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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12] 슬픈 가발의 헤드윅, 뮤지컬 '헤드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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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12] 슬픈 가발의 헤드윅, 뮤지컬 '헤드윅'

[공연리뷰&프리뷰] 경계 위에 서서 사랑을 노래하다!

모두가 일어섰다. 그들은 무대 위의 한 사람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이는 그녀의 노래와 무대에 대한 박수다. 난도질당한 그녀의 삶에 대한 환호다. 우는 듯 웃는 그녀의 표정을 향한 열광이다. 은밀한 1인치 살덩이로 축약된 그녀의 삶에 대한 위로다. 그리고 배신과 조롱을 밟고 일어서 사랑을 외치는 그녀의 용기에 대한 응원이다. 모든 눈물을 노란 가발과 짙은 화장 속에 감추고서 다시 웃는 헤드윅, 그녀가 관객들의 함성을 받으며 행복하게 서 있다.

▲ ⓒ프레시안

여기는 유명한 록스타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공연장 근처, 별 두 개짜리 싸구려 모텔이다.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생존자들이 묵었던 이곳에서 제공하는 두 가지 서비스 중 조식을 포기하고 쇼 관람을 선택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요염한 표정과 몸짓으로 무대에 오른 헤드윅은 말한다. "내가 눈지 알아? 내가 그 베를린 장벽. 어디 한 번 부셔보라고!"

- 수호천사는 우리를 버렸다

▲ ⓒ프레시안
무대 위의 헤드윅은 수시로 문을 열고 근처 공연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확인한다. 혹시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궁금해서다. 노심초사 떨리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지만 번번이 좌절한다. 그는 헤드윅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긴 시간동안 지속해서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헤드윅의 과장된 화장과 의상은, 후미진 뒷골목 싸구려 네온만이 빛나는 어느 바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노래를 심취해 부르는 삼류여가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 고독과 슬픔이 닮았다. 그러나 절대로 무대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뮤지컬 '헤드윅'은 결핍으로만 채워진 헤드윅의 삶에 대한 노래로 가득하다. 작품 속 모든 넘버는 헤드윅의 삶을 관통하며 울고 웃고 분노한다. 실제로 그녀가 처음 믿었던 것, 그리고 현재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 역시 음악이다. 헤드윅은 베를린에서 서울로 오기까지의 처연한 여정을 노래한다. 한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동베를린에서 태어난 헤드윅은 아버지의 성적학대와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서 자랐다. 그런 한셀이 동성애자 미국 병사를 만났고 체제와 이념을 벗어나 자유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더 이상 잃을 것은 없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더 결핍시킬 것이 남아있나 새삼 놀라며 성전환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 시각, 운명의 수호천사는 무엇을 하는지 한눈팔았고 수술은 개판이 됐다. 그녀의 처참한 과거는 멀어지지 않았고 1인치 흉터를 남겼다. 이제 그녀는 평생을 이 상처와 함께 살아야한다.

-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

▲ ⓒ프레시안
남자와 여자의 경계에 서 있는 헤드윅의 삶처럼 공연에 등장하는 음악들은 직설적이고 강렬하다. 관객은 다름 아닌 헤드윅의 존재와 음악에 열광한다. 이미 익숙한 노래와 드라마는 여전히 관객들을 자리에서 일어서게 만든다. 낯선 가발을 쓰고 등장한 배우 송용진은 자신을 '캔디'라고 소개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 울 일 많았던 과거를 돌아보면서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래도 우는 것 보단 웃는 게 쉽잖아요." 이렇듯 외로운 헤드윅은 시종일관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남성보다 여성과의 공감대가 많은 그녀는 성형수술, 다이어트 등 일상적인 농담을 주고받는다.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말한다. 이것이 실은 고독한 자의 넋두리였다는 것, 마음이 아픈 자의 제스처라는 것을 관객은 모르지 않는다. 그와 함께하는 이츠학은 드랙퀸이고 밴드는 불법체류자들이다. 이 하류인생들은 잔인하게 쑤셔대도 무대 위에서 내려갈 줄 모른 채 끈덕지게 살아있다. 살아서 노래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노래한다.

토미는 헤드윅을 잊지 않았다. 마지막,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동과 서로, 위와 아래로, 남자와 여자로 분리된 세상에서 그 어느 곳에도 합류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주는 헤드윅의 온기는 잊히지 않는다. 세상의 이분법적 편견 위에 너덜너덜해진 헤드윅이, 그러나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는 헤드윅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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