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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로 승화시킨 투쟁 : 웃자, 그리고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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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로 승화시킨 투쟁 : 웃자, 그리고 행동하자

[뷰포인트] 웃기는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 리뷰

멀쩡하게 생긴 일련의 사람들이 WTO같은 세계적인 기구부터 엑손, 다우와 같은 글로벌기업, HUD(미국주택개발공사) 같은 국가 공기업의 대변인을 사칭하며 '사기를 치고 다닌'다. 공명심에 휩싸여 웬 이상한 걸로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려 경쟁하는 얼빠진 악동들일까? 방송에 이름이 나기만 한다면 무얼 해도 좋다는 괴짜들일까? 하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인 다우의 대변인을 사칭해 무려 영국 국영방송인 BBC 생방송에 출연해서 "인도 보팔 사태의 책임을 지고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발언을 한 뒤 두 시간만에 들통이 났을 때, 그 장난의 주연이었던 앤디 비클바움은 자신을 찾아온 BBC의 카메라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거짓말은 불과 두 시간이었지만, 보팔을 방치하고 버려둔 다우의 거짓말은 20년을 끌었다."

인도 보팔 사태란, 보팔에 공장을 둔 세계적 화학기업 유니콘 케미컬의 공장이 폭발하면서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유니콘 케미컬은 폭발지역의 오염제거나 적절한 피해자 보상 등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보팔을 방치해뒀다. 유니콘이 '적절한 피해자 보상'을 딱 한 번 했던 것은, 미국 텍사스 주의 주민들이 집단 소송을 걸었을 때 뿐이었다. 폭발사고가 나고 17년 뒤 유니콘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 다우에 의해 인수됐고, 다우 역시 보팔을 외면했다. 예스맨들은 다우가 유니콘을 인수한 3년 뒤, 영국 BBC 방송이 마련한 보팔사태 20주년 특별 생방송 중 프랑스 파리의 BBC 지부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다우의 대변인'을 사칭해 "다우가 유니콘을 인수할 때부터 보팔에 대한 피해보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보팔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인정하며 적절한 피해보상에 나서겠다"고 발표한다. 이 발표 직후 다우의 주가는 거의 20억 달러가 폭락하며 전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으나, 결국 이들의 '사기 사건'은 불과 두 시간 뒤에 들통이 났다.

예스맨들이 골탕먹인 회사는 다우만이 아니다. 영화 <예스맨 프로젝트>가 담은 이들의 6개 활약상 중 첫머리를 장식할 뿐이다. 이들의 활동의 시작은 무려 WTO의 대변인을 자청하는 것이었고, 뒤이어 온갖 군수산업체와 글로벌 대기업, 심지어 미국주택개발공사(HUD)의 대변인을 자청하며 사기극을 벌인다. 방식도 웃기다. 예를 들어 석유에너지 회사들의 국제회의에서는 시치미 뚝 떼고 엑손의 대변인을 자청해서 사기를 쳤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인간의 사체를 제공받은 양초로 무공해 에너지원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군수업체의 심포지엄에서는 환경오염과 온난화로 전지구적 재난이 닥쳐올 것에 대비해 1인 구명장치를 발명했다며 코미디 SF에서나 나올 것 같은 기구를 선보이기도 한다.

▲ <예스맨 프로젝트>. 보팔사태로 '사기'를 치고난 뒤, 이들은 보팔 주민들이 더욱 큰 실망과 절망감에 사로잡혔다는 뉴스를 듣고 보팔로 향했다가 보팔 주민들에게 '목이 졸린'다. 하지만 이 장면은 앤디 비클바움과 마이클 버나노의 유머가 발휘된, '연출된'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의 목을 조르는 보팔 주민들은 카메라를 피해 몰래 웃고 있다. 실제로 보팔 주민들은 예스맨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런데 이들을 더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들이 시장만능주의자들의 논리를 차용한 가짜 연설이나 프레젠테이션이 결국 지독하게 비인간적인 방향의 결론으로 흘러가는데도, 컨퍼런스에 참석한 이들이 '매우 진지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심지어 위기관리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의 대변인을 사칭해서는 "자본주의 시대에 위기관리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 하에 "나치한테서도 배울 건 배우자"는 결론을 내리며 자본주의 시대 비인간적 시스템을 조롱하는데도, 컨퍼런스나 심포지엄에 참석한 전세계 대기업 관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역겨움이나 도덕적 저항을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신한 사업적 아이디어"라며 이들을 찾아와 앞다투어 명함을 내밀거나, 오히려 "이런 구명장치는 대테러용으로 더 적합하지 않겠는가"는 사업적 조언까지 건넨다.

영화 <예스맨 프로젝트>는 앤디 비클바움, 마이클 버나노 등 예스맨 프로젝트 활동의 주축이 되는 인물들의 활약상 중 6개를 추려 이들이 스스로 연출까지 손을 댄 기막히게 웃기는 다큐멘터리다. 이들이 대기업과 신자유주의 국제기구들을 골탕먹이는 방법들도 너무나 기상천외해서 웃기거니와, 이를 화면에 담고 영화를 진행시키는 방식 역시 지독하게 웃기고 유머러스하게 만들어졌다. 영화의 시작부터 앤디 비클바움과 마이클 버나노가 양복을 입은 채 수영장에 다이빙해 어설픈 포즈로 싱크로나이징을 하면서 자기들을 소개하는 식이다. "다음 타겟은 어디로 할까" 고민하는 장면에서는 폐가 공장 같은 곳에서 TV 한 대를 놓고 양복차림의 두 사람이 쭈그려 앉아있는 식으로 표현되고, 내레이션으로는 어느 기업을 고발하는 '문자'를 받았다면서 정작 화면으로는 쪽지를 붙인 돌이 창문을 깨고 날아오는 것으로 묘사하는 식이다. 거기에 화면에 종종 삽입되는 풍자적인 애니메이션 장면, 이들이 진지한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에서 사용하는 프레젠테이션의 풍자적인 3D 자료화면도 배꼽을 잡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유머와 장난의 이면에는, 진지한 문제의식과 끝없는 열정이 있다. 물론 여전히 그들에게 호되게 당한 기업들은 이들을 '사악하고 심술궂으며 어이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한다. 시민사회운동이라고 하면 의례히 거리에서의 격렬한 집회와 경찰들의 폭력, 각종 피켓과 격렬한 구호, 그리고 이면의 법정싸움과 기자회견 등 뭔가 '진지하고 비장한' 것을 떠올리기 마련인 우리들에게 '예스맨'들의 활동은 너무 장난질 같아 한심해 보이거나 당황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을 우스꽝스럽게 담은 영화 <예스맨 프로젝트>와 마침 영화개봉과 때맞춰 발간된 동명의 책을 보고 나면, 이들의 활동이 실은 연기 아닌 연기를 하면서 미디어를 철저히 이용하는 방식으로 일관되게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교묘한 미디어 운동이자 퍼포먼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결국 이것이다. "규제없는 자본주의란 결국 빈익빈 부익부를 가중화하며 소수의 부자들만 배불린 채 다수의 가난한 이들을 절망과 죽음으로 내몬다. 그러므로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들이 벌이는 장난질은 한편으로 충격이고, 또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운동과 시위를 저런 식으로도 할 수 있다니."라는 놀라움도 준다. 하지만 이들의 유머는 배를 잡고 웃게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혹은 변화시킬 게 너무 많은 우리의 현실을 상기시키며 묘한 슬픔과 눈물을 주기도 한다.

▲ 앤디 비클바움(왼쪽)과 마이클 버나노는 군수산업체들의 국제회의에 참석해 할리버튼 사의 대변인을 사칭해 1인 구명장치를 선보이며 쇼를 벌였다. 전 지구적 재난이 닥쳐와도 막대한 부를 소유한 극소수의 몇 명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롱과 풍자를 담은 가짜 구명기구를 선보인 것. 그러나 참석자들은 이들의 장난을 알아채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에게 앞다투어 명함을 건네며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칭찬한다. 두 사람이 이 상황에 느꼈던 절망감을 표현한 화면이다.

권위주의적인 독재정부를 가까스로 청산한지 불과 20년도 안 된 한국, 그 짧은 사이에 심지어 기업 하나가 법과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는 한국, 거기에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보다 신나는 운동'을 고민하면서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이전 세대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에서, 어쩌면 이들의 활약은 지나치게 앞선 것이거나 여전히 생경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것도 미국이니까 가능한 것 아닐까" 하는 섣부른 패배의식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홍보차 직접 한국을 방문한 앤디 비클바움도 스스로 강조했듯, "변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그토록 '즐겁게 투쟁하는' 앤디 비클바움도 국내 관객과의 대화와 책 <예스맨 프로젝트>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2003년 칸쿤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며 세계화에 저항한 故 이경해 씨를 언급하며 그의 저항에 경의를 바치기도 했다.

결국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이란, 어제의 비장했던 투쟁 덕에 오늘의 즐거운 투쟁이 있을 수 있고, 이것들이 쌓이고 쌓여 내일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건으로 2008년 11월 당시 예스맨들이 6개월 후의 날짜로 '행복한 뉴스만을 담은' 미래의 가짜 뉴욕타임즈 신문을 만들어 배포한 사건을 담은 것 역시, 그런 '내일에의 희망'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이 장면의 인터뷰에서 <샌프란시스코의 하룻밤>, <더 혼팅> 등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릴리 테일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모처럼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강추'를 할 만한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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