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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차이코프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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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차이코프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

[공연리뷰&프리뷰] 욕망과 현실 속을 방황한 예술의 흔적!

국립발레단의 '차이코프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가 지난 2월 4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는 드라마발레를 만드는데 탁월한 '보리스 에이프만'의 역작으로 한 작곡가의 이중적 자아를 심도 있게 그려냈다. 국립발레단은 이번 공연에서 '보리스 에이프만'의 작품세계를 한국적 이미지로 승화시켜 또 하나의 명품발레를 맛보게 했다.

▲ ⓒ프레시안

개인적으로 '보리스 에이프만'처럼 차이코프스키의 삶을 이토록 멋지게 무대에 풀어놓은 인물이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게 굳이 차이코프스키라서가 아니라 예술가의 머릿속은 늘 혼란스럽고 어지럽기만 하다. 그들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100가지 이상의 무한한 상상을 하게 된다. 따라서 그 복잡한 내면의 세계를 자신이 직접 만든 창조적 결과물과 함께 무대화 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가운데 '보리스 에이프만'은 세기의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미묘한 감정을 그 인물이 만들어낸 음악에 맞춰 몸짓, 표정, 느낌 그리고 무대효과까지 모두 하나로 일치시켰다. 물론 연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표현하는데 자유로울 수 있었겠지만, 크게는 무대 위의 오브제가 효과적으로 작용해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더 높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무대에 사용된 연두색 테이블은 도박판과 동시에 동성애적인 성향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어필해주었고, 무대 위에 설치된 주름진 커튼은 차이코프스키의 이중적 세계관을 은근하게 비추는 역할을 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만으로는 한계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양면성을 작지만 강렬한 조명과 의상, 소품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무용수들의 몸짓언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결코 아니다. 기본적인 발레 동작이 아닌 손과 발 하나하나의 움직임에 마임을 부각시켜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가 고뇌에 사로잡힐 때는 자신의 손을 이용해 발을 잡아끌어 올리고, 차이코프스키가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줄때는 발을 동동 구르고 박수를 치는 등 보다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몸짓언어로 표현했다.

그 중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분신이 추는 2인무는 각자의 발을 부각시켜 격렬하면서도 특유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작품이 클라이막스에 도달했을 때 더욱 돋보였다. 신체 중 발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무언가를 벗어나거나 짓밟으려 할 때 가장 많이 표현된다. 그래서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내면과 충돌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자주 사용된 점을 볼 수 있다. 더욱이 서로 대칭과 연결 구도를 이루면서 추는 안무는 극과 극의 성향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차이코프스키가 현실을 직시한 인물이라면, 그의 분신은 거침없는 욕망으로 그 사이를 방황하며 대립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 ⓒ프레시안
무대에 사용된 음악은 모두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것으로 극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유동적으로 흘러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차이코프스키의 혼란스런 감정이 매번 뒤바뀔 때마다 음악 역시 살아있는 듯 거침없이 움직였다. 성요한 크리소스톰의 전례가, 교향곡 5번 E단조, 현을 위한 세레나데 C 장조 등의 음악이 흐를 때는 '차이코프스키'의 모습이 가슴으로 전달됐다.

이번 공연에서 '차이코프스키' 역을 맡은 인물은 발레리노 김현웅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자신의 전부를 쏟아 부은 듯 혼신의 열연을 펼쳤다. 지난해보다 한층 더 성숙된 느낌과 깊이로 등장한 그는 '차이코프스키' 그 자체로 다가왔다. '차이코프스키' 역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복잡다단한 감정씬과 몸동작이 수시로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차이코프스키'처럼 강할 땐 거침없이, 약할 때 한없이 여린 소심남의 동성애 역을 무난히 소화해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 내면' 역을 맡은 발레리노 박기현은 특유의 섬세한 몸놀림으로 무대를 편안하게 이끌어냈다. 그의 몸은 무척 가볍고 능수능란했다. 내면연기에 있어 강하게 치고 올라가 부드럽게 내려앉는 그의 리드미컬함이 작품의 흥미를 더해주었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 나온 강인한 에너지가 무척 인상 깊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 부인' 역을 맡은 발레리나 윤혜진은 팜므파탈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졌다. '차이코프스키'를 향한 그리움의 마음은 강렬하게 표현됐고, 표정 하나하나에 매혹적인 느낌을 풍성히 살려냈다.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폰 멕 부인'역을 맡은 발레리나 유난희 역시 아름답고도 우아한 여성미를 한껏 뽐냈다. 모든 움직임마다 세련된 모습을 그려냈다.

이번 '차이코프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는 '보리스 에이프만'의 탁월한 작품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가 이런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차이코프스키'를 향한 진심어린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불어 국립발레단의 향상된 표현력과 연기력은 관객들에게 또 한 번 기분 좋은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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