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용산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인 평택시 팽성읍에 3차례에 걸쳐 토지수용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영농행위를 막기 위해 중장비를 동원해 농수로를 차단하고 논에 구멍을 뚫기도 했지만 팽성 주민들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수로를 복구하는 한편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은 '건답직파' 방식으로 논에 볍씨를 뿌리고 있다. 한편 국방부는 주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둘레가 25Km에 달하는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에 철조망을 설치하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23일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대추리 600번째 촛불행사'를 앞두고 사회진보연대 진재연 정책부장이 글을 보내왔다. 지난 2월부터 아예 대추리로 거주지를 옮겨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진 부장은 현재 대추초등학교 안에 설치된 솔부엉이 도서관의 운영을 맡고 있다. 〈편집자〉
지난 4월 7일 국방부는 농수로에 시멘트를 붓고, 다리를 끊고, 농지를 파헤쳤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새까만 용역과 경찰들을 몸으로 막아내는 것 외에 달리 도리가 없어, 주민들은 포크레인 위에 올라가고 레미콘 바퀴 아래 깔려야만 했다.
그렇게 아수라장이 되었던 날 오후, 나는 평택시에 있는 굿모닝병원에 있었다. 안성천 쪽의 1호 수로 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포크레인과 렉카차를 막아내기 위해 싸우던 중 도두리에 사는 이호선 할아버지가 경찰에 밀려 쓰러지셨다. 머리를 다치신 할아버지와 함께 나도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이것저것 검사한 후 다행히도 크게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안정을 취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병원 앞에 또 한 대의 구급차가 도착했고 한 환자가 다급하게 응급실로 들어왔다. 대추리 김금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눈물을 흘리시며 "분해…분해…"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간혹 가슴을 치고 머리를 흔드는 모양새로 보아 마음을 달래기가 힘든 것 같았다.
조용한 응급실에서 할머니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분하다"는 말이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던 오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할머니의 손을 잡아드리며 함께 흐느끼는 것뿐이었다. 그 시간 대추리, 도두리 들녘에서는 한국정부와 미군이 그렇게 분하고 억울한 주민들의 가슴에 차가운 시멘트를 부었다.
여경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가 실신하신 김금순 할머니는 구급차 안에서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박애병원'으로는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박애병원은 송명호 평택시장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이다. 주민들은 송 시장만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며, 아파 죽는 한이 있어도 박애병원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모으신다.
허리 굽으며 일군 땅을 국방부에 팔아넘긴 평택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이미 평택시민이기를 포기했고,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거부했다. 주민등록증을 불태우고 독립을 선언한 주민들은 허리 굽으며 일궈온 땅을 미군에게 내준다는 정부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다.
***목숨 같은 땅**
〈사진1〉
나는 지금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 살고 있다. 대추리 주민이 되어 미군기지를 막아내기 위한 싸움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을에 수확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대추리에는 맛 좋은 쌀이 나는 벌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 와 본 사람들은 확 트인 들판을 바라보며 한번 놀라고 이러한 땅이 미군기지가 된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란다.
주민들은 여느 농촌과 같이 농사를 짓고 있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농사짓기가 힘들다. 국방부는 "이 곳에서 영농행위를 하면 7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계고장을 보냈고, 농사를 못 짓게 하기 위해 농지를 파헤치고 수로를 끊고 다리를 부수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주민들에게 "6월말까지 이주하지 않으면 7월부터 집을 부수겠다"는 우편물을 보냈다. 하지만 그 어떤 계고장도, 농사를 지으며 이 땅에 살겠다는 주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그 어떤 포크레인과 레미콘도 볍씨와 비료를 뿌리는 주민들의 손을 멈출 수 없다. 이 땅은 주민들의 '목숨'이기 때문이다.
농사 지어야 할 시기에 대추초등학교 앞에 쌀가마 가져다 놓고 앉아 학교를 지키는 주민들을 보면, 모판에 흙을 담으며 행복해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 그 '목숨'이라는 말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가 않는다.
갯벌이었던 땅을 연장도 없이, 손으로 막아 옥토로 만드는 그 대안 없는 노동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이곳에 살면서 조금씩 그 목숨 같은 땅을 지키고 살아 온 전설 같은 이야기를 몸으로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김금순 할머니가 가슴을 치며 내뱉으셨던 '분하다'는 말도 조금씩 나의 언어가 되어 가고 있다. 국가권력이, 노무현정권이, 미군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세 번째 추방**
국가권력은 그 언제나 나랏일이라는 이름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내쫓았다. 대추리, 도두리 땅은 주민들이 이미 두 번씩이나 쫓겨난 후에 일군 땅이다. 대추리, 도두리 땅은 원래 바다였다.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한반도 지형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평택은 바닷물이 유입되고 드넓은 간석지가 펼쳐진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버려진 갯벌에 둑을 쌓아 개간을 시작했다. 지게로 흙을 나르고 맨손으로 삽질, 가래질 하며 일궈 낸 땅이다. 아이 업고 둑을 쌓다 아이를 떠내려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목숨 걸고 일궈 놓은 땅에 국가와 권력은 갑자기 '무허가' '국유지' 등의 이유를 들먹이며 땅을 빼앗아갔다. 1943년 일본군에게 한 번, 1952년 미군에게 또 한 번. 이번이 세 번째 추방인 것이다.
정부가 하는 일에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이치인 줄 알았던 주민들은 보상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천막 짓고 살기 시작했다. 귀를 찢는 비행장 소음을 참아내며 다시 땅을 일궜다. 시끄러운 비행기 소음에 깜짝깜짝 놀라며 잠을 못 자던 아이가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세 번째 추방에 맞서 주민들은 말한다. 그 때는 아무 것도 몰라 쫓겨났지만 이번엔 절대 안 준다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며 땅을 지키는 것만이 우리 모두가 살 길이라는 것을 주민들은 알고 있다.
포크레인이 파 놓은, 주민들의 키보다 더 큰 구덩이에 드러난 지층의 빛깔은 지난 세월 대추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파헤쳐진 저 아래 땅은 이 곳이 갯벌이었던 당시의 회색 흙빛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위로 갈수록 조금씩 갈색으로 변해가는 흙은 갯벌이 농토로 변해가는 동안 주민들이 흘린 땀과 피를 모두 담고 있다. 저 위정자들은 주민들의 고되었고 대안 없는 노동을 군화발로 짓밟으며 이곳에 전쟁기지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 어느 때 단 한 번도 노무현 정권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의사를 물어온 적이 없다.
***촛불 밝힌 지 600일**
〈사진2〉국방부의 야만적인 침탈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최근에야 비로소 이곳 싸움이 널리 알려지고 있지만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힘겹고 외로운 투쟁은 벌써 3년을 훌쩍 넘겼다. 또한 590일이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녁마다 밝혀 온 촛불은 이제 600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땅을 지키기 위한 촛불행사'가 4월 23일, 600일이 된다.
매일 저녁 촛불집회는 주민들이 함께 만나 이야기하고 웃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며, 끝이 없을 것 같은 싸움에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새롭게 찾아오는 일일주민들을 반가이 맞아들이는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다. 나처럼 무작정 살겠다고 오는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웃음으로 맞아주시고, 이렇게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비단 우리만이 아님을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다. 촛불집회에 찾아오는 노동자, 농민, 여성 등 모든 시민과 팽성 주민들이 만나 서로 배우고 깨닫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하루 일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촛불집회는 절대 빠지지 않는 주민들은 그렇게 하루하루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들은 항상 말한다. "불안해 하지 말고, 동요하지 말고, 평온하게 살아가자"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게 쉽지 않지만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촛불 꺼뜨리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승리하는 봄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봄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추리로, 도두리로 모여야 한다.
〈박스 시작〉
저는 사회진보연대 회원이며 지금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 살고 있습니다. 주민들과 함께 미군기지를 막아내기 위한 싸움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 지난 2월 초, 대추리로 이주했습니다. 대추초등학교 안에 있는 솔부엉이 도서관 관장 일을 하며, 도서관을 지키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솔부엉이 도서관이 있는 대추초등학교를 미군기지확장공사를 위한 자재창고로 쓰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평온하게 농사짓고 책을 읽으며 이 땅을 지켜 나갈 것입니다.
솔부엉이 도서관에서는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30분,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는 공부하는'대추리 영농학교가 열립니다. 농사 짓는 게 싸움이 되어버린 기막힌 현실이지만, 대추리 주민과 지킴이들은 올해 농사 잘 지어서 꼭 승리하겠다는 각오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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