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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in] 슬픈 노처녀, 그대들의 이름은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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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in] 슬픈 노처녀, 그대들의 이름은 '안나'

[공연tong] 음악극 '도시녀의 칠거지악' 속 공감의 멜로디

이 시대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그것도 노처녀로 살기란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유전자의 축복이 얼굴에 미치지 못했다면 머리라도 좋던가, 얼굴도 그저 그렇고 출세하지도 못했다. 살은 죽도록 안 빠지는데 그렇다고 재벌 집 귀한 딸내미라 좋은 음식들만 많이 먹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서른셋 별 볼일 없는 노처녀가 됐다. 꼴이 이러니 멋진 왕자님이 나타날 리 없다. 왕자님들은 어여쁜 공주님을 찾아 다 떠나버렸다. 집에서 뒹굴 거리고 있자니 교회에 다녀온 어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예수님은 네 나이에 인류를 구했어!" 사진 속 안나의 하루는 그렇게 또 지나간다.

▲ ⓒ프레시안

동창회에 참석한 안나는 하마터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뻔 했다. 그녀들의 얼굴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친구들은 한 명이 건넨 명함을 받아들고 좋아 어쩔 줄 모른다. 바로 친구의 남편이 일하는 성형외과 명함이다. 그녀에게 잘 보이면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규격화된 여성 이미지에 맞춰 절도 있게 변화하는 사람들과 한 발짝 떨어져있는 안나는 친구들을 멀뚱히 바라본다. 얼마 전 발레를 시작한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며 괜찮다고 말하지만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우리가 안 괜찮아!" 이것이 안나가 가진 첫 번째 죄악, 바로 자만심이다.

▲ ⓒ프레시안
연극 '도시녀의 칠거지악'은 세 명의 안나를 등장시켜 도시에서 행해져서는 안 될 일곱 가지 항목을 에피소드 식으로 보여준다. 자만심, 1%의 희망, 무감각, 동일시, 죄악감, 운명론, Back to the past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일회용 사랑 속에서 아직도 미련하게 부여잡고 있는 1%의 희망,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지 못하는 무감각, 지나간 시간에 집착하지만 되돌리기에는 무능한 인간의 모습 등, 이제는 '죄악'이라고 여겨질 만한 사건의 단편들을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그 풍자 속에는 역설이 담겨있다. 과장된 배우들의 표정과 빠르게 지나가는 에피소드들은 진정 이 시대의 죄악이 무엇인가를 반문한다.

남들과 다르게 뚱뚱하고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안나는 사람들의 조롱을 받는다. 연극 '도시녀의 칠거지악'은 안나를 특별한 캐릭터로 설정해놓지 않았다. 연극은 아직도 세계여행을 꿈꾸는 안나가 바로 관객 자신임을 상기시킨다. 세상은 안나를, 아니 우리를 이렇게 부른다. 노처녀, 그리고 도시녀. 이 작품은 도시녀가 가진 일말의 희망이 과연 죄악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도시녀가 가진 일곱 가지 죄악이 우리를 뒤처지게 만든다면 한 반짝 물러나 걷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슬쩍, 귓속말로 속삭인다. 연극 '도시녀의 칠거지악'은 세태를 풍자하고 비틀면서도 세상의 안나들에게 파이팅 외치기를 잊지 않았다. 우리들의 자화상 안나는 오늘도 발레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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