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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회장님, 백조를 살려주세요"

[홍성태의 '세상 읽기'] 구본무 회장께 보내는 백조의 편지

안녕하세요, 구본무 회장님. 저는 겨울을 나기 위해 올해도 어김없이 머나먼 시베리아에서 찾아온 백조랍니다. 시베리아는 저희의 고향이지만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다시 고향인 시베리아로 돌아가지요. 저희가 살기 위해서는 시베리아와 한국의 자연이 잘 보존되어야 합니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1968년 5월 30일에 저희를 천연기념물 201호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지요.

그러나 아직도 농약이나 덫을 놓아 저희를 밀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희는 늘 공포에 떨고 있답니다. 그런데 사실 더 무서운 것은 밀렵꾼이 아니라 불도저입니다. 저희의 서식지를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각종 개발 행위야말로 저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무시무시한 살육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은 1968년에 저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뒤에 저희의 서식지는 본격적으로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4대강을 비롯한 사실상 전국의 모든 주요 하천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단군 이래 최대의 파괴사업이 강행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너무나 무섭습니다. 그래서 저희를 사랑하시는 구본무 회장님께 저희를 살려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구본무 회장님께서는 지난 2000년 11월에 <한국의 새>라는 제목의 '야외 원색 도감'을 펴내셨지요. 그 책은 한국 학자들이 글을 썼으나 일본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편집책임을 맡은 특이한 책입니다. <한국의 새>들을 알려주기 위해 만든 책인 만큼 모든 내용을 한국인들이 만들었다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본무 회장님이 발간사에서 쓴 것처럼 새들에게는 국경이 의미가 없고, 새들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새는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이동하고 번식하므로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자연 환경의 보전에 뜻을 함께 하지 않으면 조류 보호의 효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조류의 보호는 자연 환경의 보호와 맥락을 같이 할 뿐 아니라 국제 협력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곧 인간 존중의 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물론 후손까지 배려하는 적극적인 자연 보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를 암담할 뿐입니다.

정말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인간을 존중하고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것입니다. 저희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도 저희와 마찬가지로 자연 속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에서는 인간도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전국의 모든 하천에는 겨울을 보내기 위해 찾아온 철새들로 북적이고 있지요. 한강에서도, 낙동강에서도, 금강에서도, 영산강에서도 저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2009년 초에는 홍보 동영상을 만들어서 이 나라의 하천을 '철새가 찾지 않는 강'이라고 홍보하기도 했지요. 이렇게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홍보라고 해도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은 홍보가 아니라 '사기'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이렇게 대놓고 국민을 속이는 일에 국민의 혈세를 펑펑 쓰다니 한국이 정말 급속히 후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구본무 회장님도 아마 저희와 같은 생각이시겠지요.

▲ 국토해양부의 '4대강 살리기 홍보 동영상'. ⓒ프레시안
한국의 하천들은 개발독재 이래로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자연이 생생히 잘 살아 있어서 저희를 비롯한 수많은 철새들이 아주 좋아하는 곳이지요. 구본무 회장님이 <한국의 새>를 발간해서 잘 밝히셨듯이 한반도는 무려 450 종이 넘는 새들의 서식지입니다. 매년 50만 마리, 아니 100만 마리를 넘는 철새들이 한국을 찾지요. 한국은 시베리아와 동남아의 중간지역이기 때문에 이렇게 수백 종류의 100만 마리가 넘는 새들이 한국을 찾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구본무 회장님은 이렇게 쓰셨지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국제 조류 보호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한국은 호주, 뉴질랜드와 동남아, 시베리아를 잇는 철새의 이동 경로에 자리잡고 있을 뿐 아니라 생태계의 보고인 갯벌이 널리 분포하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별없는 간척과 개발로 철새의 낙원으로 일컬어지던 갯벌 등 습지가 줄어들면서 새가 쉴 곳을 잃고 자연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음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역시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은 정말 세계가 부러워하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발독재 이래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천혜의 자연 환경이 크게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이 문제를 바로잡고 저희가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선진화입니다. 구본문 회장님은 10년 전에 천혜의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개발을 개탄했습니다만, 지금 이 문제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극단적인 상태로 치닫고 있습니다.

구본무 회장님, 저희를 지켜주세요. '4대강 살리기'의 이름을 내걸고 강행되는 '4대강 죽이기'를 막아주세요. 독일의 이자강이 잘 보여주듯이 자연의 강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강 살리기입니다. 강변과 강바닥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긁어내며, 댐들을 건설해서 강물의 흐름을 가로막고, 강둑에 자동차 도로와 똑같은 자전거 도로를 대대적으로 건설하는 것은, 분명히 강 살리기가 아니라 강 죽이기입니다. 강을 콘크리트 수로와 콘크리트 호수로 만들고, 강변과 강둑을 콘크리트 마당과 콘크리트 도로로 만들면, 우리는 살 곳을 잃고 죽거나 떠나야 합니다. 구본무 회장님, 우리의 절규를 들어주세요.

10년 전에 구본무 회장님이 발간하신 <한국의 새>는 정말 훌륭한 책입니다. 한국의 새들을 정말 잘 소개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이 책은 불필요한 책이 될지 모릅니다. 아니, 한때 이 나라에 살았던 새들을 기록한 역사적 기록물이 될지 모릅니다. '4대강 살리기'를 내걸고 강행되는 '4대강 죽이기' 때문에 모든 주요 하천들을 비롯한 수많은 하천들이 콘크리트 수로와 콘크리트 호수로 파괴되어 저희를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새들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본무 회장님, <한국의 새>가 언제까지나 유용한 책이 될 수 있도록 '4대강 죽이기'를 막아주세요. 저희를 지켜주세요.

2010년 2월 3일

'4대강 살리기'의 위협에 지친 백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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