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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발자국]"검색결과 (전체기사 중 7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
'정보' 장악해 집권한 전두환, 학생들 징집해 '첩보' 강요했다
'한국의 권력을 쥐고 있는 파워 엘리트가 누구인지 찾고 그 이유를 밝혀라.' 미국 유학시절 정치권력론 시간에 교수가 내준 학기 과제였다. "한국의 파워 엘리트를 어떻게 찾지?" 고민을 하고 여러 문헌을 찾아 알게 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소위 '지위법'이다. 정계는 국회의원 이상, 관료는 차관급 이상, 경제는 10대기업 이사 이상, 문화교육계는 종합대학 학장 이상 등 특정 지위를 가진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언론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으로, 이중 영남 출신이 얼마나 되는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출신이 얼마나 되는지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2021.08.04 07:46:59
'벌집촌 공순이'들이 노동운동 역사를 썼다
'한강의 기적' 하면 대부분 박정희를 떠올린다. 나는 박정희가 아니라 구로공단의 여공들과 그들이 살았던 '벌집'이 생각난다. 그렇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진짜 주역들은 남들은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어린 나이에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꿈을 찾아, 서울로 올라와 '공순이'라는 비하를 받으며 벌집이라고 부르는 좁은 골방에 살면서 구로공단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일한 여공들('여성노동자'가 올바른 표현이지만 이 글에서는 당시의 표현대로 '여공'이라고 쓰겠다)이다. "허허벌판을 불도저로 밀어붙인다고 수출공단이 되겠느
2021.08.02 08:02:18
공포와 고통, 남산 '그곳'의 흔적들
"야 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 어디야?" "한라산이요." "이 새끼, 너 서울대 정치학과 학생 맞아? 한라산은 무슨! 남산이지." 남산 중턱에는 서울유스호스텔이라는 큰 건물이 있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남산을 올라 그 앞에 서자 1970년대 초 중앙정보부(약칭 중정)에 끌려가 조사관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이곳은 옛 중정 본관 건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사관 말이 맞았다. 남산은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정보부가 있었던 곳이니,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은 한라산이 아니라 남산이었다. 일상적으로
2021.07.30 07:17:24
한국판 'Z', 금지의 '끝판왕' 박정희
<Z>.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정치영화감독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한 그리스 인권운동가의 암살을 주제로 만들어서 최고의 외국영화상 등 아카데미상을 두 개나 받은 1960년대의 명화이다. 이 영화의 끝에는 1967년 쿠데타로 집권한 그리스 군부가 집권 후 금지한 목록들이 나온다. 그 중에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미니스커트다. 미국 유학시절 이 영화를 보다가 이 부분을 보고 "어쩌면 군사독재는 똑같은가" 하고 무릎을 쳤다. 박정희가 1972년 유신을 선포하며 시작된 유신시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2021.07.28 07:35:46
'전태일 기억하기'를 넘어서려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마라!"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반경, 청계천 평화시장 앞길에서 한 젊은이가 불길에 휩싸여 단말마처럼 고함을 지르고는 쓰러졌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슬프고 아름다운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대구 명덕역 근처에 명덕초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옆에는 다 찌그러진 작은 집이 하나 있다. 전태일(1948~1970)이 살던 곳으로, 이재동 변호사, 송필경 치과의사 등 대구지역 사회운동가들은 최근 시민모금운동을 통해 이 집을
2021.07.26 06:51:00
철거냐 존치냐, 서울 복판 박정희 흉상을 보며
"자, 이제 작전을 시작합시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6관구 지하벙커에는 별 두 개가 달린 모자를 쓴, 한 마른 군인이 날카로운 눈매로 앞에 모인 장교들에게 결연한 어투로 말했다. 한국현대사를 근본적으로 바꾼 5‧16쿠데타가 시작된 것이다. 5‧16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는 당시 제2군 부사령관이었지만, 쿠데타 1년 전까지 서울을 방어하는 이곳 6관구(이후 수도경비사령부로 변함) 사령관으로 근무해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이곳이 서울중심부에서 가장 가까운 부대라는 점을 고려해 박정희는
2021.07.23 06:19:50
박정희‧전두환도 이승만에 비하면…
'노동자에게 조국이란 없다. (중략)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근처에는 이승만이 해방 정국에서 살았고 지금은 이승만기념관이 있는 이화장이 있다. 이화장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큰 키를 이용해 담장 안을 들여다보자 정원에 이승만의 동상이 보였다. 이를 보고 있자, 갑자기 '민족이나 조국보다 계급과 이념이 더 중요하다'는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절이 생각났다(민족을 과소평가한 이 부분이 공산주의의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공산주의라면 치를 떨 대표적인 반공주의자인 이승만 동상을 보자 왜
2021.07.21 07:32:29
4‧19기념탑에 새겨진 '친일‧친독재' 흔적들
1995년 해방 50년을 맞아 보수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진보진영의 민중사관에 맞선 한국현대사 재평가 움직임과 그 일환인 '이승만 복권운동'이었다.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을 세운 '국부'인 이승만 복권운동을 왜 이처럼 뒤늦게 벌이기 시작했는가? 그 답은 수유리에 있다. "데모가 이적(利敵)이냐, 폭정이 이적이냐?", "부정선거 다시 실시하라!" 1960년 4월 19일 오후, 시위대는 점점 불어나 근 10만 명에 달하기 시작했다. 전날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국회 연좌농성을 마치고 귀가하
2021.07.19 07:48:59
'비문 없는 비석' 아래 잠든 진보정치 선구자
3‧1운동의 상징 유관순,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명이자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애국시인 한용운, 33명 중 또 다른 한 명인 오세창, 흥사단을 만든 독립운동가 안창호, 현대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인 이중섭, 1960년대에 혜성같이 나타났다가 저 세상으로 떠난 매력적인 저음의 가수 차중락,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시인 박인환, 아동문학가 방정환. 전혀 공통점이 없는 이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엉뚱하게도 망우리다. 그렇다. 서울 중랑구 끝자락에 위치한 망우(忘憂)공원묘지는 '근심을 잊는다'
2021.07.16 07:16:33
한강다리 끊어놓고 '북한 부역자' 처벌한 이승만
"나는 대통령 이승만입니다. 서울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군은 이미 의정부를 탈환했습니다. 아군은 서울을 사수할 것입니다.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대전으로 도망 온 이승만이 머물러 대전경무대로 불렸던 충남도지사공관(이제는 '테미오래'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거실 앞에 서자 한국전쟁 초기인 6월 27일 밤 9시 이승만이 했다는 '안심방송'이 떠올랐다. 충격적인 것은 이 방송이 있은 지 5시간 반이 지난 28일 새벽 2시 반, 이승만 정부는 서울시민들이 피난 갈 수 없도록 한강다리를 폭파한 것이다. 이승만의 이 안심
2021.07.14 07:1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