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 안의 송두율, 망각과 기억 사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 안의 송두율, 망각과 기억 사이

[이슈 인 시네마] <경계도시 2> 지지 릴레이 리뷰 (5)

※ 2003년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무려 37년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벌어진 마녀사냥 광풍을 카메라에 담은 영화 <경계도시 2>가 3월 18일 극장에서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회 각계 인사들이 이 영화에 응원을 보내며 프레시안에 릴레이로 지지 리뷰를 기고해오고 있는 가운데, 다섯 번째 지지리뷰는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가 보내왔다. 박상훈 대표는 송두율 교수가 독일에 귀국한 후 한국 방문의 기록을 담아 2007년에 펴낸 책인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의 기획자이자 편집인이기도 하다. - 편집자 주

<경계도시 2>는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은 '해방 이후 최대 거물 간첩사건'으로 불린 2003년과 2004년 사이의 송두율 사건을 되돌아보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처음 초청 당시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였던 송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법과 여론에 의해 조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기존에 송 교수가 가졌던 그 모든 사회적 평가와 지위를 일순간에 상실했다. 교수에서 시간강사로 민주인사에서 거짓말쟁이이자 사기꾼으로, 심지어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의 돈을 받아다 해외에서 호의호식한 파렴치범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해야 했다. '피의자 인권', '무죄 추정 원칙', '사상과 학문의 자유' 같은 우리가 권위주의 시대와 투쟁하며 이루어 냈다고 믿었던 모든 자유주의 내지 민주주의의 권리와 장치들이 작동되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체제의 문제점이나 '인권'과 '자유'를 말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거의 힘을 얻지 못했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위한 절박한 수호자여야 할 대부분의 지식인들조차 이념적 입장 차이나 법의 잣대를 빌어, 혹은 도덕과 양심을 기준 없이 동원해 송 교수를 나무라는 데 동참했다.

▲ <경계도시 2>

순수 법률적 관점으로만 사태의 전개과정을 일별한다면, 송 교수 사건은 매우 단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송 교수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기소되었지만 국가보안법에 의해 석방되었다. 당시 판사는 여론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했다면서 검찰의 기소 내용이 "40%는 확신, 60%는 심증"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애먼 사람 잡았다 풀어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국가보안법조차 송 교수를 석방하게 되었지만, 송 교수가 독일로 돌아간 후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누구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누가 그 과정과 결과를 책임져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진보파들의 잘못도 크다. 평소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했던 진보파들은, 송두율 사건의 현실에서는 "과도한 도덕주의"의 잣대를 들이밀며 너무나 쉽게 문제를 개인화하는 데 기여했다. 물론 인간적 실존에 대한 존중은 우리 사회 보수파들에게 더 요구되는 덕목이다. 송두율 사건은, 과거 "간첩에게 무슨 인권이 필요해"라며 공안사범에 대한 고문을 정당화했던 그 엄청난 태도부터 우리 사회의 보수파가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진보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너무나 생생히 보여주고 있기에 전율에 가까운 충격을 준다.

그 때 그 모든 일들이 이제는 좀 성찰적으로 되짚어지고 반성적으로 재인식되었으면 한다. 윤이상, 정수일, 서준식…… 수많은 간첩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혐의'로 '인간'을 잊게 하는 국가보안법의 그 특별한 방식을 문제삼지 않고 오늘을 또 보내는 한, 이런 일은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 한 증언이 될 것이다. 꼭 챙겨들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경계도시 2> 지지 릴레이리뷰 이전 글

<4> 2003년 그리고 2010년,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질문 - 김이환 소설가
<3> 사라진 경계도시를 기억하기 : <경계도시 2>를 감상하는 두 가지 시선 - 이희영 대구대학교 교수
<2>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추민주 명랑씨어터 '수박' 대표
<1> 채플린과 007, 그리고 <경계도시2> - 서복경 서강대학교 교수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