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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에 중독된 세상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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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에 중독된 세상을 꿈꾸다!

[판다곰의 음식 여행] 고추, 그 매움의 향연

김치 이야기를 하면서 고추에 대해서도 잠깐 이야기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매운 것을 탐하는 기본적인 습성이 있었고 산초와 초피의 대용품이 고추였다고 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는 이 독특한 매운맛에 경악하며 기피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세계의 보편적인 입맛에서 본다면 매운맛은 결코 주류가 아니다.

세계에서 매운맛에 탐닉하는 지역을 보자면 고추의 원산지인 멕시코, 한국, 중국의 사천과 운남, 이탈리아 정도와 더운 열대의 몇몇 일부 지역만이 있을 뿐이다. 인도의 경우도 매운맛을 내는 카레 가루를 쓰지만, 이 카레 가루는 강황, 울금 등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종합 향신료다. 카레는 후추, 고추, 생강 등 매운 재료를 많이 넣을 때에만 매운맛을 내는 것이지, 맛 전체가 매운 게 아니다.

사실 매운맛이라는 것은 미각이 아니라고 한다. 매운맛은 일종의 통각이어서, 아픔을 느끼고 그 아픔에 대응해 땀을 흘리는 묘한 것이다. 우리 조상도 이 매운맛에 일가견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고추의 고(苦)자가 '활활 타오르다', '괴롭다'는 뜻이니 이 매운맛이 아픔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최근에는 열을 감지하는 혀의 촉각 일부가 변형되어 매운맛을 감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당당한 미각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귀하디 귀한 매운맛

고추의 추는 원래 초(椒)자이니 이는 산초를 이르는 말이다. 산초는 원래 천초(川椒)라는 이름으로 동아시아에 널리 자생하고 있던 식물이다. 천초는 중국 사천의 매운 나무라는 뜻이다. 이는 아마도 산초는 사천의 것이 가장 품질이 좋기에 이른 것 같으니 사천에서 이 나무가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산초라는 이름은 주로 이 나무가 산에서 자란다는 의미로 일본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다. 산에 흔한 나무이기는 하지만 이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은 우리 한반도와 중국의 사천, 운남 지역이니, 원래부터 매운맛과 관련을 깊이 맺어온 곳이다.

산초나무 외에 초피나무도 있는데 이는 나무껍질에서 매운맛이 난다. 한반도에서는 주로 남쪽 지방이 이 산초와 초피를 즐겼다. 그러니 우리가 고추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주 매운 산초를 연상하여 같은 종류의 음식 재료로 여겼음을 뜻한다.

산초와 초피 말고 우리에게 매운맛을 선사해주는 것으로는 겨자를 들 수 있다. 겨자나 갓의 씨앗을 개자라고 하는데 이 씨앗을 갈면 매운맛이 생긴다. 겨자와 갓은 같은 종류의 식물로 그 씨앗의 특성도 같다. 갓의 넓은 잎은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하지만 겨자의 매운맛은 산초, 후추나 고추에 비하면 훨씬 떨어져, 주로 매운맛보다는 향취를 위한 조미료로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후추도 마찬가지로 초자를 한자로 쓴다. 앞에 붙은 후는 원래 오랑캐 호(胡)자로 호박, 호두와 같이 대개는 북쪽이나 서쪽에서 전래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 후추는 한무제 때에 장건이 서역 원정을 통해 들여온 것이다. 인도가 원산인 후추는 우리에게는 고추보다 훨씬 먼저 전래되었다. 고려 시대에 벌써 후추가 중국을 통해 들어와 있었다.

문헌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신라도 무역이 발달한 시대였기에 통일신라 시대에도 후추가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런데도 후추가 산초를 대신하지 못한 이유는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지금은 무역이 활발해 후추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지만 후추는 원산지를 떠나 재배하기 너무 어려운 작물이었다.

따라서 원산지인 인도 남부에서 중국이나 오키나와를 통해 수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 수량은 제한될 수밖에 없고 값도 아주 비쌌기에 일부 특수 계층을 제외하면 그런 비싼 향신료를 쓸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귀한 재료는 대개 약용으로 분류되기 일쑤였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후추?

후추가 귀하기로 따지면 유럽은 우리를 한층 뛰어넘는다. 로마 시대에 서유럽에 전해진 후추는 육식을 위주로 하던 중세 서유럽 귀족에게는 거의 필수품처럼 되었다. 후추 값이 엄청나게 비쌌음에도, 한번 맛을 들인 다음에는 후추 없는 고기는 먹기 힘들었다. 당시의 고기는 냉장이 되지 않아 냄새가 많이 났기에 후추의 매운맛과 향미가 이를 완화해 준 것이다.

특히 베네치아는 전 서유럽 지역에 후추를 공급하여 그 기반을 잡았다. 무역품으로 후추는 최고의 물건이었다. 일단은 말린 것을 배에 실으니 부패의 염려가 없고, 무게도 많이 나가지 않으니 배에 많이 실을 수 있으며, 고기를 즐겨 먹는 한에는 소비 시장이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다.

산지 가격과 소비지 가격의 차이가 커서 이윤도 후하다. 종자를 들여다가 재배하려 해도 기후가 맞지 않아 재배되지 않으니 수입 이외에는 다른 방도도 없다. 매운맛뿐만 아니라 향미도 독특하기에 뾰족한 대체 상품도 없다. 또 중독성이 있어 한번 맛을 들이면 쉽게 끊을 수가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무역품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럽과 인도 사이는 아랍의 세력권이었다. 아랍인들은 후추의 중계 무역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그 때문에 유럽인들은 아주 비싼 후추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은 이 비싼 후추를 찾아 인도로 직접 가고픈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유럽의 후추 애용과 관련한 재미있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교황 우르바노 2세에 관한 것이다. 우르바노 2세는 검소하기 짝이 없는 교황이었지만 육식을 즐겼다고 한다. 이슬람의 세력 확대로 지중해 동안이 이슬람에 넘어가자 후추 수입에도 큰 타격이 있어 품귀 현상이 일고 값도 엄청나게 올랐다.

물론 예루살렘이 이슬람 세력권에 떨어져 성지 순례도 어렵게 되어 성지 탈환을 위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지만, 어쩌면 후추를 마음껏 먹지 못하는 분노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슬람으로 전이되지 않았을까? 교황의 머릿속에서 실제로는 이런 요인이 작용해 예루살렘 성지 순례로 합리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십자군 전쟁의 진정한 원인이 성지 순례였는지 어쩌면 후추였는지는 우르바노 2세 자신도 잘 몰랐을 것이다.

여하튼 유럽의 후추 기근이 해소된 것은, 희망봉을 돌아 인도까지 직항로를 개척한 다음이었다. 새로운 항해 시대를 여는 데에도 후추는 크게 공헌한 것이다. 콜럼버스가 인도로 여긴 곳은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이었지만, 이 신대륙에 후추는 없을지 몰라도 새로운 매운맛의 향신료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고추였다. 고추라는 새로운 향신료는 다시 배를 타고 이곳저곳으로 보급되었다.

ⓒ프레시안(손문상)

우리에게 고추가 맞는 이유

우리가 먹는 고추의 과육은 씨를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으로,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에게 불용한 물질들을 배출하는 곳이다.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고추의 종자를 보호하는 이득은 다른 동물들이 그 매운맛 때문에 씨앗까지 먹어버리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매운맛이 씨앗 보호용이라는 것은, 고추 안의 씨앗이 달린 태좌라 부르는 흰 곳이 고추에서 가장 매운 곳이라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생체 내에서 쓸모없는 것을 버리고 다른 동물이 먹지 못하게 보호하는 역할까지 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이 캡사이신이 이상한 동물인 인간의 눈에 띄면서 고추는 전 세계를 여행하게 되었다.

고추는 종류가 아주 많다. 피망과 같이 매운맛을 거의 느낄 수 없는 종자도 있고, 파프리카처럼 단맛에다 빨강, 노랑으로 시각적 효과까지 뛰어나 샐러드에 많이 쓰이는 종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방마다 지명이 붙은 고추가 있을 정도로 종류가 여러 가지다.

하지만 우리가 주로 먹는 고추는 매운맛보다 단맛이 우세한 종자들이다. 물론 청양고추처럼 아주 매운맛을 즐기는 것도 있지만 이것도 멕시코나 일본의 작은 고추에 비하면 매운맛이 훨씬 떨어진다. 우리가 보통 김치에 넣는 고추는 매운맛보다는 단맛이 강한 고추가 대종이다.

우리나라에 고추를 전해준 것은 일본으로 알려졌다. 일본에는 고추가 16세기 중반에 전해졌지만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대략 17세기 초반으로 본다. 일본에서의 고추는 그 쓰임새가 그리 크지 않다. 본래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특성 때문인지 우동에 들어가는 고춧가루와 장아찌 외에는 별다른 용도가 없고, 나중에 스시에 첨가하는 향신료도 고추냉이의 뿌리를 간 와사비를 쓴다.

한국이 고추에 열광적이게 된 것은 아마도 산초와 초피를 즐기던 입맛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산초나 초피는 일부러 기른다 하더라도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없고, 후추는 수입해야 해서 가격이 높았다. 하지만 고추는 가짓과 식물이라, 가짓과 식물 특유의 풍부한 생산력을 자랑한다. 고추를 길러보면 한 그루의 고추에서 얼마나 많은 열매가 매달리는지 감탄스럽다. 이런 이유로 고추가 단시일 안에 대체 작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매운 것은 먹던 사람이 잘 먹고 찾게 마련이기에, 매운 산초에 입맛을 들인 사람들은 고추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사천과 운남이 고추를 즐기는 지역이 된 것도 이전부터 매운 것을 즐기는 음식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이탈리아 반도도 중세 때부터 후추의 사용량이 가장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멕시코와 중국의 운남과 사천 지방에서는 입이 얼얼할 정도로 강도가 훨씬 센 고추를 먹는다. 적당히 맵고 단맛이 비교적 풍부한 고추의 맛을 즐기는 지역은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지방일 것이다. 우리의 매운맛이 다른 지역들보다 훨씬 보편적이라는 뜻이다.

매운맛의 중독성

맛에는 중독성이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늘 먹던 것을 먹던 방식으로 먹는다. 사람의 입맛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중독성이 가장 강한 것이 바로 짠맛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의 한계 때문에 우리 몸은 소금 없이는 작동하지 못한다. 소금을 섭취하라는 유전자의 명령인지 몰라도 사람은 짠 것에 대한 근원적인 욕구가 있다.

음식 간이 싱거우면 잘 먹지 못하고, 또 이 짠맛에 길들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한 자꾸 더 짠 것을 찾는 경향이 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 음식의 섭취와 양이 증가할수록 짠맛이 강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다음으로 중독성이 강한 맛이 단맛일 것이다. 단맛에 한번 길들고 난 다음에는 쉽사리 끊지 못한다. 뚱보들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경고에도 열심히 단 것들을 찾는다. 청량음료에 입맛을 길들이면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매운맛에도 중독성이 있다. 유럽에서 후추가 필수품이 된 것은 고기의 풍취를 더해준 면도 있지만 매운맛도 한몫했을 것이다. 멕시코의 음식도 맵기로는 악명이 높지만 타바스코소스의 유행처럼 매운맛에 익숙해지면 더 매운맛을 찾는다. 매운 김치와 고추장에 한번 맛을 들이면 계속 찾게 된다.

ⓒ프레시안(손문상)
처음에 매운맛에 놀라움을 표시하던 사람들도 차츰 익숙해지면 매운 것이 없이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매운맛은 단맛과 어우러진 매운맛이다. 지금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불닭이 그렇고 떡볶이가 그렇다. 떡볶이는 원래 매운맛이 없는 음식이었다. 그것이 대중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추장이 첨가된 것이다.

고추장의 매운맛은 복합적인 매운맛이다. 메주의 구수함과 곡식을 삭힌 단맛과 고추의 매운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세계적인 소스로 발전할 수 있는 높은 단계의 소스다. 여기에 식초를 첨가해서 초고추장을 먹으면 신맛이 하나 더 추가된다. 서양의 핫소스와 비교해봐도 훨씬 풍부하고 깊은 맛을 지니고 있다. 다만 아직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 맛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고추장의 미래

그런데 고추장 자체가 공장 제품으로 변모하고 있기에 너무나 단순한 고추장만 판치는 게 못내 아쉽다. 예전의 고추장은 지방마다 집집이 곡식도 찹쌀, 보리, 수수, 팥, 고구마와 같이 다양한 재료를 써서 맛을 돋웠고, 부재료도 누룩이나 엿기름을 쓰거나 말린 생선, 다시마, 미역을 첨가하는 등 다양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공장 제품이라고 해서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못 하라는 법은 없다. 여기에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 향신료와 식초를 첨가하면 전 세계인이 즐기는 고추장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김치와 자장면에서 보듯, 새롭고 참신한 맛의 개발에 재주가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 짠맛, 단맛, 구수한 맛, 신맛, 매운맛이 어우러진 다양한 고추장을 맛보고 싶다. 고추장은 가장 중독성이 강한 짠맛, 단맛, 매운맛, 아미노산의 맛을 포함하고 있기에 충분히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고구려의 말발굽과 수레가 드넓은 만주 벌판을 달렸듯 고구려의 산물인 메주와 한반도의 천일염과 떡과 고추가 보태진 고추장이 드넓은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아주 매혹적인 맛으로 다가갈 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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