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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모델 노회찬? '첼로'만으로는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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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모델 노회찬? '첼로'만으로는 부족해!

[화제의 책]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

노회찬과의 대화에 앞서

와이프 때문에 자주 보게 되는 프로그램 중에 <도전! 슈퍼모델>이 있다. 작년에 에미상 토크쇼 부분을 수상한 지구에서 가장 섹시한 여성 중 한 명인 타이라 뱅크스가 진행하는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모델이 되려는 이들에게 미션을 수행하게 하고 매주 한 명씩 탈락시키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얼마 전 열세 번째 시즌이 끝났다. 전 지구적인 글로벌 프로그램이다.

와이프는 매회 몰입하여 잦은 품평을 하며 보지만 나는 그냥 멀뚱히 보는 편이다. 어떻게 뜯어보더라도 프로급 모델들처럼 보이는데 거기서 미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미학'의 세계에 눈을 뜬다는 것은 분명 만만한 일은 못된다. 상대적으로 트렌드에 덜 민감하고, 패션엔 살포시 발만 걸쳐 논 이들이 재미를 느끼기엔 좀 난감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 프로그램과 함께 <프로젝트 런웨이>까지 동시 시청하면 스타일에 대한 아니 대중문화에서 스타일이 소비 혹은 유혹되는 지점에 대해 감각적으로 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그 '미학'의 세계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지상명령, 당면과제이다.

그렇다면, 노회찬이 서울 시장으로 뛰고 있는 오세훈, 원희룡, 한명숙, 유시민, 이계안 등과 함께 <도전! 슈퍼모델>에 출연한다면 얼마나 다른 '자세'를 연출할 수 있을까? 진보 정치인 노회찬은 진보 아닌 정치인들과 어떻게 스타일이 다르고, 그 이미지는 어떤 방식으로 소비 혹은 유혹되고 있는 것인가?

진보, 너는 누구냐

▲ <진보의 재탄생>(노회찬 외 지음, 꾸리에 펴냄) ⓒ프레시안
각설하고, 나는 <진보의 재탄생>(꾸리에 펴냄)의 서평을 써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 읽고도 서평을 쓰는 것이 전혀 윤리적 문제로 비하될 여지는 적은 언론계의 만연한 풍토이고, 최근에는 읽지 않고도 읽은 척 하는 방법론까지 등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심정적으로 거시기한 일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디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이 있는가. 이 책을 받은 날 엄기영 사장이 사퇴했다. MBC가 MB氏 것이 될 것 같은 짜증스러움을 핑계로 술을 오래하였고, 그 다음날에는 하필이면 2년 만에 독일에서 돌아온 친구와 만났다. 그 다음 날에는 강아지 목욕을 시키느라 온 기력이 쇠했다. <진보의 재탄생>에 대해 읽어야 했지만, 짬은 없었고 그렇다고 일상의 시간표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호라, 그것이었다. 노회찬이 이름만 들어도 '쩌는' 7명의 이른바 스타 논객들과 대화를 했다기에 호기로운 호기심이 들어 호쾌하게 서평을 쓰겠노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 벌어진 일들을 막아야 했고, 닥쳐온 일들을 피하지 못했다. <진보의 재탄생>에 대해 일고찰을 하며 느긋하게 읽었어야 했지만 한 순간도 정해진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막연하게 <진보의 재탄생>이라 하는 것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행성 마냥 무한광년으로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다는 안하무인의 생각을 가졌고, 동시에 흡사 그것은 언제일지 모를 유사시를 위해 남산 테니스장 밑에서 하품하며 대기하고 있다는 로보트 태권V의 출격에 대해 써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심정이 들었다.

우리는 미래로 가야겠다

그렇다. 어쩜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그걸 고뇌하고 성찰하고 미래로 가겠다는 노회찬이 여전히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안하무인과 막연한 심정의 교차,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책 앞부분에 있는 김어준의 맥락을 빌리자면, '도덕적 우위와 정당성' 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순 없고, 운동권 내부의 안일함만으론 확장을 꾀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이 책을 지배하는 문제의식은 결국, 그걸 노회찬이라는 매력적인 정치인을 통해 관통해 갈수 있겠는가의 방법론의 모색이다. 그걸 위해 김어준은 특유의 반지성주의 장난끼를 발동시키고, 영화감독 변영주는 일생 5개의 비밀 가운데 한 가지를 고백해가며 진심을 다해 묻는다.

혹시나 '진보, 너는 누구냐'고 궁금해 하는 나와 당신의 생각은 혹시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 이 책은 그 막연하지만 강고한 일상 아니 딜레마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자 성의 있게 기록한 대화이다.

진보하는 진보의식

이 책은 당신이 궁금해 하는 진보에 관한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궁금해 할 진보의 집권 가능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안내하는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의 구성은 약간 특이한데 굳이 가름을 하자면, '진보'를 맡고 있는 것은 우석훈을 포함한 8명의 이른바 논객들이고, 노회찬은 '재탄생'의 매개체를 자임하고 있는 구도이다.

이름이 들어간 글만 보아도 시쳇말로 '짜세'가 나오는 김어준, 진중권, 홍세화, 홍기빈, 변영주, 한윤형, 김정진이 노회찬을 만나 때론 그렇고 그런 얘기, 어떤 대목에서는 번득이는 환담을 나눈 인터뷰 혹은 대담을 정리하고, 우석훈이 '친구' 노회찬을 위해 쓴 글로 마무리 되는 이 책은 진보가 선호해 왔다는 이유만으로 오래도록 역사의 낙인으로 사용되었던 붉은 색 제목에 모던한 검은색 표지이다. 그 위로 노회찬 대표가 첼로를 켜고 있는 사진이 좌도 우도 아닌 위치에 박혀 있다.

김어준, 변영주, 한윤형이 한 인터뷰가 잘 읽히는 편이고, 진중권, 김정진, 홍기빈의 경우 누가 인터뷰를 한 것인지 혼잡(!)할 정도의 대화록인데 읽다 보면 그럭저럭 최근의 현안들에서부터 진보의 총론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세한 가지에서부터 뿌리 깊은 줄기까지를 놓치지 않고 훑는 노회찬의 식견을 보고 있노라면, '여야를 통틀어 정책 이해도와 실무 능력에 있어 최상위 그룹에 든다'는 노회찬의 비범함이 새삼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노회찬의 스타일을 부탁해

이 책을 훑으며, 다시 한 번 노회찬의 문제는 정책, 내용, 열정 따위보다는 분명 스타일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실패한 오세훈이나 별 다른 내용 없이 자리를 보고 뛰는 후보들에 비하여 노회찬은 잘 준비된 정치인임이 분명하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스타일'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노회찬의 첼로가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일종의 이미지네이션일 수도 있겠다고 싶은데, 그것으로 자랄 때부터 강성이었을 것 같은 운동권의 때깔을 좀 털 수는 있겠지만, 진보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변별되지 않는다. 문제는 스타일이다. 노회찬이 <도전! 슈퍼모델>에 나간다면을 상상해보라. 그는 오세훈과 뭐가 다른가, 원희룡과는 아니 유시민보다 컬러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노회찬의 헤어스타일이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약한 모습으로 규정된 '옆으로 빗어버린 머리'에 10년째 같은 테의 안경을 쓰는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지점이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그의 속도감 있는 언어에 비해, 미래로 향하는 그의 IT 감각에 비해 그의 스타일은 여전히 규격화된 공산품 체계를 유지하는 과거의 어느 날에 머물러 있음 말이다.

사실, 투표소에 가본 지 꽤 되었다. 2002년 대선이 마지막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올해는 투표소에 가보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아직 정치적 격변이 어디로 치달을지는 알 수 없으나 책의 의도는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다. 서울의 행정에 진보라고 하는 개념이 탑재된다는 상상은 '아스트랄'하다.

지금, 노회찬은 그 아스트랄함의 세계에 가장 근접해있는 독보적인 정치인이다. 지상명령과 당면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의 다음 책은 부디 화보집이길.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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