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시 2>는 답답한 영화다. 가슴을 옥죄어 오는 듯한 심정을 견딜 수 없게 만들어 결국에는 많은 말들을 토해내게 만드는 영화다.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토론하게 만드는 영화다. 처음 DMZ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그랬다. 친구들과 이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차를 멈추고 차 밖으로 나와 길 한가운데 둘러서서 토론을 했다. 겨울밤 하얀 입김을 입에 달고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리고, 몇 병의 술이 필요한 밤이 되었다.
지난 DMZ 영화제에서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통일이 왜 필요한지 알겠다고. 분단이 고착화되어가고 있는 지금 <경계도시 2>를 통해 말로만 해왔던 통일의 가치를 드디어 알겠다고. 통일이 되려면 통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2003년 ~ 2004년 방한한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말해왔던 것도 통일이다. 통일을 위해 한평생을 경계인으로 살아왔던 철학자에게 당시 한국사회는 전향을 강요한다. 훗날 아름다운 통일이 이루어진 언젠가 지금을 뒤돌아본다면 국가보안법이나 레드 컴플렉스나 전향이나 친북인사라던가 하는 말들이 우습게 들리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 <경계도시 2> |
분단국가에 살면서 법이 아닌 법 국가보안법으로 검찰은 아직도 누군가를 기소하고 헌법에 보장된 사상적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에서 전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아직도 누군가를 해치고 싶을 때 빨갱이라는 단어를 쉽게 내뱉어서 이용할 수 있는 사회, 이 사회는 나쁜 사회다. <경계도시 2>는 내가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고 자유가 제한되어 있고 사상적 자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때때로 우리 세대에게 답이 없는 것처럼, 너무 먼 것처럼 어쩌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 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그것, 통.일. 에대해 이야기를 다시한 번 시작할 때라고 알려준다, <경계도시 2>는.
극장 문을 나서는데 한 관객이 말했다. 영화적으로도 참 재미있었다고. 그렇다, 이 영화는 재미있다. 사건의 구성이 다이나믹하기 이를 데 없고 보수언론 진보언론 할 것없이 대한민국 언론들이 경계인으로 살고자 한 철학자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과정은 흥미를 넘어선다. 만약 이 영화를 본다면 송두율 교수의 방한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모습을 잘 지켜 보라고 말하고 싶다.
희망을 어디에 걸어야 할까요? <경계도시 2>를 함께 본 친구가 말했다. 사면초가의 위기에 놓였던 송두율 교수에게 진보진영에서는 차기 대선을 위해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혀를 끌끌찬다. 혀를 끌끌 차다보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관객들이 송두율 교수가 무죄 판결을 받는 대목에서 혀를 끌끌 차던 것을 멈추고 눈물을 닦았다. 송두율 교수는 석방 당시 인터뷰에서 언론의 반성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반성할 것이 어디 언론뿐이겠는가? <경계도시 2>의 홍형숙 감독도 나레이션을 통해서 레드컴플렉스에 휘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진보란 무엇인가? 희망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개인의 사상적 자유와 가치를 존중하기보다 단체나 국가를 내세운 적은 없는가? 나는 레드 컴플렉스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경계도시 2>의 매력은 답답한 심정끝에 이런 쉽지 않은 질문들을 끌어내는 데 있다. 끝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재판당시 송두율 교수가 한국사회를 향해 발언했던 네 마리 원숭이 우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해본다.
나는 하얀 입김을 달고 이 영화에 대해 토론하던 밤을 보낸 뒤 이 영화를 연극무대에 올리는 것을 상상해 보고는 한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홍형숙 감독님이 허락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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