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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은 진짜 '해부'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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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은 진짜 '해부'를 했을까?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해부학 교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사 수련 과정에서 가장 힘든 과목은 해부학이다. 해부학 교수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다. 이론, 실습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평균 점수에 못 미쳐 F학점을 받기 십상이다. 일단 F학점을 받으면 해부학 수업을 1년간 다시 해야 하니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난다.

최근에 일부 대학생이 해부 실습용 시신, '카데바(Cadaver)'로 장난치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렸다. 의학 발전을 위해서 기증된 숭고한 시신을 소홀히 다루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해부학 실습생에게는 이상한 징크스도 있다. 함부로 카데바를 대하면 사고를 당한다는 것.

한의학에서는 해부가 언제부터 이뤄졌을까? 드라마 <허준>을 본 많은 이들은 스승으로 등장한 유의태의 살신성인과 얼음골의 해부 장면을 인상적이라고 꼽는다. 비록 이런 내용은 허구이긴 하지만 허준의 <동의보감>의 첫 장이 '신형장부도'라는 걸 염두에 두면 전혀 뜬금없는 설정은 아니다. 신형장부도는 신체 내부를 묘사한 한의학식 해부도이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웬 일인지 해부학은 발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해부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후한서> '왕망전'을 보면, 해부가 시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황제내경>에는 장부의 크기, 무게도 기록돼 있는데, 식도, 창자의 길이 비율이 근대 해부학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프레시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국의 해부도는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연라도'이다. 도교의 영향 아래 제작된 것이지만, 그 내용은 의학적이다. 이 연라도에 사형수 구희범을 해부하면서 사실적인 부분을 가미한 것이 '구희범오장도'인데, 이것이 일본에 전해졌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현존하지는 않는다.

12세기 초 안휘성에서 죄인을 참형한 군수가 지금까지의 오장도와 다른 점을 발견하고 보충해 다시 그린 것이 '존진도'이다. 연라도에서 구희범오장도가 나오고, 다시 수정 보완해 존진도가 나온 셈이다. 이것을 기본으로 한의학의 인체도인 명당도, 맥결도, 장상도 등으로 분화되어 가면서 한의학 해부도의 기본 바탕이 마련됐다.

허준의 신형장부도는 존진도를 바탕으로 그려진 인체 해부도이지만 당대의 중국 의학과는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척추 위주의 그림이다. 척추를 옥침관, 녹노관, 미려관으로 표시하여 정기신의 운행 통로로 강조한 것이다.

"등쪽에 삼관이 있으니 뇌의 뒤가 옥침관이요. 협척을 녹노관이라 하고 아래를 미려관이라 하는데 모두가 정기의 승강 왕래하는 도르래이다."

▲ <전체신론>(1851)에 실린 인체 해부도. ⓒ동은의학박물관
허준은 척추를 따라 움직이는 척수액이 '정기신(精氣神)'의 본질이라고 파악했다. 정기신의 요지는 이렇다. 정이 땅의 정수요 기는 사람의 정수이며 신은 하늘의 정수가 되는 물질이다. 하늘 땅 사람으로 이어지는 허준 의학의 본질이며 특징이다. 신형장부도에는 유교적인 한의학을 배제하고 도교적이며 한국적인 의학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일본의 해부학은 동양 의학에서 서양 의학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 수입된 네덜란드 해부학 책의 정교함에 매료된 일본 의사들의 지적 욕구가 근대 학문과 서양 문화 도입에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일본의 의사들은 네덜란드의 의학서를 최초로 번역 1774년에 <해체신서>라는 제목의 서양 의학서를 선보였다.

<해체신서>를 주로 번역한 의사 스기라는 알파벳도 몰랐지만, 4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서양 의학서를 출간했다. 이렇게 대중에게 선보인 <해체신서>는 결국 일본 근대화의 토양인 난학(네덜란드학)의 길잡이가 되었다. 일본 근대화를 호기심이 많았던 해부학을 공부하려는 한의사가 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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