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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소녀시대 좋아하는 게 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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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섹시한' 소녀시대 좋아하는 게 죄인가요?"

[기고] 대한민국 '평균' 아저씨 '소길동'의 고백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가 있다. 조카는 '소녀시대'의 팬이다. 당연히 이번 달 단독 콘서트 예매도 이미 끝냈다. 조카는 특히 서현을 좋아한다. 한정판 소녀시대 카드 중에서 다른 멤버들 것은 줘도 서현의 것은 끝내 안 준다. 소신이 뚜렷한 녀석이다. 크게 될 놈이다.

내가 글쟁이인 것을 아는 조카는 며칠 전 이번 새 앨범 음악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해줄 말 중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있었다. 어차피 나쁜 말하면 귀담아 듣지 않을 테니 대충 좋은 말만 하고 넘어갔다. 실은 내가 오히려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이것이었다.

"네가 진짜로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이걸 묻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나 자신에게 물어봤는데, 나에게서 나온 대답이 정답인 것 같아서 다른 남자(!)에게도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는 소녀시대가 '섹시'해서 좋다. 물론 기본적으로 귀여운 매력이 크긴 한데 섹시한 매력도 나에게는 그 정도 크기는 된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노파심에 말하자면 나는 변태도 아니고 과대망상증 환자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소녀시대는 분명히 섹시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섹시하지 않은 척 하면서 섹시'하다.

내가 소녀시대에게서 섹시함을 느낀 건 'Gee' 이후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 소녀시대는 나에게 그저 귀여운 여동생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녀시대가 Gee로 컴백해 딱 달라붙는 배꼽티와 스키니진을 입고나오자 '소녀'는 '그녀'가 되었다. '소원을 말해봐'는 'Gee'의 심화판이었다. 핫팬츠와 하이힐, 제복을 입고 그녀들이 내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외쳤다. 신곡 'Oh!'는 한술 더 떠 치어리더 콘셉트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나.

▲ 최근 '소녀시대'는 신곡 'Oh!'를 발표했다. 소녀시대 멤버들은 치러디어 콘셉트로 퍼포먼스를 하면서 이 곡을 부른다. ⓒSM엔터테인먼트

여기서 중요한 건 섹시 그 자체가 아니다. 소녀시대보다 섹시한 가수들은 얼마든지 있다. 포인트는 소녀들이 '더없이 순수한 눈망울'을 하고선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옷과 액세서리, 그리고 노랫말과 춤동작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고민에 빠진다. 그 순수한 눈망울들이 나를 죄책감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내가 저 천사 같은 아이들을 두고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걸까. 나는 변태인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분명히 맞는 것 같은데 증명할 방법이 없다. 섹시함을 주 무기로 삼으면서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한다. 그런데 더 가관(?)인 건 그렇지 않은 척하니까 대놓고 그러는 것보다 더 섹시하다는 거다. 낮에는 현모양처, 밤에는 요부를 바라는 어쩔 수 없는 남성의 본능이다. 가히 최악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사 너희들! 일단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정확히 자극한 것에는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겠어. 대단히 유효한 전략이었지. 하지만 어린 여자애들 데리고 더 이상 교묘하게 섹스를 팔지 마! 이제 더 이상 당하지 않아!', 이렇게 외친다면 (비록 속은 다를지라도) '아니,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을 보고 그런 천박한 생각을…', 하며 경멸어린 시선으로 변태 취급당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과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나만 섹시함을 섹시함이라 말하지 못하는 '소길동'의 덫에 걸린 걸까? 아니라고 본다. 모르긴 몰라도 적지 않은 대한민국 성인 남성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으려나?

여기서 두 가지 고민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전에 하나 전제되어야할 것이 있다. 바로 '소녀시대의 기획사는 어린 소녀들을 통해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해 교묘히 섹스를 판매한다'는 합의다. 물론 이 같은 판단에 소녀시대의 팬이나 어린 학생들, 그리고 여성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소녀시대의 팬들에게 이 같은 지적은 소녀들에 대한 모욕일 수 있고, 어린 학생들이나 여성들의 경우에는 진심으로 이러한 부분을 체감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현존하는 사실이다. 양해를 구한다. 그렇게 사실로 인정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첫 번째 고민은, '욕망하는 것은 과연 나쁜가'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의도된 자극에 예상된 욕망으로 반응하는 것은 나쁜가'가 되겠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은근슬쩍 성적 판타지를 자극해 오는데 모른 척하며 억지로 속으로 눌러야 하나? 오히려 그게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을 속이는 것 아닌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솔직함은 미덕이라고 배우지 않았나. 굳이 말을 하자면 자극받는 쪽보다 자극하는 쪽이 나쁘지 않느냐는 말이다. 하아, 나는 왜 불필요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이고 시스템인 것을.

두 번째 고민은, '어린 소녀들을 통해 섹스를 파는 행위는 과연 나쁜가'이다('미성년자'라는 법적 개념으로도 판단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논하려는 건 그러한 차원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가 아닌가. 기획사는 돈을 벌고, 소녀들은 스타가 되고, 대중은 욕망을 충족한다. 소녀들이 특별히 공공질서를 저해하는 음란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중이 소녀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상부상조하는 좋은 거래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게 바로 문제다. 기본적으로 나는 욕망하는 주체다. 그리고 욕망하는 나 자체는 건강하다. 그러나 내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들이 모두 옳은 건 아니다. 다시 말해 나는 내 욕망의 정곡을 찔러주는 소녀시대의 무대를 보면서 기획사의 의도대로 욕망을 느낀다.

하지만 그 반대편엔 욕망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이성 역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소녀시대가 내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들 기획사의 전략이 야기할 부정적인 단면들을 고민한다. 즉 나는 끊임없이 욕망하면서 동시에 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의 올바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렇게 의심해본 결과, '섹시하지 않은 척 하면서 섹시한' 소녀시대는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이것은 기획사의 입장에서는 분명 대단히 효과적인 돈벌이 전략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성의 이중성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도록 설계된 소녀들에게서 당연하게(?) 예정된 욕망을 느끼더라도 남성들은 그것을 제대로 표출할 수 없다. 욕망 표출의 해방감 대신 그들에게 부여되는 것은 일종의 죄책감이다. 욕망은 점점 안으로 파고 들어가고 겉과 속은 달라진다. 그렇게 섹시한 것을 섹시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소길동이 되어간다.

또 하나. 다름 아닌 소녀들 걱정이다. 윤아 걱정, 유리 걱정, 무엇보다 우리 조카를 위해 서현 걱정이다. 어쩌면 이게 제일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나는 소녀시대의 무대를 볼 때마다 매번 이런 생각이 든다. 쟤네들은 자기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과연 알고 있을까? 남성들의 시선과 속마음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까? 만약 알고 있다면 그게 쟤네들이 원하는 걸까? 혹시 기획사의 의도와 속내가 충돌해 괴롭지는 않을까?

이게 무슨 오지랖이냐고 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녀들도 이제 엄연한 법적 성인이니까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기에는 아직도 소녀들은 많이 어릴뿐더러 소녀들 개개인의 힘에 비해 시스템의 권력이 너무 크고 거대하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녀시대 역시 하나의 상품이며 상품이 된 것 역시 소녀들의 선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머릿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서현. 가장 순수할 것 같고 실제로도 가장 어린 서현. 지금, 상처받지 않고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글을 마무리하면서 문득 지금의 내 메신저 대화명을 떠올렸다. '소시 앨범 득템! 화보 쩐다.' 화보가 쩌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당장 다른 대화명으로 바꾸어야겠다. 갑자기 이 저열한 욕망의 바다에 물 한 방울 보태기도 싫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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