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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독일 드레스덴 말고 호주 캔버라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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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독일 드레스덴 말고 호주 캔버라를 보라"

[기고] 세종시, 토지임대제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정운찬 총리가 새롭게 제시한 세종시 수정안(2010.1.11)이 사회 일각에 끼친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원형지 또는 조성토지의 염가 분양이 초래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켰다는 데에 있다. 기존 원안대로 개발할 경우 행정부처 이전이 핵심이었기 때문에 토지분양 특혜라는 문제가 초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정안이 대기업 및 대학 등의 이전을 담게 되고, 이러한 기관들을 유치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원형지 공급방식을 통한 토지분양 특혜를 제공하게 되면서 과도한 특혜 문제가 이슈화 됐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프레시안> 칼럼 "세종시 땅, 분양하지 말고 임대하자"(2010.1.20)에서 "그렇게 특혜와 형평성의 시비에 휘말리면서까지 정부가 굳이 세종시의 땅을 민간인에게 분양해야 하는가?"라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특혜분양이 아닌 일반분양이라 하더라도 분양방식은 장기적으로 지가 및 주택가의 상승과 토지투지 문제를 초래하게 되며, 도시(관리)계획 및 도시경영의 관점에서도 별로 이로울 것이 없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많은 선진국들이 토지임대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초기 투자비용이 감소된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오히려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토지임대제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접근해서 실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성숙'한 이후에야 비로소 성공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고도의 선진국형 제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주의 신(新)수도 캔버라(Canberra)가 수도 이전과 더불어 '동시에' 토지임대제를 실시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준다.
▲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대기업, 대학 등에 원형지를 파격적으로 싼 값으로 분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헨리 조지의 토지임대론과 에베네져 하워드의 전원도시론

지대조세제를 주창한 것으로 잘 알려진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가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에서 토지독점이 초래하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정한 해결책으로 지대조세제보다 먼저 토지임대제를 주장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빈곤을 타파하고 임금이 정의가 요구하는 수준 즉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전부가 되도록 하려면 토지의 사적 소유를 공동소유로 바꾸어야 한다. 그 밖의 어떠한 방법도 악의 원인에 도움을 줄 뿐이며 다른 어떤 방법에도 희망이 없다."(진보와 빈곤, 313-314쪽)

이와 더불어 토지공유제 하에서 토지사용의 핵심 원리를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토지를 선점한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는 토지사용을 인정하면서 지대를 환수하여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 토지개량을 위해 필요한 확실한 토지사용권의 보장을 이룩하면서 토지사용에 대한 모든 사람의 평등권도 완전하게 인정하게 된다."(진보와 빈곤, 330쪽)

다만 그는 이러한 개혁 방식이 토지사유화가 완성된 곳에서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좀더 단순하고 쉽고 조용한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 방식이 바로 토지를 환수하지 않고 단지 지대만을 조세의 일종으로 환수하는 지대조세제 방식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지대는 조세의 일종이 아니라 토지사용료이다. 세종시의 경우, 공기업이 이미 4조8000억 원을 들여서 총 2200만 평의 땅을 매입해놓고 있어 토지임대제를 실시할 수 있는 핵심 여건이 갖추어져 있다.

영국 전원도시의 아버지 에베네져 하워드(Ebenezer Howard, 1850~1928)가 그의 저서 「내일의 전원도시」(Garden Cities of Tomorrow)를 통해 도시의 활력과 농촌의 자연을 결합한 전원도시를 대(大)런던 주변에 건설하여 대도시 집중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는 것은 도시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전원도시론 구상의 핵심에 매년 지대를 내는 토지임대방식이 자리하고 있으며, 저서의 많은 분량이 토지 구입을 위한 재원마련 방식 및 지대가 전원도시 재정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워드에게 있어 전원도시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토지임대제의 적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하워드의 전원도시론은 이후 실제로 대런던 주위에 레치워스(Letchworth, 1903년)와 웰윈(Welwyn Garden City, 1920년) 두 전원도시의 건설을 이끌었으며 전 세계의 신도시 건설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전원도시론의 핵심 구상인 토지임대제를 따르는 신도시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부분이 무늬만 전원도시다.

캔버라(Canberra), 신도시 개발에 토지임대제 적용은 선택 아닌 '필수'

여기 신도시 개발에 토지임대제를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너무나 유명한 호주의 신(新)수도 캔버라이다. 도시개발의 목적이 세종시 원안이었던 행정복합도시 구상과도 너무나 유사하다. 캔버라 토지임대제 실시의 역사적 배경은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88년 영국의 대령인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이 호주에 도착하여 모든 영토의 국유화를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토지투기 현상이 심각해져 대부분의 공유토지가 실질적으로 사유화되었다. 이때 6개의 주(States)가 연방정부를 구성하게 되면서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고 '매년 지대를 내는 방식의 토지임대제'(중국에서는 이를 '토지연조제'土地年租制라 함)를 실시하고자 하였다. 토지연조제의 실시 목적은 첫째, 토지투기행위의 차단, 둘째 토지가치 상승분의 환수, 셋째 신수도 건설비용의 재원 마련, 넷째 토지임대계약을 통한 질서있는 도시개발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캔버라 신수도는 1911년부터 1917년까지 20만 에이커에 달하는 농지를 구입(1985년에 추가로 670에이커 구입)하여 1920년대 말에 기본적으로 신수도를 완성했으며, 1927년부터 토지연조제를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토지연조제 방식은 임대기간이 최고 99년이었으며, 지대는 경매방식으로 결정된 지가의 5%, 20년 후에 지대의 재평가, 10년 마다 지대수정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러한 토지연조제의 실시로 인해 토지사용자가 토지개발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가 상승분을 취하는 것을 막았으며, 토지개발비용의 감소는 토지사용권 구매자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였으며, 질서 있는 개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35년도부터 토지임대방식에 변화가 생기면서 토지소유자로서 정부의 입지가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매년의 지대가 지가의 5%밖에 안 된다는 점을 악용한 토지투기자들의 경매시장 참여를 억제하기 위해 최저경매가격을 초과하는 경매가격을 모두 일시불로 지불하여 토지투기자의 금융부담을 증가시키려는 방안을 추진하자 오히려 토지연조제의 후퇴를 초래하게 되었다.

결국 1971년 호주 연방정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토지연조제를 폐지하고 대신 중국처럼 토지사용기간 동안의 모든 지대를 일시불로 지급하는 토지임대제 방식(중국에서는 이를 토지출양제土地出让制라 함)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기존 토지사용자들은 명목상의 일시불을 부담하고 실질적인 토지소유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당시 시민들이 토지연조제를 불공평하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는 물가상승이 빠른 상황에서 20년 내지 10년 단위로 지대재평가를 실시하게 되면서 자신의 토지의 지대재평가 시점이 언제인지에 따라 지대 납부액에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연조제의 폐지 이후, 시민들은 토지사용권을 토지소유권처럼 여기게 되었으며, 정부는 매년의 지가상승분을 환수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또한 토지이용을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을 상실했고, 토지관련 재정수입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토지연조제는 현재 지불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을 위한 토지공급에 국한되어 적용되고 있다. 신수도 캔버라의 토지임대제 경험은 신도시개발에 있어서 토지임대방식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더 나아가 잘 갖추어진 체계를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토지임대제는 선진국형 제도

현 정부가 국민들에게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을 약속하였고, 실제로 2009년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에서 15위권에 들어섰다. 이에 정부와 언론 및 이에 편승하여 개인의 소득향상을 기대하는 국민들이 한국도 이제 선진국의 반열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들뜬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세종시에서 선진국형 토지정책을 실시할 생각이 없다는 것은 큰 아이러니다.

토지정책은 한 나라 경제, 사회, 문화의 근간이다. 그래서 토지정책은 복합적으로 국가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토지임대제는 선진국형 제도이다. 왜냐하면 토지임대제를 성공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첫째 자발적 민주주의의 토양, 둘째 잘 갖추어진 토지임대제 체계 및 토지사용자 보호장치의 제도적 안전성, 셋째 토지불로소득 향유를 추구하지 않는 시민 등의 제반 조건이 갖추어져 하기 때문이다.

통계자료를 통해 토지임대제가 선진국형 제도라는 점을 살펴볼 수도 있다. 현재 토지임대제를 실시하고 있는 주요 국가로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홍콩, 싱가폴 등을 들 수 있는데,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경쟁력 보고서(The Global Competitiveness Report)의 10위권에 진입한 국가 순위와 비교해보면 아주 재미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홍콩을 제외한 모든 사례국가가 모두 10위권 내에 안정되게 진입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2001-2006년까지 1, 2위를 다투었다. 핀란드는 현재 가장 성공적으로 토지연조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이다.

또 다른 세계경쟁력 평가기관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9년 세계경쟁력 평가결과'에서는 홍콩(2위), 싱가폴(3위), 스웨덴(6위), 핀란드(9위), 네덜란드(10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57개국 가운데 27위였다. 국가경쟁력 순위라는 단순한 통계수치로 토지임대제가 선진국형 토지정책이라고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아래의 통계수치는 토지정책과 국가경쟁력 간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이 아직도 제대로 된 토지임대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선진국 진입에서 한참 멀리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선진국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신흥 경제대국 중국도 국가 전체적으로 토지임대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중국 경제를 상징하는 상하이 푸동신구(浦东新区) 실험지구는 토지임대제 방식 중 하나인 토지연조제를 가장 대표적으로 시범실시하고 있는 도시이다. 중국은 현재 토지출양제를 주(主)로 하고 보조적인 방법으로 토지연조제를 적용하고 있어 법률적 특성상 토지연조제의 적용범위가 그리 넓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하이시 푸동신구는 1996년도부터 실시하기 시작했으며, 1999년 5월 31일 <국유토지임대임시실시조례>(国有土地租赁暂行办法)를 발표하고 비교적 폭넓은 범위에 대해 비교적 잘 갖추어진 토지연조제 체계를 실시하고 있다. 2003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 약 1000여 도시에서 토지연조제를 실험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공공개발사업 부지, 이제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다시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인 세종시로 돌아와 보자. 세종시라 불리는 신도시 개발에서 왜 토지임대제를 '동시에' 적용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비교적 긴 논의를 거쳤다. 결론은 단순하다. 행정수도 이전과 더불어 동시에 토지임대제를 실시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선택해야 할 '정도'이다. 기존 원안의 주요 토지용도가 아파트 위주의 주택용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선택은 기존 원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더 나아가 이제는 공공개발사업 부지를 분양하던 기존 관행을 깨고 전체 부지가 국유로 전환된 기회를 살려 토지임대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공공개발사업에서 '토지수용(토지 국유) + 토지개발 후 분양' 방식을 당연시해왔다. 특히 기업유치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 토지의 저렴한 분양공급은 약방의 감초였다. 이번 세종시 수정안을 계기로 그동안의 관행을 깰 중요한 기회가 왔다.

그런데 한국 공공개발사업 부지의 토지정책도 토지임대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들이 보이고 있다. 지난 해 2009년 2월 6일 「공공토지의 비축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여 공유지를 사전에 확보하는 토지은행제도를 시작하였으며, 2009년 10월 19일에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공포하여 법적인 기초들이 하나씩 마련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구체적으로 이어져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먼저 세종시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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