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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의미가 담긴 바보짓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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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의미가 담긴 바보짓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핫피플] 영화 <예스맨 프로젝트> 연출/주연 마이클 비클바움 인터뷰

전세계 거대기업과 국제기구를 대상으로 한 초대형 사기극(!)을 벌이는 시민단체가 있다. 이름하여 '예스맨'. 10년째 활동을 해온 이들은 작년 자신들의 활약을 담고 직접 연출까지 한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원제는 '예스맨들이 세상을 고친다(Yesmen Fix The World)')를 공개했고, 이 영화는 베를린영화제에서 파노라마부문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가 지난주 국내에서도 개봉했다. 때맞춰 이들이 직접 자신들의 활동상을 담은 동명의 책 《예스맨 프로젝트》도 출간됐다. 예스맨의 주축이자 영화의 공동감독 중 한 사람인 앤디 비클바움은 영화 및 책의 홍보차 지난주 한국을 방문해 관객과의 대화와 연이은 인터뷰를 가졌다. 시차 적응이 힘들어 매체별 인터뷰는 취소됐지만, <예스맨 프로젝트>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 몇몇 매체들과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프레시안도 여기에 동행했다.

▲ 예스맨 프로젝트

영화 속에서는 괴상하고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웃기지만, 실제 인터뷰장에 들어선 앤디 비클바움은 평범하고 푸근한 인상의 '옆집 아저씨'같은 인상이었다. 보통의 아저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너무 신나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이라는 점 정도랄까. 인터뷰가 끝난 뒤, 서툰 영어로 "당신의 영화 때문에 희망과 용기와 웃음을 얻었다. 또한 유명한 사람들의 죽음은 계속 회자되지만 약자의 죽음은 쉽사리 잊혀지는 법인데, 당신이 칸쿤에서 2003년 돌아가신 고 이경해 씨를 책과 관객과의 대화에서 언급해준 덕에 새삼 그를 다시 기억해낼 수 있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앤디 비클바움은 오히려 자신이 기자에게 고맙고 영광이라며 새삼 반갑게 다시 악수를 청했다.

▲ 영화 <예스맨 프로젝트> 홍보차 한국을 찾은 앤디 비클바움 감독.ⓒ프레시안

-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첫인상이 어떤지.

미국보다 더 상업적이고 차가 참 많다. 속도도 무지 빠른 것 같고. 무엇보다도 음식을 잔뜩 기대하고 있다. 바베큐와 불고기 등을 먹었다. 역시 너무 맛있다.

- 한국에 와서 강연도 하고,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은 어땠는지.

한국에서 청중들의 공통된 반응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방식이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문제가 많이 생길 것 같다"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저지르고 다니는 짓들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나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의미가 있으니까 하는 거지. 설사 법적인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오히려 소송을 제기한 그 기업과 당사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 일로 언론에 자꾸 부각되면 여론이나 이미지가 나빠지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제까지 별다른 문제를 겪은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를 보호하는 보호막이 돼주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국민 혹은 대중의 법정에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책을 읽어보면, 처음 WTO 대변인을 사칭할 땐 긴장을 많이 한 듯 보였다. 사실 굉장히 용기가 필요한 일로 보인다. 그 이후로도 매번 긴장을 많이 하는지? 그렇다면 그런 긴장은 어떻게 푸는지?

글쎄... 약물로? 하하, 농담이다. 안정제처럼 합법적인 약물도 많이 있기는 하니까. 내게는 약 같은 건 별로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일부러 번지점프 같은 것을 하면서 흥분을 느끼지 않나. 나 역시 그런 긴장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치솟고 더 흥분되고 재미있다. 말하자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그리고 그리 용기가 필요한 일도 아니다. 별로 위험한 일이 아니니까. 법적인 문제도 겪은 적이 없고, 이걸 한다고 누가 우릴 공격하거나 맞거나 그러지도 않잖나. 우리야 최악의 경우라 해도 발각을 당해 망신을 당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거리에서의 시위나 한국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 같은 것들이 훨씬 위험하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내가 두려운 게 있다면 오히려 제대로 장난을 시작하기도 전에 발각되면 어쩌나 하는 것 정도다. 기껏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준비했는데 시작도 못해보면 억울하니까.

- 지금도 준비중인 프로젝트가 있는가.

일단 예스랩 프로젝트라는 걸 진행하고 있다. 이건 일종의 워크샵인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하기보다 다른 시민단체들이 준비하거나 시도하는 프로젝트들을 같이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회의를 하는 일종의 멘토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3개 정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건 절대 비밀이다. 사전에 들통나면 안 되니까.

- 대체 이런 창의적인 발상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

글쎄, 우리가 특별히 더 창의적이라고 할 순 없다. 사실 사람은 모두 기본적으로 창의적인 면을 갖고 있다. 시민단체들이나 관객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많은 이들이 저마다 기상천외하고 상상력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참 많이 갖고 있다.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떨 때도 다들 그렇지 않나. 다만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바보같은 짓들을 직접 행동에 옮긴다는 것 정도다. 중요한 건 서로 이런 아이디어들이 전달되고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 미디어에 상대적으로 의존을 많이 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는데, 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미국의 미디어들만 아니까 거기에 대해서만 답해보자면, 폭스는 아시다시피 거의 극우에 가깝고, 다른 매체들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 미디어 자체에 대해 좌우를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개별적인 기자들은 종종 서로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기자들도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에 기자의 길을 선택한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미디어와 일종의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도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를 우리가 제공해주는 거라고 할까. BBC에서 보팔 건으로 다우 대변인 행세를 했을 때에도, 미국 내에서만 600건 이상의 기사가 나왔다. 당시는 보팔사태 20주년이었는데도 별로 주목을 못 받고 있었으니까. 우리의 장난으로 보도가 나가면서 공장 폭발로 인한 오염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는 현실 같은 게 보도가 됐다. 우린 말하자면 기자들에게 핑계거리를 제공한 셈이다.

- 파슨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걸 가르치나. 그리고 학생들과도 예스맨 프로젝트를 같이 준비하기도 하나?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다. 일종의 예스맨적인 디자인이다. 결국 정치 디자인을 가르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파슨스 대학이 날 교수로 고용한 것도 내가 예스맨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으니까. 좋은 디자인,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더라도 적절한 법적 규제가 없으면 오히려 지속가능한 개발이 힘들지 않나.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은, 신병모집원을 가장하고 고등학교들을 돌며 신병모집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미국은 모병제라 부잣집 아이들이 군대에 가는 일은 거의 없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군대를 통해 기회를 찾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주로 입대를 하려고 하고 있고, 그래서 군 당국도 가난한 아이들을 주로 모병 대상으로 본다. 내 학생은 신병모집원 행세를 하면서 모병 오리엔테이션을 하되,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진행을 했다. 군대가 얼마나 끔찍하고 엉터리인지, 상이군인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끔찍한지 같은 것들을 역설적으로 알려준 것이다. 물론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도 잘 받았다. 사실 누가 알았겠는가? (웃음)

- 영화에서 보면, 당신들이 활약을 할 때 기업과 정부 당국에 피해를 보고있던 사람들은 오히려 당신들의 거짓말을 좋아하고 당신들을 환영한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 반응과는 별도로 활동가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윤리적인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사실 BBC 보팔 건 때에도 참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같이 준비하던 친구 중 하나가 그린피스에서 일을 하면서 보팔 활동에도 개입을 하고있던 친구였는데, 이 친구와도 토론을 하다가 결국 이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그 장난만으로도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데다가, 이후 다우가 보상을 거부하면 그걸로 또 뉴스가 나올 거라 판단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보팔 주민들은 20년동안 죽음과 갖은 고통을 겪으며 싸워온 굉장히 강한 분들이라는 거다. 그러니 "불쌍한 희생자들" 운운하는 미디어가 더 웃기는 거다. 오히려 "이런 일이 있는데도 다우가 보상을 안해주나?" 얘기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사실 "보팔 주민들이 실망을 많이 했다"며 우리를 꾸짖는 뉴스는 주로 영국에서 나왔고, 미국의 뉴스들은 그저 우리의 장난과 보팔의 실상만 보도했다. 알다시피 영국 BBC의 그 방송 자체가 보팔 20주년 특집 방송이었고, 이전에도 보팔 사태를 자주 다루었다. 영국에선 이미 얘기할 준비가 돼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보팔사태에 관심이 없던 미국에서는 일단 우리 활동과 보팔 실태만을 전달하는 데에 집중했다.

루이지애나에서의 경우도, 일을 벌이기 전에 철거민 활동단체와 이미 사전에 논의를 같이 했었다. 혹여나 잘못된 희망을 주지 않을까 너무 걱정이 돼서,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든 믿지 마세요"라는 전단지를 돌릴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철거민단체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 실망감이 있다고 해도, 오히려 철거민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했다. 영화에서 마지막에 발언하는 흑인남자가 바로 그 남자다.

-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개인적인 특별한 계기가 있어 운동에 뛰어들지 않나? 당신은 어땠는가.

글쎄, 나한테는 그런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상업적인 문화에 화나는 일들이 많았고, 시스템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분노야 누구나 갖고있는 것들 아닌가. 소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분노는 있었지만 나도 오랫동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계기로 꼽을 만한 사건은 아무래도 32살 때 있었던 심콥트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도 떠나고 우울증도 있고 해서 회사에 휴가를 좀 달라고 했더니, 회사에서 그냥 무시를 하더라. 화가 나서 장난을 좀 쳤지. 당시 개발하던 게임 화면 속에 남자들이 서로 뽀뽀하는 장면들을 집어넣었다. 일종의 복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개인적인 불행이 언론에는 커다란 이야기가 될 수 있구나, 나한테 이런 재주가 있구나, 그때 깨달았다. 그 뒤로 장난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세련돼졌다. 그러니 내 경우는 우연히 시작하게 된 셈이다.

- 활동하면서 후회를 한 적은 없는지.

한 번도 없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시스템의 허점을 발견하고 찌르는 건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다. 익스트림 스포츠와 같다.

- 전세계를 돌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대화를 했을 텐데, 계속 뇌리에 남아 괴롭히는 질문 같은 게 있는지.

세계를 다녀보면 대충 다섯 개 정도 언제나 똑같은 질문이 나온다. 법적 문제를 겪은 적은 없는지, 체포된 적은 없는지 등등. 항상 똑같은 질문이라 제발 이런 질문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은 때는 있었지. 그런데 한 가지, 굉장히 괴로운 질문이 있다. "여기에 A란 회사가 있는데, 혹은 저기에 B란 회사가 있는데 골려줄 생각이 없느냐" 같은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이 직접 하십시오"라는 말이다. <예스맨 프로젝트>의 의도도 어떤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을 때 직접 조직하고 행동에 나서라는 촉구다.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다.

- 운동을 하다가 절망감을 느끼고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왜 그럴까.

너무 진지하고 열심히 하다 피로감을 느껴서가 아닐까. 눈에 당장 보이는 성공은 드무니까. 내가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활동을 하든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거나 눈에 보이는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을 유념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당장 눈앞에 실패로 보이는 것들도 이것들이 계속 차곡차곡 쌓이면 밑거름이 되고 결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지만 여기엔 시간이 좀 걸린다. 쌍용자동차의 투쟁도 당장은 실패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싸움의 기억이 계속 쌓이고 축적되면 언젠가 사회는 바뀐다. 그간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현실이 어떤 모습이겠는가. 미국에서는 70년대에 유해물질 투기에 대한 규제 법안을 만들라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움직임과 활동이 계속 있었으나 오랫동안 실패를 거듭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싸움이 쌓이다 보니 여론이 점점 커지게 되고, 결국 환경부가 여론에 못 이겨 법을 제정하게 됐다.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 예스맨 활동을 하면서 당신의 인생이 변한 게 있다면.

이 활동을 하기 전에는 내 인생의 목적이 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러나 이 활동을 하면서 나의 조그마한 재주나 능력이나마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자 많은 게 변했다. 내 재능에 대해서도 알고 확신하게 됐고, 인생의 목표도 변했고. 난 지금 굉장히 행복하다.

- 한국에서 특히 막 이런 운동과 활동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응원의 말씀 부탁드린다.

한 마디로, 이런 활동은 무척 재미있다. 바보짓일수록 재미있고, 거기에 정치적 의미를 담는다면 재미가 5배로 는다. 심지어 건강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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