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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에게 '시간'은 쓰고 버리는 휴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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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에게 '시간'은 쓰고 버리는 휴지인가요"

[한국의 워킹푸어] '섬'이 된 아이들, 작아진 꿈들

우리나라의 18세 미만 어린이.청소년 중 열에 하나는 '빈곤 아동'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절대 아동빈곤율'이 2003년 기준으로 8.9%, '상대 아동빈곤율'은 14.9%인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수로 보면, '절대 빈곤 아동'은 102만 명, '상대 빈곤 아동'은 170만 명에 이른다. 절대 빈곤이란 개별가구의 경제적 능력이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상태이며, 상대 빈곤은 중위소득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삼았다. 아동 빈곤 문제는 그 사회의 '미래'와 직결된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 아동들이 제대로된 교육과 양육을 받지 못하는 문제는 '빈곤의 대물림'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빈곤 아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와 지원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의 빈곤 아동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에 따른 경제적 양극화로 가난한 이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커녕 현재 상태를 유지할 최소한의 의지마저 갖기 힘든 상황에서 빈곤층 부모들은 스스로를 돌보기도 힘들어 한다. 부모들의 좌절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 많은 희망을 잃은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사회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빈곤아동들의 직면하고 있는 일상과 정부의 빈곤아동 정책에 대해 두 번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이 아이들에게 시간은 그냥 버려지는 것입니다. 세월을 버리고 살죠. 다른 아이들처럼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무엇인가를 하나씩 이뤄가는 게 아니라 그냥 미용티슈처럼 한 장 뽑아 쓰고 버리고, 버리고. 그러니까 아무 것도 손에 남는 게 없어지는 게 가난한 애들의 삶입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희망도 없고…."

서울 남구로에 위치한 파랑새 지역아동센터(공부방)의 성태숙 시설장은 '한국 사회에서 빈곤 아동으로 살아가기'에 대해 말했다.

꿈이 작아진 아이들

'대통령'이라는 장래희망은 철들기 전 많은 아이들의 단골 메뉴였다. 현 대통령도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현재 가난한 아이들 중에 '대통령'을 장래희망으로 말하는 아이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고 한다. 정치인에 대한 선호도가 급락한 탓도 있겠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기 힘든 사회에서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조차 거창한 장래희망을 말하기 어려워졌다.

"다들 꿈이 너무 소박해졌다. 부모들의 유일한 꿈은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기초수급자가 되거나."

이 공부방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진호(가명)의 장래희망은 야구선수. 축구선수를 꿈꾸다가 얼마 전 야구선수로 바꿨다. 그러나 진호가 야구선수가 되려면 이미 초등학교 야구팀 선수로 훈련을 받고 있어야하는 나이다. 또 축구, 야구 등 프로리그가 있는 '인기종목'은 이미 부모들의 뒷바라지가 선수로 성공하는데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됐다. 영국, 브라질 등 축구유학을 보내는 경우도 이젠 드물지 않다. 진호가 이런 정보를 접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설혹 접한다 해도 큰 차이는 없다. '꿈'은 그저 '꿈'이니까.

"아이들이 '그냥', '심심하니까', 이런 말을 제일 많이 해요. 자기 통제가 가능한 어른들도 지금은 예전처럼 새벽에 우유 배달하고, 신문 배달하고, 그렇게 건실하게 사는 게 힘들어요. 일자리가 워낙 없으니까. 그렇게 애쓴들 뭐가 나아지는 게 있냐는 좌절감들에 사로잡혀 있죠."

섬처럼 사는 사람들…공부방의 최대 경쟁 상대는 피씨방?

달동네, 산동네. 이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지칭하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이 흩어져 산다. 뉴타운 등 최근 몇 년 사이 불어 닥친 재개발 열풍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살던 동네에서 쫓겨났다.

"이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서로 도움도 주고, 정보도 공유했죠. 지금은 섬처럼 뿔뿔이 흩어져 살아요. 그러다보니 상호 원조도 힘들고,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도 점점 줄어들죠."

▲ ⓒ연합
뿔뿔이 흩어진 삶은 빈곤 가정의 아동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지역아동센터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부모도, 아이들도 얻기 힘들어진다. 방과 후 부모가 일을 마치고 퇴근하기까지 혼자 방치된 아이들은 적절한 보호와 통제를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나선다. 이 아이들을 가장 유혹하는 곳 중 하나가 피씨방이다.

"남자 아이들의 경우 피씨방 문제가 매우 제일 커요. 이 동네도 두세집 건너 하나씩 피씨방이 있어요. 자기들끼리 출혈 경쟁을 하다보니까 1시간에 500원 하는 곳도 생길 정도입니다. 거기에 가보면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게임만하고 사는 아이, 어른들이 수두룩하죠.

이 친구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무엇인가를 잘하는 것도 힘들고 성취를 맛보기는 대단히 힘든데, 게임은 금방 반응이 있고, 성취가 있고, 짧은 시간 내에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거나 정복할 수 있다 보니 더 쉽게 빠지는 것 같아요.이런 친구들은 공부방에 오면 공부도 해야 하고 여러가지 프로그램도 하니까 적응하는데 너무 힘들어해요.

또 공부방을 그만두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피씨방입니다. 공부방을 다니던 아이들이 피씨방에 몇 번 놀러갔다가 거기서 만난 사람들하고 친해지면서 점점 공부방을 나오는 횟수가 줄고 그러다보면 공부방을 그만두게 되는 거죠."

'게임 중독'으로 한창 무엇인가를 배워야할 나이에 시간을 무작정 흘려보낸다는 것도 문제지만, 게임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훔치는 일'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문제다. 피씨방은 한 시간 이용료가 500원에서 1000원으로 싼 편이지만, 하루에 서너시간씩 게임을 하려면 적잖은 돈이 든다.

"여러 가지 경로로 돈을 마련하죠. 처음에는 용돈을 모아서 하다가 부모 돈을 훔치거나 다른 얘들의 돈을 뺏는 경우도 있어요. 워낙 많이 가면 마일리지가 쌓여서 한두시간 공짜로 할 수도 있고, 돈이 없으면 다른 얘들이 하는 걸 구경하기도 하죠. 나쁜 경우는 그렇게 해서 결국 돈을 많이 훔치는 아이도 생기죠."

"생존이 급급한 애들에게 공부가 만병통치약일까?"

▲ 학교를 마치고 와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는 파랑새 공부방 아이들. ⓒ프레시안(허환주)

"이럴 바에야 아이들을 모조리 학교에 밤 9시까지 남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정말 언제까지 공부방을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공부방을 하는 이유는 이렇게 적은 돈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문 닫으면 또 많은 아이들이 거리를 헤매고, 피씨방을 가지 않겠어요."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던 진호는 아버지, 삼촌하고 셋이 산다. 진호의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다. 아버지와 자녀들만 사는 '부자가정'은 '모자가정'에 비해 상황이 더 열악하다. 어머니들에 비해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돌보는데 익숙치 않기 때문이다. 정에 더 굶주려 있거나 부모의 통제를 받지 않아 일상생활이 더 엉망일 가능성이 크다. 지역아동센터는 이런 아이들에게 부모 역할을 대신해주는 셈이다. 1학년 때부터 센터에 다닌 진호는 공부방에 오는 게 참 좋다고 한다. 또래 친구들이랑 놀 수도 있고, 자원봉사로 공부를 가르쳐주기 위해 오는 선생님들도 형과 누나 같다. "곽기수 선생님이 계속 다녔으면 좋겠어요"라고 귀뜸해 준다.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강호동 아저씨가 우리 공부방에 한번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4학년 준호(가명)는 어머니와 둘이 산다. 기초수급자인 어머니는 오랫동안 몸이 아파 준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래서 준호는 온몸에 아토피가 심했다. 센터에 다니면서 준호의 피부병도 조금 나아졌다.

열세살 동갑내기 선화(가명)와 은미(가명)도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다. 둘다 1학년 때부터 이 센터에 다녔다. 선화는 언니도 함께 다니고 있다. 학교가 끝나면 센터에 곧장 왔다가 저녁 8시쯤 집에 돌아간다. 아이들 학교가 끝나는 오후 서너시부터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8-9시까지 센터는 30명에 가까운 아이들로 복작복작하다.

"학교는 오로지 얘들에게 공부만 하라고 해요. 학력 향상에만 관심이 있죠. 하지만 지금 당장 생존이 힘겨운 얘들한테 무조건 공부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얘기는 설득력을 갖기 힘듭니다. 아이들도 눈치가 빤하지 않겠어요?"

파랑새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구로구 가리봉동 지역도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재개발이 끝나고 나면 이 지역에 살던 많은 빈곤층들은 또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또 재개발로 임대료가 오르게 되면 가뜩이나 운영비가 모자라는 지역아동센터도 더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살 곳이 줄어들고 있죠. 그냥 요만큼이라도 우리들이 살 수 있게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그게 아이들과 내가 최대한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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