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제중원> 125년…진짜 설립일은 며칠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제중원> 125년…진짜 설립일은 며칠인가?

[근대 의료의 풍경·12] 4월 10일 혹은 14일?

오늘은 주로 날짜 이야기를 해보자. 병원 설립을 위한 외아문의 실무적인 준비 작업은 일단 1885년 4월 3일로 마무리되었다. 홍영식의 몰수된 집을 병원으로 단장했고, 병원 규칙을 마련하여 알렌에게도 보냈으며, 새로운 병원이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전국에 공포했다. 이제 국왕의 재가만 남겨놓았다(제8회).

알렌의 일기는 다음과 같이 이 과정을 잘 보여준다.

병원은 내일 (공사를) 마칠 예정이며, 모든 것이 근사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The hospital is to be finished tomorrow and just as everything begins to look lovely.) (3월 31일)

오늘 외아문에서 나에게 다음의 규칙을 전해왔다. 병원 운영을 규정하는 이 규칙은 테시카가 작성한 것으로 그의 능력을 보여준다. (4월 3일)

어제 병원을 열었는데 외래 환자가 20명이었으며,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 3명은 아직 동의하지 않은 상태다. (The hospital opened yesterday with 20 out patients and three cases for amputation who have not consented.) (4월 10일)

새 병원은 광혜원이라는 새로운 이름(필자 : 조선의 옛 병원의 이름이 혜민서라는 것과 대비하여 언급한 것이며 이 날 카이로세가 알렌에게 알려준 것이다)을 가졌는데, 덕을 베푸는 집이라는 뜻이다. (the new hospital, which has a new name also Kwang Hay Won or virtue civilized house.) (4월 13일)

▲ 1885년 4월 10일자 알렌 일기. "어제(4월 9일) 병원을 열었다." ⓒ프레시안
외아문이 4월 3일 사대문과 종각에 게시한 공고문에는 "오늘부터 매일 미시(未時)에서 신시(申時)까지 병원 문을 열어 약을 줄 것"이라고 했는데, 알렌의 4월 10일자 일기에는 어제, 즉 4월 9일에 병원을 열었다고 되어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4월 3일부터 병원 문을 열어 약을 줄" 계획이었는데,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 실제로는 "4월 9일에 병원을 열었다"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4월 3일부터 8일까지 엿새 동안은 알렌 없이 병원 업무를 보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뚜렷한 근거 없이 외아문의 공고를 허언(虛言)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급한 일일 터이다.

▲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1886년)의 병원 개원을 언급한 부분. 1885년 4월 10일자 일기와는 개원 날짜만 하루 차이 날 뿐, "open"의 의미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프레시안
그런데 병원을 열어 개원한 날짜가 4월 10일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알렌이 작성한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의 "병원은 1885년 4월 10일 특별한 의식 없이 문을 열었다"라는 언급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밖에 미국대리공사 폴크가 미국 국무부에 5월 30일자로 보낸 보고와 <The Korean Repository>(1892년), <Korea Mission Field>(1908년)에도 4월 10일로 되어 있지만 참고 사항일 뿐으로 생각한다.

▲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소장)의 속표지. ⓒ프레시안
그러면 같은 알렌이 남긴 기록 중에서 어느 쪽을 더 신뢰할 수 있을까? 4월 10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기>는 사적(私的)인 데에 반해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는 공(식)적인 것이므로 신뢰성이 더 높다고 주장한다.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꼼꼼히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형식적인 측면에 대해서만 언급하자.

영문으로 된 보고서의 명칭은 "First Annual Report of the Korean Government Hospital, Seoul"이다. "Korean Government Hospital, Seoul"은 물론 제중원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제중원 (제)1차년도 보고서>라 한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정확한 번역은 당연히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조선 정부 병원"이라는 성격을 가리기 위해서 굳이 <제중원 보고서>라고 하는 것이라면 작지 않은 문제이다.

보고서의 작성자는 알렌과 헤론 두 사람으로 되어 있다. 알렌은 자신의 직책을 조선해관 의사(H.K.M. Customs Medical Officer. H.K.M.은 His Korean Majesty, 즉 '조선 국왕 전하'라는 뜻이다) 겸 공사관 의사(Legation Doctor)라고 했으며, 헤론은 아무런 직책과 소속을 표기하지 않았다. 지난 번(제10회)에 언급했듯이 이들은 제중원에서 중요한 활동을 해 왔지만 정식 직원이 아니므로 "제중원 의사"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영문으로 되어 있는 것 등으로 보아 알렌과 헤론이 미국 북장로교 선교본부에 제출하기 위해서 작성했을 것이다. 그에 대해 헤론은 선교본부 총무 엘린우드에게 보낸 1886년 4월 8일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알렌 의사와 저는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했던 사업에 대한 보고서를 거의 마쳐가는 중이며, 그 보고서 몇 부는 출판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Dr. Allen and I have been getting ready a report of our work for the past year, a few copies of which we hope to have published.)."

그러나 막상 보고서에는 작성을 의뢰한 단체나 기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제출처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라는 제목만 보면 정부의 공식문서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보고서는 일기와 달리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점에서는 '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공식적'인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공(식)적인 기록이 사적인 일기보다 반드시 신뢰성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자기 자신과의 대화인 일기는 일반적으로 거짓이 가장 적은 기록이다. 그보다도 바로 다음날(4월 10일) 쓰인 알렌의 일기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입증되기 전에는 그것을 믿지 않을 이유란 없다. 1년 뒤에 작성된 <조선 정부 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에는 4월 10일에 개원했다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 요컨대 알렌이 첫 진료를 시작한 날이 4월 9일임을 부정하는 근거는 드러난 바 없다.

알렌에게는 제중원에서 자신이 진료를 시작한 날이 의미가 가장 클 것이다. 한편, 제중원 설립 준비에 관여한 외아문 관리들에게는 4월 3일이 제일 소중할 수 있다. 그러면 "객관적으로" 가장 뜻이 깊고 따라서 "제중원 설립일"이라고 할 만한 날짜는 언제인가?

제중원이 나라에서 세운 병원임을 잊지 않는다면, 당시 조선이라는 왕권국가의 주권자인 국왕의 "윤허"(재가)가 내려진 날을 설립일로 삼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날은 언제인가?

<한성주보> 1886년 2월 1일자 기사 "금년(1885년) 정월 25일에 總理衙門에셔 聖諭를 奉하야 병원를 齋洞西邊에 刱達하고 院號는 濟衆이라 하고"(제10회)를 근거로 1885년 3월 11일(음력 1월 25일)이 국왕의 재가 날짜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 기사를 꼼꼼히 보자. 이 기사는 "聖諭를 奉하야(받들어)"라고 했지, 3월 11일에 "聖諭가 내려졌다"라고 한 것이 아니다. 기사의 정확한 뜻은 "통리아문(원문에는 총리아문)에서 국왕의 지시(聖諭)를 받들어 1885년 3월 11일에 병원을 재동 서쪽 끝에 새로 열고(刱達) 병원 이름은 제중(원)이라 하고"이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거니와 국왕의 재가 날짜에 대한 언급도 없다.

그럼 <일성록(日省錄)>, <고종실록>,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과 같은 조선 정부의 기록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혜민서와 활인서를 이미 혁파했는데 이는 조정에서 널리 구휼하는 본의로 놓고 볼 때 아주 결함이 됩니다. 별도로 원(院) 하나를 설치하여 광혜원(廣惠院)이라고 부르고 외서(外署)에서 전적으로 관할하게 하는 동시에 당상과 낭청을 차출하는 것과 일체 사무를 처리하는 것은 모두 해당 아문에서 초기(草記)하여 품처(稟處)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했다. (議政府啓言 惠民活人兩署 旣已革罷矣 其在朝家廣濟之意 殊涉欠缺 另設一院 以廣惠稱號 令外署專管 堂郞差出及一竝事務 竝令該衙門請草記稟處 允之) (<일성록> 1885년 4월 14일[음력 2월 29일]자)

▲ <일성록> 4월 14일(음력 2월 29일)자. "별도로 원 하나를 설치하여 광혜원이라고 부르고 외서에서 전적으로 관할하라고 국왕이 명하다(命另設一院 以廣惠院稱號 令外署專管)." ⓒ프레시안
<고종실록>에 똑같은 기록이 날짜도 같은 4월 14일자로 실려 있으며, <비변사등록>에도 "광혜원이라고 부르고(以廣惠稱號)" 대신 "제중원이라고 부르고(以濟衆稱號)"라고 했을 뿐 똑같은 내용의 기록이 있다. 다만 날짜가 4월 12일(음력 2월 27일)로 이틀 앞서 있다.

국왕의 재가가 광혜원이라는 명칭과 외아문의 관할에 한정되는 것이지 병원 설치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혜민서와 활인서가 이미 혁파되어 아주 결함이 되므로 병원 하나를 설치하여 광혜원이라고 부르자"는 의정부의 보고와 그에 대한 국왕의 재가를 병원 설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답답한 일이다.

여러 차례 살펴본 것처럼 제중원의 설립에는 국왕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에 따라 독판 김윤식을 중심으로 외아문이 신속하게 병원 설립 준비를 했으며, 마침내 최고 결재권자의 최종적인 재가를 받음으로써 새 병원 설립 과정이 완결된 것이다.

광혜원, 제중원이라는 병원 이름은 누가 지었는가? 국왕이 작명하여 "하사(下賜)"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기록들에는 분명히 정부(실제 설립 준비를 한 외아문일 것이다)에서 마련한 것을 국왕이 재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알렌의 한자식 이름 안련(安連)도 국왕이 작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다.

이상의 기록으로 국왕이 새 병원 설립을 최종적으로 재가했으며, 그와 더불어 인사 등 제중원의 모든 사무(堂郞差出及一竝事務)가 외아문 소관이 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국왕의 재가가 떨어진 날이 <일성록>과 <고종실록>에는 4월 14일, <비변사등록>에는 4월 12일로 되어 있는데,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알렌이 카이로세에게 병원 이름이 광혜원으로 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4월 13일이므로 국왕의 재가는 4월 12일에 내려졌다는 주장이 있다. 국왕이 병원 명칭을 하사한 것이라면, 어전회의(御前會議)가 열리기 전에 알기 어려울 터이므로 4월 12일설이 더 유력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살펴보았듯이 광혜원이라는 이름은 정부에서 마련하여 국왕의 재가를 받은 것이다. 국가 안위에 관련된 기밀 사항도 아닌데 병원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할 것이다. 병원 규칙은 이미 4월 3일에 알렌에게 통보되지 않았던가? 병원 명칭도 정부에서 정한 뒤에 자연스레 카이로세와 알렌에게 알려졌다고 해석하면 될 것이다.

▲ <비변사등록> 4월 12일(음력 2월 27일)자. 병원의 명칭이 "광혜원"이 아니라 "제중원"으로 되어 있다. ⓒ프레시안
날짜 이외에 <일성록> 및 <고종실록>과 <비변사등록>의 차이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병원 이름이 각각 "광혜원"과 "제중원"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조금 뒤에 언급하겠지만, 병원 이름은 4월 26일에 역시 외아문의 제의와 국왕의 재가로 환자 진료의 뜻이 보다 명료한 제중원으로 개칭된다.

<비변사등록>에 "제중원"으로 기록된 것은 그것이 4월 26일 이후에 작성된 것을 뜻한다. 반면에 <일성록>과 <고종실록>에 "광혜원"으로 되어 있는 것은 4월 26일 이전, 아마도 당일 날 기록한 것이거나 그것을 토대로 편찬한 것을 뜻한다. 알렌의 기록에서처럼, 사건 발생 당일 또는 보다 가까운 시기에 작성된 문서의 신빙성이 더 높을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이런 점에서 국왕의 재가가 내린 날은 4월 14일이며, 그 4월 14일을 제중원의 공식적 설립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오는 4월 14일은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제중원이 설립된 지 꼭 125년이 되는 날이다.

▲ <고종실록> 1885년 4월 26일자. ⓒ프레시안
광혜원이 제중원으로 개칭된 날짜는 4월 26일(음력 3월 12일)로 이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고종실록> 4월 26일자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광혜원을 제중원으로 개칭했습니다라고 아뢰었다(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以廣惠院改稱濟衆院 啓)"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왕의 재가라기보다 외아문의 보고로 제중원이라는 새 병원 명칭이 확정되었다.

제중원으로 이름을 고친 것은 단순한 개칭이 아니라 소급 개칭한 것이며, 아래의 "개부표(改付標)"가 그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4월 14일 국왕의 재가를 얻어 광혜원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지만, 같은 날짜로 소급하여 제중원이라고 고쳐 부르게 한 것이다. 따라서 광혜원이라는 명칭은 실제로는 4월 26일까지 쓰였지만, 형식상으로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논의를 바탕으로, 지난 회에서 언급했던 제중원 표석에 대해 생각해 보자. "광혜원 터"라는 제목 아래 "고종 22년(1885) 고종 황제의 윤허로 미국 선교 의사 알렌이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을 이곳(홍영식 참판댁)에 설립 4월 10일 개원하였다. 동년 4월 23일 제중원으로 개칭되고 1887년 구리개로 이전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 <통서일기(統署日記)> 1885년 4월 21일자. "이제 광혜원을 설립했으니 거기에 속하는 관리를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작성했던 "광혜원(廣惠院)"이라는 글자 옆에 나중에 "제중원개부표(濟衆院改付標)"라는 종이쪽지(箋)를 붙여 소급 개칭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프레시안
앞에서 살펴본 대로 병원의 처음 이름은 광혜원이었지만, 소급해서 제중원으로 개칭했으므로 표석의 제목을 "제중원 터"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 고종이 황제로 불린 것은 1897년 10월 12일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지면서부터이므로, 이 표석에는 국왕으로 표시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 제중원은 1885년 4월 14일 국왕의 윤허로 국가에서 설립한 최초의 근대 서양식 병원이다. 알렌이 병원 설립을 제안하는 등 초기부터 중요한 구실을 했고 제중원에서 도합 3년가량 진료를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알렌이 제중원을 설립했다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지석영이 의학교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또 의학교가 존속한 8년 내내 교장으로 크게 기여했지만 지석영을 의학교의 설립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제중원으로 개칭한 날짜도 4월 23일이 아니라 4월 26일이다. 또 홍영식의 직책, 직위를 어떻게 표시할지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비록 사흘 동안이지만 그는 갑신쿠데타 때 우의정을 지냈다. (구리개로 이전한 시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이 자리에는 제중원만이 아니라 훗날 광제원도 있었다. 제중원이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곳에 있었다면, 광제원은 여기에서 7년이 넘게 환자를 진료했다. 그것도 주로 조선인 (한)의사들의 힘으로. 이러한 내용도 표석을 수정하면서 담아야 할 것이다.

▲ 제중원 표석. 헌법재판소 건물로 오르는 계단 오른쪽에 설치되어 있다. 실제로 제중원이 있었던 백송 근처로 옮겨야 한다. 내용의 광정(匡正)은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프레시안
지난 회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있다. 백송의 주소지가 재동 35번지라는 사실이다(문화재청 홈페이지). 따라서 백송이 박규수의 집에 있었다는 문일평의 기록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홍영식이 박규수의 집을 구입해서 자기 집을 확장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제중원이 홍영식의 집뿐만 아니라 박규수가 살았던 집에 세워졌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중원 터" 표석은 실제 제중원이 있었던 백송 근처로, 기왕이면 "박규수 선생 집터" 표석과 나란히 세우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제11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