 바르트는 아토포스를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매혹하는 사람"으로 해석한다. 또한 이런 사람은 분류할 수가 없다고 규정한다.

왜? "내 욕망의 특이함에 기적적으로 부응하는 유일한, 독특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상투적일 수 없는 이미지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 대상을 아토포스로 인지(認知), 그렇다, 이 말이 중요하다, 인지한다. 어디에도 고정시킬 수 없는 그는 그래서 정체를 헤아릴 수 없는 변화무쌍한 사람이다. '묘(妙)'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랑의 대상만 묘한 게 아니다. 마술사나 사기꾼도 묘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자의 말재주

소크라테스는 묘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공자는? 역시 묘한 사람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그를 오해하고 비난하곤 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구차한 변명을 싫어하는 공자가 제자들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했을까. "얘들아! 내가 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숨기는 게 아무것도 없다(二三子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고전을 공부한다지만, 나는 아직도 <논어>를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아 궁금한 구절이 있다. 자금(子禽)이 자공(子貢)에게 묻는다. "공자께서는 한 나라에 이르면 반드시 그 나라의 정치를 들으십니다. 그것은 공자께서 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주는 것입니까." 이에 자공이 답한다. "공자께서는 따뜻하고 솔직하고 위엄 있고 검소하고 사양하심으로써 얻으셨다. 공자께서 구하신 것은 다른 사람들이 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지금 다시 읽어봐도 아리송하니, <논어>는 참으로 읽기 힘든 고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자금이 공자를 삐딱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공자가 주유천하(周遊天下)하는 것은 군주에게 아첨하여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작 본인은 권력에 관심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주는 것인가.

결국 자금이 의심하는 바는 공자가 권력욕에 사로잡혀 군주에게 알랑대는 사기꾼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자공의 답은 주유천하하면서 정치적 기회를 구하려는 것은 맞지만 도덕적 능력을 통해 그런다는 점에서 사기꾼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한데 그게 도덕'만'으로 가능했을까?

은자(隱者)인 미생무는 이렇게 공자를 비난한다. "공자는 어찌 저렇게 뽐내면서 이곳저곳 다니는가. 괜한 말재주나 부리는 놈이 아닌가(丘何爲是栖栖者與? 無乃爲佞乎?)." 그렇게도 말재주를 미워한 공자이건만 미생무는 그를 말재주나 부리는 놈으로 여긴다. 공자도 말 꽤나 했던 모양이다. 공자의 말재주가 어떠했기에 미생무가 저리 말했을까. 공자가 미워한 말재주와 공자가 부린 말재주의 차이는 무엇일까. 평소 궁금하던 의문을 풀어준 책이 <귀곡자>(귀곡자 지음, 김영식 옮김, 지만지고전천줄 펴냄)다.

세상의 모든 신하들을 위한 신하론

▲ <귀곡자>(귀곡자 지음, 김영식 옮김, 지만지고전천줄 펴냄). ⓒ프레시안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공자는 기본적으로 유세가(遊說家)였다. 소크라테스가 원래 소피스트였던 것처럼. 주유천하했다는 건 천하를 두루 다니면서 군주에게 유세했다는 말이다. 이 유세의 기술은 희랍의 '레토리케(rhetorike)', 즉 연설의 기술과 비교될 수 있다. 웅변술이며 수사학(修辭學)이다.

<장자> '인간세(人間世)' 첫머리에는 공자가 안연을 한사코 말리는 장면이 나온다. 정의감에 가득 찬 안연은 독재 정치를 행하는 위나라 군주에게 그의 잘못을 간언하러 가는 길이었다. 공자는 왜 안연을 말렸을까. 안연에게는 포악한 군주를 다루어 설득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서투른 재주로는 포악한 군주를 다룰 수 없을 것이니 너부터 덕을 닦으라고 공자는 안연에게 면박을 주고 있다.

<사기>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제나라 대부 전상(田常)이 노나라를 치려고 하자, 공자는 이 소식을 듣고 걱정하며 제자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나라를 구하려 하지 않느냐고 한다. 이때 자로(子路)가 나서서 전상에게 가기를 청하지만 공자는 그를 제지했고 자장(子張)과 자석(子石)이 나서기를 청했지만 역시 제지하였다. 그러나 자공이 나서겠다고 하자 허락한다.

공문사과(孔門四科)로 알려진 덕행(德行), 언어(言語), 정사(政事), 문학(文學) 가운데 안연은 덕행이요 자공은 언어의 대표자다. 언어 능력, 다시 말해 말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은 정치적 조정 능력, 외교 능력이 뛰어남을 말한다. 니고시에이터(negotiator), 협상가인 것이다. 자공은 뛰어난 경영가이자 전략가였으며 외교관이었다. 종횡가들은 나중에 자공을 그들 학파의 원조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귀곡자>는 위서(僞書)라느니, 저자가 누구라느니, 신선방술(神仙方術)과 병가(兵家), 심지어 점술과 관련된다느니 하는 등 여러 가지 이견이 분분한 책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귀곡자>가 전국시대 중기에 실존한 인물의 저작임은 분명하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종횡가의 대표적인 인물인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이 귀곡 선생으로부터 배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다른 여러 문헌에서도 <귀곡자>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귀곡자>는 상대의 정보를 염탐하여 그의 심리와 약점을 이용하고, 상대를 뺨치고 어르고 달래고 위협하고 띄워주며 칭찬해서 신뢰와 총애를 얻는 유세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학자들은 이런 <귀곡자>를 소인배의 책, 권모술수(權謀術數)의 궤변을 늘어놓은 책으로 여겼다.

당나라 유종원(劉宗元)은 "그 말이 매우 기괴하고 그 도리가 매우 좁아터져 사람을 미치게 하고 원칙을 잃어버리게 한다."고 했고, 명나라 송렴(宋濂)은 "귀곡자가 말하는 패합술과 췌마술은 모두 소인들의 쥐새끼 같은 꾀로서 집에 쓰면 집안이 망하고 나라에 쓰면 나라가 망하며 천하에 쓰면 천하가 망한다."고 혹평한다.

하지만 <귀곡자>가 신하가 군주에게 유세하는 기술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하를 그 자리에서 죽여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간(比干)뿐만 아니라 많은 충신들이 직간(直諫)했다가 개죽음을 당했다.

아무리 충심을 가지고 유세하더라도 말 한마디로 자칫 파리 목숨이 될 판이었다. <한비자>의 <세난(說難)>편은 이런 시대에 '유세하기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 신하가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면서 군주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설득시킬 것인가 하는 게 중요했다.

<한비자>가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신하를 견제하려는 군주의 통치술과 권모술수를 담고 있다면, <귀곡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군주에 대항하는 신하의 유세술과 책략술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기꾼과 성인은 한 끗 차이

<귀곡자>는 이러한 간언과 설득의 전략전술을 이야기하면서 음모(陰謀)와 권모술수(權謀術數)를 강조한다. 음모란, 즉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얘기일지라도 자신의 덕을 내세우며 상대를 깨우치고 가르치려 든다면 상대는 자신의 그릇됨을 인정하기보다 저항하기 쉽다.

진리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강할 때 우리는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직설적으로 내뱉게 되는 게 아닐까. 군주를 설득하면서도 군주 자신이 설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군주가 마음대로 휘두르는 권력에 개입하면서도 개입하지 않는 '척'하는 것이다.

일을 주도할 때마다 매번 공을 이루면서도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를 모르며 전쟁을 주도할 때마다 매번 승리했는데도 아무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故曰主事日成而人不知, 主兵日勝而人不畏也.)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일을 꾸미는 것은 사기꾼도 한다. 다만 사기꾼에게는 '남 몰래'가 중요하지만 성인에게는 '남 몰래'뿐만이 아니라 '나 몰래'도 중요하다. 성인은 자신의 높은 덕을 스스로 의식하여 내세우지 않는다. 어쩌면 사기꾼과 성인은 한 끗 차이일지도 모른다.

선왕의 도는 아무도 모르게 시행된다. 옛말에 '천지의 변화는 높은 곳과 깊은 곳에서 이루어진다. 성인이 도를 조절하는 것은 감추어진 곳과 은밀한 곳에 있다.'고 했다.(先王之道陰, 言有之曰, '天地之化, 在高與深, 聖人之制道, 在隱與匿.')

원래 권모술수는 목적 달성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온갖 모략이나 술책을 말한다. 그러나 귀곡자에게 권모술수는 현실의 조건에서 실천적 전략을 이끌어내는 '권도(權道)'의 의미가 크다. 이는 정치적으로 볼 때 자신의 이념과 도덕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 실현시키려는 '정치 전략(political strategy)'이자 '정치 공학(political manipulation, 또는 정치 조작)'이다. '권(權)'이란 '반경합의(反經合義)'라고 할 수 있는데, 추상적 원칙(經)에는 반하지만 의(義)에는 합치한다는 뜻으로 현실 상황을 고려할 때 가장 합당하고 적합한 전략을 뜻한다.

마치 천 길이나 되는 제방 꼭대기에서 제방의 물을 터트릴 수 있고, 만 길이 되는 계곡에서 둥근 돌을 굴릴 수가 있다.(決水於千仞之堤, 轉圓石於萬仞之谿)

천 길 낭떠러지의 제방 꼭대기에서 제방의 물을 터트리는 과감한 결단과 만 길이나 되는 계곡에서 둥근 돌을 굴릴 수 있는 현실적 유연성과 변화무쌍함. 이것이 귀곡자가 말하는 성인의 모습이다.

유가는 기본적으로 순간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임시변통으로서의 '일시지권(一時之權)'보다는 오래도록 지속시킬 수 있는 떳떳한 도덕인 '장구지도(長久之道)'를 강조한다. 그러나 층층 켜켜로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현실의 문제를 타개해 나가려면 '장구지도'만 가지고는 부족하며 '일시지권'이 또한 필요하다.

이상적 도덕'만' 있고 현실적 전략으로서의 '일시지권'이 없다면 무모(無謀)하기 쉽고, 현실적 권모술수'만' 있고 '장구지도'가 없다면 사기꾼이기 쉽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말을 하게 되어 있다(有德者必有言)"고 했지만 덕이 없는 자도 말을 하며, 또 덕이 있더라도 말로써 잘 표현되지 못하면 현실에서 공을 이루기 어렵다.

배반의 기술

그런데 아무리 섬세한 유세의 기술로도 군주를 설득할 수 없다면? <귀곡자>는 여기서 불사이군(不事二君), 불사이부(不事二夫)라는 유교적 가치를 부정한다.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지아비가 지아비답지 못한데도 끝까지 절개를 지켜야 할까? 신뢰는 깨지고 의심만 가득한데도?

도무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면 군주라도, 지아비라도 배반하고 이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배반하고 이별하되 잘해야 한다. 그래서 <귀곡자>는 배반의 기술을 말한다. 부득이한 상황이라면 혁명할 것도 권장한다. 이를 '저희(抵巇)'라고 하는데, 틈새를 봉합한다는 뜻이다.

오제의 정치는 틈새를 봉합하여 질서를 잡았고 삼왕의 정치는 봉합하여 새로운 세상을 창업했다. 제후들이 서로 공격하는 일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때 이 틈새를 봉합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좋다.(五帝之政, 抵而塞之, 三王之事, 抵而得之, 諸侯相抵, 不可勝數. 當此之時, 能抵爲右.)

삼왕(三王)이란 누구인가. 하(夏)나라의 우왕(禹王), 은(殷)나라의 탕왕(湯王),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을 말한다. 이윤(伊尹)은 탕(湯)을 도와 은나라를 건국했고 여상(呂尙)은 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했다. <귀곡자>는 이 이윤과 강태공으로 알려진 여상을 대표적인 현인으로 꼽는다.

공자는 무모한 직간(直諫)보다는 우회적인 풍간(諷諫)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말을 하는 데 꾸밈이 없다면 실천하는 바가 멀리까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言而不文, 行而不遠)"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는 꾸밈이 <귀곡자>가 말하는 유세술과 통하는 바는 없을까.

나는 가끔 아무도 모르게 <논어>와 함께 <귀곡자>를 꺼내 본다. <귀곡자>가 말하는 전략적 사고와 유세술은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나를 방어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날 웬 사기꾼이 나에게 사기를 치려들 때 나는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왜 이래? 선수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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