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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16] 나 죽을 거다, 그래도 '너무 놀라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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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16] 나 죽을 거다, 그래도 '너무 놀라지마라'

[공연리뷰&프리뷰] 환풍기 없는 삶의 악취, 연극 '너무 놀라지마라'

한때는 삶이 희망적이라고 믿었다. 재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어느 순간 훌쩍 뛰어 들어가 발맞추면 그들과 함께 쳇바퀴라도 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삶은 어둡고 참혹하다. 변두리의 구석 한 곳을 잘라 무대에 올려 확대시켜 놓으니 더 가관이다. 연극 '너무 놀라지마라'는 세상과 조화될 수 없는 삶을 어이없을 정도로 담담하게 펼쳐놓는다. 그리고는 비루하고 너덜너덜한 이 단면으로 관객들을 조롱한다.

▲ ⓒ프레시안

- 새삼 놀랄 것도 없는 세상

왼쪽에서 보면 기형적인데 오른쪽에서 보면 정상인 한 가정에 며느리의 '친구'가 방문한다. 하룻밤을 자고나니 이곳은 납득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별세계다. 그의 입장에서 본 집구석은 이렇다. 집에 아무도 없다고 해서 '누님'을 따라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꼴 같지 않은 시동생이 나타나 눈을 부라리며 훼방을 놓는다. 그래도 꾹 참고 늙은 언니를 보듬어주다 지쳐 단 잠에 빠져있는데, 이번엔 남편이라는 작자가 나타난다. 시아버지란 분은 화장실에 목을 맨 채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더 황당한 것은 영화감독이라는 남편의 말이다. "죄송합니다, 주무시는데." 어라? "저희 집이 조금 산만하죠?" 얼씨구! "혹시 제가 방해가 된 건 아닌가요?" 에라이, 이건 막장도 아니다. 차라리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살펴본 집안은 더 놀랍다. 따지고 보니 별반 다를 게 없는 것이다. 남자는 말한다. "사는 게 다 똑같네. 우리랑 같아. 내 집 같아." 정말 우리 사는 게 저 기막힌 가정과 똑같단 말인가. 환풍기가 돌지 않아 악취가 풍기는 변소 같은 이 연극을 보고 너무 놀라지는 말자. 새삼스럽게 아닌 척 놀라기는.

- 환풍기가 고장나버린 변소 같은 인생

▲ ⓒ프레시안
송장냄새와 똥냄새에 숨을 쉬지 못하겠다며 며느리는 꾀꼬리 노래방으로 도망가다시피 출근한다. 그녀가 도망간 것은 더러운 집으로부터가 아니다. 조각난 상태로 흩어진 채 명분만 '가족'을 유지하고 있는, 곪아터진 삶으로부터 바삐 탈출한다. 남편은 SF 판타지 영화 속으로 도망갔고 동생은 '게맛살'로 생명을 유지하며 내려가지 않는 삶의 체증에 괴로워하고 있다. 동생의 만성변비증처럼 배설되지 않는 절망이 얽혀있으나 해결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이 집에는 환풍기가 고장 났다. 도대체 절망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치우고 환풍기 고칠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며느리는 남편이 이 집 가장인데 아버님 가시는 얼굴 보여드려야 한다며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못하고, 시동생은 스스로 병신이라 못하고, 드디어 찾아온 남편이자 형은 잘난 감독이 그런 자잘한 일은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즉 썩은 삶을 환기시킬만한 의지가 그 누구에게도 없어 숨통을 조이는 악취가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 웃기고 불편한 것은 시종일관 화장실에 매달려 있는 시아버지다. 내려달라고 보는 사람마다 부탁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 옆에서 배변을 보는 둘째 때문에 오히려 민망해진 것은 시신 쪽이다.

- 비틀어보니 나오는 것은 고름뿐

▲ ⓒ프레시안
연극 '너무 놀라지마라'는 비상식적인 상황과 인물들을 통해 세상이 꿈꾸는 가정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부정한다. 그 방식이 하도 태연해 관객들은 차라리 웃음을 터뜨린다. 상대를 가장 경멸하는 방법은 완벽하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 했던가. 과장된 친절과 격식을 보이는 남편을 향해 아내는 드디어 외친다. 눈을 떠 우리를 둘러보라고. 그러나 아버지가 목을 매도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현실, 아내의 절규 따위가 무언가를 바꿀 리 없다. 아내는 가능성 없는 현실의 변화를 꿈꾸는 대신 자신의 배를 찌르고, 남편은 무표정으로 집을 나선다. 시신은 아직도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며 그 옆에는 여전히 배변을 위해 힘을 주는 둘째가 있다. 지리멸렬한 삶, 생활고와 외로움을 비틀어버림으로 불편한 웃음을 유발하는 연극 '너무 놀라지마라'는 악취 나는 고름투성이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유머는 상식을 넘어선 인물들의 행동에서 비롯되며 배우들의 연기는 이 뻔뻔함에 한 몫 한다. 관객을 도망갈 수도 없게 불편의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이 작품은 가족의 이상적 모습을 짓밟는다. 그리고는 노래방으로, 촬영현장으로, 화장실로 도망간다. 이 시신을 치워줄 이 시대의 '형'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관객의 놀란 심장만이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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