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 여백이 가진 극한의 가능성, 그 재기발랄함
무대는 심플하다 못해 심심하다. 이 간결한 무대는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를 벗기듯 원작에 붙어있는 군더더기들을 떼어내고 최소화했다. 무대 위에는 모서리가 닳고 구겨진 책장을 연상시키는 조형물들이 겹쳐 놓여있다. 흡사 흩어진 동화책과 같다. 인물들은 책이라는 사각 틀을 부수고 현대로 튀어나와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이 빈 페이지들은 움직이는 막 동시에 스크린 효과를 낸다. 아무것도 없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백지는 필기체의 메모부터 신데렐라의 발을 투사한 그림, 수채화 톤의 화려한 색채부터 모던한 격자무늬까지 모든 것을 흡수한다. 이 시각적 이미지들은 과거와 미래, 현재를 아우르며 캐릭터의 기억과 아픔, 내면을 대변한다. 또한 판막의 움직임을 통해 시공간을 분할, 한 무대 위에서 두 상황을 동시에 보여주거나 원하는 바를 쉽게 가리고 드러내므로 막 전체를 움직이지 않고도 효과적인 장면전환을 성공시켰다. 한없이 절제됐으면서도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판막효과는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배치하며 신선함 및 극적 긴장감을 증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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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식을 벗은 캐릭터, 그 영민함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발레 '신데렐라'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캐릭터의 재창조다. 인물에 대한 이유 있는 비틀기와 재기발랄함이 찬란하게 빛난다. 동화 속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나 신분상승하는 수동적 인물 동시에 무능력한 여성이다. 스스로 맞서고 일어서려는 의지가 부족하며 계모와 그 딸들 틈에서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러나 발레 '신데렐라' 속 그녀는 조금 더 주체적인 여성으로 표현되는데 그 매개체로는 요정이 있다. 요정은 신데렐라의 죽은 생모로 일반적 '엄마' 혹은 '요정'의 이미지에 배반된다. 요염하며 관능적이다. 익살맞은 표정에 농담을 즐긴다. 요정인 듯 인간이고 인간인 듯 요정인 이 캐릭터는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적절히 조화시키며 상상의 무대를 선사한다. '인간적 요정'은 세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봄과 동시에 지상에 착지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수직적 시선을 가짐으로써 동화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또한 인간세계의 환상과 희망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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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의 발레 '신데렐라'는 진부함을 탈피하고 식상한 의미를 가뿐하게 벗었다. 요정은 무도회에 갈 신데렐라에게 아름답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히는 대신 어머니를 상징하는 심플한 드레스를 입히고 구두를 제거했다. 새로운 시도와 해석, 비틀기 속에서도 기본적 희망과 사랑에 충실했다. 낯설면서도 친숙하게 다가오려는 따뜻함과 친절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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