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소니가 최근 3000억 엔의 적자를 냈다고 하는데 소니가 최근 주춤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전 CEO였던 이데이 노부유키가 소니를 잘못 경영한 이야기와 지금 CEO인 하워드 스트링어가 일본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미국에서 일본 본사를 'e메일 경영'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데이 노부유키는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가 각각 트리니트론과 워크맨으로 훌륭하게 일궈낸 소니를 '본업과 관계 없는 사업'에 진출하게 만들었다가 소니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소니 VAIO 사업부에서 7년 근무하다 퇴직한 미야자키 타쿠마의 <굿바이 소니>(한국에서는 <소니 침몰>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에 이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소니는 원래 일류대를 나온 멋진 양장 차림의 비즈니스맨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회사였다고 합니다. 오히려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는 일류대를 나와서 뽐내기만 좋아하는 그런 엘리트 부류를 경멸하는 사람들이었죠. 두 사람은 일본에서 한동안 '대학 무용론'을 주장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런 소니였는데 이데이 노부유키는 자신이 CEO에 취임하고 나서 "소니도 PC 사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운영체제(OS)를 제공하고 인텔에서 CPU를 제공하니까 그걸 가지고 잘 조합해서 소니만의 PC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죠.
▲ 이데이 노부유키. |
소니는 똑같은 물건이라도 남보다 얇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했고 디자인 파워도 셌기 때문에 초창기의 VAIO 사업부는 꽤 선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차라리 VAIO 사업이 초기에 잘 안 되었더라면 소니는 PC 사업에서 철수를 했을 것이고 별 일 없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VAIO 사업이 너무 잘된 나머지 소니의 경영진들 사이에 '이제 기술은 필요없다' 풍조가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이 표준화 되고 분업화 되어서 MS에서 OS를 사오고 인텔에서 CPU를 사와서 조립만 하면 되는데 기술이 뭐 필요 있냐는 것이죠. 그래서 갑자기 엔지니어들이 대량으로 해고되기 시작했고 소니 본사에는 멋진 양장 차림의 상경 계열의 사람들(소위 상위권 대학의 경영학과 출신들)이 우후죽순으로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소니 내부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본사족'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기술의 소니에서 '기술 천시' 풍조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소니의 기술 경쟁력은 이 때를 기점으로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소니가 최근 잘 안 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이데이 노부유키의 잘못된 결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니는 원래 AV회사이고 비슷한 기능을 가진 제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능력' 같은 아날로그적인 능력이 중요한 회사입니다.
따라서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많이 필요한 업종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게 기술의 숙련도가 중요한 회사에서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풍조가 퍼지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거기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삼성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도 이건희 씨 개인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 빠질 수 없습니다. 이건희 씨에 대해서는 먼저, '일본의 방식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일본의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숭상했던 것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어야 옳다고 봅니다.
'우리의 주력 업종은 뭐다'를 명확히 정하지도 않고 돈 되는 것이라면 미친듯이 이것저것 다 하는 것을 소위 '선단식 경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선단식 경영의 원조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일본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유학을 한 이건희 씨는 일본의 옛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서 삼성그룹을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빚어낸 장본인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재벌가의 자제라면 미국의 방식과 일본의 방식을 모두 섭렵한 후 한국에 최적화된 방식은 무엇인가를 남보다 더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집안에 천문학적인 재산이 있었는데 '시간과 돈이 부족해서 옛 일본 방식밖에 섭렵하지 못했다'는 궁색한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희 씨 개인은 선친의 뜻에 따라 삼성의 경영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대에서 '부자 세습'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즉 이재용 씨를 삼성과 관계없는 삶을 살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고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삼성은 '부자 세습'이라는 악순환이 2대째 이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큰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삼성에서 근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차피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음 총수는 이재용'이라는 생각이 각인돼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해 해도 다음 오너가 확정이 된 상황에서 누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창조적으로 일할까요.
어떻게 보면, 삼성은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회사'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음 총수는 이재용인데 열심히 일하면 뭐 하죠? 지금 소니의 CEO가 이부카 마사루 씨나 모리타 아키오 씨의 아들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하드웨어의 스펙에만 메달리는 것도 일본 식의 답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삼성은 선단식 경영을 하는 회사이고 '우리는 이것에만 주력하겠다'라는 자세가 매우 부족한 회사입니다. 그래서 삼성의 제품은 대게 '고만고만'합니다. '우리는 mp3에만 주력한다' 이런 자세가 없기 때문에 mp3도 애플 아이팟처럼 세계 최고가 아니고 삼성 매직 스테이션도 HP나 Dell의 PC처럼 세계적인 수준이 아니고 고만고만하며 애니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퀄컴에서 모든 것을 제공하니 우리는 조립만 하면 되지 않겠냐"라고 하는 안일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소니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아서 씁쓸합니다.
이런 삼성의 무능을 그대로 방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의 소비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성 매직스테이션이 특별한 장점도 없고 '고만고만' 하다면 안 사면 됩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아줌마, 아저씨들은 텔레비전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서 춤 몇 번 추면 아무 생각없이 매직스테이션을 삽니다. 삼성도 삼성대로 무능하지만 그런 무능을 그대로 방조하는 소비자들도 무능한 소비자들인 겁니다.
이제라도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소비자들이 '고만고만'한 삼성의 제품을 안 사면 되는 것입니다. 삼성 불매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필자인 최준열 씨는 국산 리눅스 배포판을 개발한 1인 기업인 다이나시스템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최준열 씨의 메일 주소는 ceo@dynasys.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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