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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에게 바치는 송가, 연극 '뷰티퀸'의 신안진 ‧ 김준원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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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에게 바치는 송가, 연극 '뷰티퀸'의 신안진 ‧ 김준원 배우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 ⓒ뉴스테이지

"예전엔 어머니의 외로움을 몰랐어요.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니가 외로우실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서 작품 끝나면 연중행사처럼 집에 다녀오는데, 저도 파토처럼 고향을 늘 그리워하면서도 막상 시골에 내려가면 빨리 올라오고 싶어서 못 견디거든요. 전화라도 열심히 드리려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친한 여자선배한테 했더니, '넌 어렸을 때 너희 어머니께 평생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쁨을 매일 줬을 것이다. 내가 이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널 낳은 게 얼마나 행복한지, 그런 기쁨을 많이 드렸으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라' 라고 말해주더라구요. 매그를 지켜보면 어머니가 건강하신 게 다행스럽고 참 감사해요."

파토를 연기하며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야했던 형님들을 떠올렸다는 신안진 배우. 그는 자신이 시골출신이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고립된 극 속의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어릴 때는 저런 사람들은 책이나 드라마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고 보니까 인간이란 존재가 다 그런 거고, 우리는 항상 저래 왔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극 속 인물들이 제 어머니 같고 옆집 할머니 같았어요."

▲ ⓒ뉴스테이지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괴물이라는 것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거잖아요. 그런 탐욕은 결국 환경이 만들어내는 것이구요. 모녀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건 결국 리내인이었던 것 같아요. 제 대사 중에 "그만큼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거든요. 위험하고/ 그게 뭐니?/ 이 개 같은 동네요. 그런데 죽이는 데 70년이 걸려요" 라는 게 있어요. 이들은 아일랜드를 벗어나 영국으로 가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어요. 리내인이라는 환경이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고 죽이게 만드는 거죠."

아마도 서로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은 모린과 매그라는 생각이 든다는 김준선 배우는 이들 모녀를 보며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렸다고. "매그와 모린의 관계가 저희 아버지, 어머니 관계처럼 보였어요. 사소한 걸로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하면서 티격태격하시다 결국 욱하시고. 그런 모습들이 떠오르더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하는 존재인지 모른 채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걸 모르게 하는 현실 자체가 가장 큰 문제인 것 같구요. 그걸 알게 된다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가장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요?"

▲ ⓒ프레시안
"파토는 이들 중에서는 가장 도회적인 사람이고 젠틀한 사람이죠.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 꿈꾸며 여기저기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요. 그나마 모린과의 사랑도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죠. 도시 나갔던 형님들이 술 사주면서 '니 부산 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나?' 그러면서 말도 안 되는 구라들을 늘어놓는 걸 보면서 그땐 어린 마음에 멋지다고 느꼈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찐따처럼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죠. 자기는 나름대로 멋 부린다고 옷을 차려입어도 남들이 보기엔 그게 얼마나 웃겼을까, 시골에서 올라온 티 안내려고 하는 모습이 서울 사람한테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런 생각하면 짠해요." 대학교 일학년 때 연극을 처음 접했다는 신안진 배우는 대학로의 뒷골목을 누비며 안 해본 역할이 없다며 말을 덧붙였다. "파토처럼 노가다하다 몸도 다치고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만 골라 해왔지만, 정신적으로는 바로크하고 고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오묘하죠."

"레이는 뭐뭐인 척 하는 인물이에요. 싸움 잘하는 척, 여자한테 인기 많은 척, 잘 아는 척 하죠. 하지만 테니스 공에 화를 내고 과자하나에 눈이 돌아가죠. 레이는 뭐뭐 하는 척 하지만 실상 본질은 아이에요. 리내인을 개 같은 동네라고 말하면서도 그곳에서 안주한 채 살아가죠. 저는 자본주의 잣대에 약한 사람이고, 그 잣대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 하나예요. 그런데 대중적인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일 때면 결국 그렇지 않은 작품을 선택하게 되요. 저도 모르게 끌려가더라구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잘 선택했다, 잠은 잘 잘 수 있겠다하는 생각을 하죠. 알면서도 그렇게 선택하게 되더라구요." 악순환의 연속인 것 같다며 말을 줄이는 김준원 배우의 얼굴 위로 투명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고집스런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닦아온 신안진 배우와 김준원 배우. 그들은 극 속의 파토와 레이처럼 닮지 않은 듯 많이도 닮아있었다. 그들이 피워 올린 담배연기는 푸르른 겨울 하늘을 벗어나 한없이 깊은 우주의 심연 속을 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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