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한국경제포럼」논문에 의하면, 지난 20여 년간 사회적 신뢰가 계속 하락한 결과 이제 우리 사회는 불신의 사회가 되었다. 어느 정도 불신이 심한가? 아무리 불신의 시대라지만, 누구나 자기 가족에 대한 신뢰도는 거의 절대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100점 만점에 가까운 것으로 놓고 보면(실제로도 그렇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도는 100점 만점에 46점이다. 완전히 낙제 점수다. 이 숫자를 놓고 보면 우리 국민의 눈에 외국인 노동자는 결코 믿을만한 사람들이 못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그 보다 훨씬 못한 39점이라는 것이다. 신뢰도에 있어서 우리 국회는 외국인 노동자에 비해서도 한참 뒤진다. 막말로 하자면, 우리 국민은 국회보다도 외국인노동자를 훨씬 더 믿음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믿지만, 우리 국회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국회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얘기해보고 사귀어보면, 대부분이 정말 똑똑하고 존경할만한 분들이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모인 국회는 왜 그다지도 엉망진창이고 실망스러운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역시 낙제 점수인 46점으로 나왔다. 국민이 보기에 우리 정부나 외국인 노동자나 못 미덥기는 꼭 마찬가지다. 그러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일까? 51점으로 나왔다. 외국인 노동자가 받은 46점보다 아주 약간 높다. 사실 51점이나 46점이나 거의 마찬가지다. 학력고사에서 51점 받은 학생이 46점 받은 학생보다 실력이 더 낫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그러니까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미덥지 못하기는 우리 대통령이나 외국인 노동자나 막상막하요 도토리 키 재기라는 얘기다. 어떻든, 학교에서는 보통 60점 이하를 낙제로 치니까 우리 대통령 역시 신뢰도의 면에서는 완전히 낙제감이다.
우리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이렇게 낮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보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던 대통령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 국방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겠다고 공언했던 군인들이 줄줄이 대통령이 되어서 정치를 주물러 댔고, 야당의 선명성을 기치로 내걸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적과 동침한 대통령도 있었고, 정치에서 손을 떼겠다고 대국민 선언까지 해놓고 나서 나중에 슬그머니 정치에 복귀한 대통령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지 않은 진실한 대통령이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좌회전 신호를 깜박이면서 우회전했다는 욕을 듣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 하나만 놓고도 공개적으로 20번 가까이 거짓말을 했다. 이러니 누가 대통령을 믿을 것인가.
▲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 하나만 놓고도 공개적으로 20번 가까이 거짓말을 했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 정치인들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겠다고 수없이 공언해왔다. 「한국경제포럼」에 실린 논문은 '한국 경제·사회 선진화의 조건'을 밝히는 논문이다. 이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 특히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키고 우리 사회를 "신뢰 사회"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만일 이 논문의 주장이 옳다면,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 정치가들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 자격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대통령부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대고 여권 정치인들은 그런 대통령을 두둔하고 앉았으니 우리 사회가 어느 세월에 "신뢰 사회"가 될 것인가. 까마득해 보이기만 한다.
한국경제학회는 유구한 역사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 경제학자들의 학술단체다. 경제학자는 돈과 숫자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는 있지만, 사실 경제학은 효율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어떻게 하면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한 효과를 볼 것인가 혹은 어떻게 하면 주어진 목표를 최소의 비용으로 달성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한국경제학회가 주관한 학술모임에서 '신뢰'가 핵심주제로 떠오르게 된 까닭은 신뢰가 효율에 지대한 영향을 줌으로써 돈으로 따져도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언젠가 신문에 신뢰의 가치가 수백조 원에 이른다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이 실린 적이 있었다. 이 분이 이 숫자를 직접 계산했을 리는 없고 아마도 가깝게 지내는 경제학자가 귀띔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세종시 원안이 시행될 경우 행정비효율로 인한 손실이 수 조 원에 이른다고 해봐야 대통령과 정치가들이 거짓말로 신뢰를 잃음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는 것이 박근혜 전 대표가 우리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
신뢰의 경제적 가치를 흔히 사회적 자본이라고 한다. 사회적 자본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얘기하였기 때문에 그만두기로 하고, 다만 정부와 여권의 정치가들이 그다지도 강조하는 효율은 신뢰(사회적 자본)에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한다.
순전히 개인적 문제를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하자. 그가 다시 직장을 얻으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할까? 경제학자는 그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발품을 파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뛰어다닌들,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잃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면 새 직장을 얻기까지 무진 고생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주변 사람들 모두 그를 미더워하고 예뻐한다면 아마도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별로 발품을 팔지 않아도 새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신뢰를 받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똑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100만 원이 들 수도 있고 1000만 원이 들 수도 있다. 효율이 문제가 아니라 신뢰가 문제다.
이번에는 집단적 노력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를 생각해보자. 해마다 30조 원 이상의 돈이 뿌려지고 있다는 사교육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이명박 정부도 사교육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수차례 큰 소리 친 바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 학부모들, 특히 중산층 학부모들 중에서 정말 원해서 자발적으로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학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은 남들은 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남 따라 사교육을 시키고 있을 것이다. 만일 남들이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면 나도 시키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이 모두 나서서 절대 사교육을 시키지 말자는 사회적 협약을 맺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사회적 협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협약을 맺은들 모두가 진심으로 따라준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서로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협약을 깨고 몰래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는데, 멍청하게 나만 협약을 지킨답시고 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나만 망하는 꼴을 당한다.
어느 사회나 집단적 노력이 필요한 문제는 산적해 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신뢰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어떠하냐에 따라 똑같은 문제를 100억 원에 해결할 수도 있고 1000억 원을 써도 해결 못할 수도 있다. 신뢰가 먼저이고 효율은 그 다음이다. 신뢰를 잃은 정부는 예컨대 100억 원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1000억 원에 해결하는 정부다. 이런 정부는 국민의 세금을 하마처럼 먹는 비싼 정부다. 경제학자들이나 시장주의자들은 이런 정부를 가장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이들 대부분은 정작 신뢰의 문제를 외면해왔으니 하나만 보고 둘을 보지 못한 소치다. 다행히 이번 한국경제학회가 주관한 토론회에서 신뢰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으니 신선하기도 하고 반가운 일이다.
이 토론회에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도전으로 네 가지가 꼽혔지만, 사실 이 중 세 가지 문제(성장 동력의 둔화, 소득분배의 악화, 환경문제)는 사회적 신뢰와 직결된 문제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국민들 사이의 신뢰나 제도에 대한 신뢰는 우리의 밑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밑천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면 그 세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지만, 이 밑천이 달리면 아무리 효율적으로 그 세 가지 문제를 풀려고 발버둥친들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로 꽤 오래 동안 그 세 가지 문제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결의 기미조차 가물가물하지 않은가. 그 세 가지 문제는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지만 신뢰의 문제는 우리를 한심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들 사이의 신뢰 그리고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밑천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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