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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하청업체 사장 6년 만에 9억 빚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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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하청업체 사장 6년 만에 9억 빚만 남았다"

[인터뷰] 조선사의 하청업체 쥐어짜기 폭로한 김병필 씨

"STX 하청업체에서 6년 일을 하고 남은 것은 8억8000만 원의 빚뿐입니다. 원청인 STX가 하라는 대로 최선을 다해 일했을 뿐인데, 결국 회사는 얼마 전 문을 닫아야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돈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STX 하청업체였던 주식회사 진명의 사장 김병필(39) 씨는 "하루 하루가 생지옥 같다"고 했다. 지난해 말까지 총 60명의 직원을 거느리던 '사장님'이었던 그가 순식간에 수많은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그가 빌린 9억 원에 가까운 빚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적자를 메우고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조금씩 빌리기 시작한 돈이 만 5년이 넘으면서 그렇게 불었다.

그 이유에 대해 김병필 씨는 원청인 STX조선해양을 지목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과 함께 국내 '빅 4'에 속하는 대형 조선사인 STX 원청의 무리한 단가인하와 모든 법적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횡포가 하청업체들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조선사가 정규직보다 몇 배 더 많은 수의 하청업체 직원을 고용해 배를 만든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작업 현장에 가 보면 정규직과 하청업체 직원을 구분하기 힘들다. 정규직보다 더 위험하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턱없이 낮은 대우를 받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조선업의 실상이다.

하지만 원청이 어떻게 하청업체의 등골을 휘게 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장 내일 먹고 살 일감을 손에 쥐고 있는 원청에 밉보이고 싶은 하청업체 사장은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김병필 씨는 "지난해 회사 문을 닫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체 지난 6년 동안 김병필 씨에게 무든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청 노동자 임금 주려고 500만 원 빌린 돈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 STX 하청업체, 주식회사 진명의 사장 김병필(39) 씨.ⓒ프레시안
경남 진해에 있는 STX 조선소와 김 씨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4년 7월. 그의 나이 서른셋 때의 일이었다. 그는 당시 세린기공이라는 하청업체에서 총무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처음으로 돈을 빌렸다. "회사가 인건비와 세금을 내지 못하고 있어 어쩔수 없었다"고 했다.

"당시 회사가 STX 뿐 아니라 한진중공업 등 조선소 3곳에서 일을 받아 하고 있었는데 한진중공업에서 단가가 깎이면서 3개가 다 무너지기 직전이었어요. 내가 직책이 총무다 보니, 사람들이 밀린 임금 달라고 나를 그렇게 괴롭히더라고요. 파출소까지 끌려간 적도 몇 번 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500만 원을 빌렸는데, 그게 순식간에 1억7000만 원이 되대요."

2006년 5월 그는 난데없이 '사장님'이 됐다. 그가 빚을 지고 또 졌는데도 회사가 세금압류 7000만 원, 임금부족액 4000만 원으로 파산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결국 세린기공은 문을 닫고 삼포산업이라는 다른 회사를 만들었다. 김 씨는 명의를 빌려준 사장이었다. 그러나 삼포산업 역시 2년 뒤,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그 2년 동안 김 씨는 또 2억5000만 원의 빚을 졌다.

김 씨가 마지막 회사가 된 진명을 만들어 대표이사가 된 것은 2008년 3월. 김 씨는 "STX 측이 기존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책임지라고 요구해 체불임금 및 세금 등을 다 내가 떠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1억1000만 원의 빚이 더 생겼다.

빚을 지면서도 회사 이름을 바꿔가며 사업을 계속한 이유에 대해 그는 "조선업 하청업체는 보통 3년을 주기로 폐업과 창업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형편이 어렵다보니 사실상 모든 하청 업체가 여러 방법으로 '탈세'를 하는데 3년 정도가 되면 국세청이 이를 잡아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표이사 명의를 수시로 바꾸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빚은 쌓이지만 그렇다고 사업을 당장 접을 수는 없고,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사업을 계속 했다고 한다.

1년 뒤, 진명의 대표이사 역시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금융권 대출이 필요해서"였다. 새 대표이사 명의로 진명은 또 금융권에서 총 3억5000만 원을 빌렸다. 김 씨는 "비록 다른 사람 명의로 빌린 것이지만, 이 돈 역시 사실상 내가 갚아야 할 돈"이라고 말했다.

그의 빚은 일을 계속하면 할수록 늘어났다. 김병필 씨는 "장담하건대, STX에 있는 68개 협력업체 모두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가 보여준 진명의 수입 지출 현황을 보면, 그는 한 달 평균 1억5000만~2억 원의 공사금액을 받아 인건비, 4대보험료, 법인세 등 평균 매달 2억3000만 원을 써야 했다. 3000만 원의 적자가 매달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1년의 수입과 지출을 단순하게 12달로 나눈 것이다.

"원청이 하라는 대로 하면 이렇게 된다"

그 원인을 묻자 김 씨는 "원청이 하라는 대로 하면 이렇게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부당한 하도급 계약과 불균등한 물량배분"을 들었다.

조선업은 어느 산업보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돼 있다. 큰 철판을 들어 옮기는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일을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한다. 당연히 사람과 그 사람의 기술이 중요하다.

김 씨의 한달 지출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인건비와 관련 보험료다. 상근직과 물량직(비정규직)을 합해 총 60명의 인건비는 매달 1억9200만 원씩 든다. 여기에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산재보험료도 만만치 않다. 60명 가운데 27명 밖에 되지 않는 상근직만 보험에 가입하는데도 그렇다.

김병필 씨는 "전체 직원을 다 보험 가입하려면 그 공사금액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하청업체에서 또 일명 '물량'이라 불리는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다. 이들은 김 씨 회사에서 전체의 60%나 됐다. 당사자들도 보험보다는 현금을 바라고, 회사도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들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을 포함해 아무 것도 가입하지 않는다.

사실 원청 역시 이런 부대 비용 때문에 하청노동자를 정규직보다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김 씨는 "STX의 경우 정규직은 1000명인데 반해, 하청 노동자는 70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무려 7배나 되는 것이다. 원청은 말로는 "하청 노동자도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하청업체에게 요구하지만, 정작 원청 역시 정규직보다 훨씬 더 싼 값에 기술자를 사용하기 위해 계속 하청을 늘리고 있다.

▲ 조선소의 하청 노동자. 사진은 한진중공업의 모습. ⓒ프레시안(여정민)


"명백한 불법, 나도 알고 원청도 잘 안다"

김 씨는 "물량(비정규직)이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명백한 불법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며 "원청도 물량이 존재한다는 것도, 하청업체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도 모두 안다"고 말했다.

"연말 성과급이나 명절 상여금을 줄 때 하청업체 상근직은 연차에 따라 차등지급하거든요. 1년 미만은 15만 원, 1~2년은 30만 원, 그런 식으로요. 물량직은 또 이 돈의 절반을 줘요. 그 돈을 통장에 주고, 우리가 입금시킨 자료를 주고 확인을 시켜주니 당연히 원청도 4대 보험도 가입 안 하고 사용하는 물량직이 있다는 것을 알죠."

뻔히 알면서도, 원청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모르쇠한다는 것이다. 당장 "물량도 4대 보험 다 가입시켜야 한다"고 요구하면 하청업체들이 "그럼 공사금액, 즉 기성을 높여달라"고 요구할 게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런 암묵적 동의 아래 진행된 '불법'으로 인한 위험부담은 또 온전히 하청업체의 몫이다. 실제 사용하고 있는 물량을 신고하지 않는 방법으로 보험 가입 의무를 피해간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 들통이 난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었다.

또 드물긴 하지만, 한 물량직이 "1년이 넘었으니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하고 신고하면 난데없이 목돈이 들어간다. 조선소에서는 일상다반사라는 사망사고라도 일어나면, 산재보험에 가입하질 않았으니 통상 4억 원이라는 보상금도 하청업체 몫이다.

"난데없이 떨어진 30% 삭감, 3개월 만에 문 닫았다"

사실 조선소의 하청 일은 일종의 '규모의 경제'라고 김 씨는 말했다. 원청이 요구하는 공사 기일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많이 필요하니까 물량을 많이 받을수록 이윤을 남길 확률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김병필 씨는 "모든 하청업체에 똑같이 물량을 줄 수도 있는데 원청이 차등 배분을 고집한다"고 주장했다.

"일을 할수록 자꾸 적자가 나니까 지난해 6월에 내가 항의를 했어요. 도저히 못 하겠다고. 탑재 일을 하는 10개 업체 가운데 3개 업체는 7~8억 공사를 받는데 나머지 7개 업체는 한 달에 2~3억 원 밖에 안 되는 건 불공평하지 않냐고. 비리가 있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당시 원청이 조사를 한다고 하더니 결국 흐지부지 도루묵이 되더군요."

그는 도크를 포기하고 육상에서 배를 만드는 '스키드' 공정으로 넘어갔다. 그 분야만 해도 배를 좌우로 나눠 똑같은 양을 하청업체에게 나눠준다고 했다. 그렇게 일을 받다 보니, 매달 3000만 원이 남았다.

간신히 숨을 좀 쉴 것 같았는데 지난해 10월 STX는 하청업체에게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세계경제위기로 조선업이 불황이라는 이유였다. 공정에 관계없이 평균 20%, 김 씨의 회사가 있는 탑재 파트는 전부 30%가 깎였다. 그리고 딱 3달 만에 김 씨는 회사 문을 닫아야했다.

"한 달 수입, 즉 원청에서 받는 공사비가 2억 원이었는데 30% 깎이면 1억4000만 원이 되죠. 원청이 공사금액을 깎는다고 인건비를 똑같이 낮출 수 있을까요? 200만 원 받던 사람이 30% 깎이면 140만 원이 되는데? 못 하죠. 원청도 '하도급 근로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강요는 하지 말라'고 했어요. 임금을 깎으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거죠. 간신히 인건비 10%를 깎인 했지만 하청업체만 고스란히 손해를 보라는 속셈이죠."

"STX, 초고속 성장으로 '빅4'에 오른 동안 하청업체는?"

▲ ⓒ프레시안(여정민)
갑작스런 단가 인하로 적자폭은 늘어났는데,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없었다. 아니, 채권자들이 돈을 갚기를 원했다. 조선업이 불황이라니 언제 돈을 받을 수 있을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김 씨가 일하며 생긴 빚 8억8000만 원 가운데 다른 사람 명의로 빌린 빚이 3억5000만 원이나 된다. 김 씨는 "결국 내가 갚아야하는 돈인데 그 사람은 이 빚 때문에 이혼까지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 씨 회사와 같이 원청의 단가인하로 문 닫은 회사는 얼마나 될까? 김 씨는 "2월까지 내가 아는 업체만 3곳 정도 된다"면서도 "사실 문 닫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답했다.

"금융권 대출이 있는 사람은 당장 어떻게 문을 닫습니까. 이자도 내야하고. 문 닫으면 노숙자 신세밖에 안 되는데. 그러니 주변 사람에게라도 돈을 빌려 어떻게든 끌고 가겠죠. 나도 지난 4년 간 그랬고…."

김 씨는 최근 서울에 올라왔다. "이 모든 것이 원청의 부당한 횡포에서 시작된 만큼 원청이 어느 정도는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짧은 시간에 고속성장을 이뤄 조선업 '빅4'의 자리까지 오른 STX의 성공에는 "하청업체와 그 노동자의 피땀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다. 김 씨는 친구 집에 머무르며 서울 용산구의 STX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국민권익위원회 등 곳곳에 진정도 하고 있다.

"아내는 얼마 전에 자살시도까지 했습니다. 나도 도저히 답이 안 보여서 분신이라고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죽으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일단 모든 노력을 다 해보자 하고 서울에 왔습니다. 조선사는 한 해면 헤아릴 수도 없는 영업이익을 내는데 하청업체만 이렇게 계속 죽어나가도 되는 겁니까?"

STX "단순히 양을 가지고 불균등 물량 배분이라 말할 순 없다"

김병필 씨의 주장에 대해 STX 측은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물량 배분이 불공평하게 이뤄져 경영에 더 어려움을 겪었다는 김 씨의 주장에 대해 STX 관계자는 "업무수행력과 불량률 등 나름의 평가기준에 따라 물량을 나누는 것"이라며 "물량 배분 비율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공사금액을 30% 삭감한 것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조선업의 심각한 불황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배의 수요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만큼 공사금액도 호황기에는 올라가고 불황기에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2006~2008년 호황기 때는 하청업체가 더 많이 받아갔다"고 설명했다.

김병필 씨가 지난해 공사단가 삭감 이후 문을 닫게 된 것에 대해서도 STX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해 본 바로는 고리의 사채를 끌어서 사업자금으로 쓴 것이 핵심 문제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청업체가 불법으로 물량직을 사용하고 있음을 원청이 다 안다"는 김 씨의 주장에 대해 STX 측은 "하도급 계약은 하청업체가 자기 권한과 책임을 모두 진다는 의미"라며 "우리가 물량직의 4대보험료를 빼고 공사금액을 산정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청업체의 책임"이라 말했다.

또 "회사 변경 과정에서 STX 측이 기존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책임지라고 요구했다"는 김 씨의 주장에 대해 STX 측은 "당연히 하청업체가 책임져야할 부분이지 원청이 요구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부당한 하도급 계약 때문에 거액의 빚을 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STX는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은 당연히 하청업체가 책임져야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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