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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보다 무섭다, 무대 위 '년년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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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보다 무섭다, 무대 위 '년년년!'

[공연리뷰&프리뷰] 좋은 여자,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던 잔 다르크, 세상을 유혹했던 클레오파트라, 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론스톤, 복수의 화신 금자씨,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 등. 남자의 영웅기보다 매혹적인 것이 여자의 드라마다. 남자보다 무서운 것도 여자다. 남자에게는 힘이 있지만 여자에게는 한恨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않았나.

▲ ⓒ프레시안

세상에는 다양한 여자가 있다. 그래서 무대 위에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있다. 이유 없이 나쁘고 이유 없이 이상한 여자가 없듯, 무대 위의 인물들도 이유 없이 나쁘고 이유 없이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상투적이고 식상할지 모르나 매력적인 그녀들을 모았다. 좋은 여자,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 우리가 살아내지 못할 삶을 견디었던, 좋은 여자

▲ ⓒ프레시안
[연극 '호야(好夜)'의 귀인 어씨]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이나 한없이 안쓰럽다. 귀인 어씨는 사람을 이해하며 사랑할 줄 안다. 지혜롭고 현명하다. 그래서 불행하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좋은 여자의 전형적 모습이다. 그녀가 2010년을 살았다면 신념을 지킬만한 용기와 인내를 높이 평가받았을 것이다. 귀인 어씨는 왕의 여자가 누군가에게 택함 받은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란 걸 안다. 왕의 성은이 가둬버린 자신의 삶에 슬퍼한다. 그러나 몸부림치지 않는다. 그로인해 누군가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언제나 침착하다. 중전의 오라비 한자겸을 사랑하나 그 사랑이 아름다울 리 만무하다. 음모를 받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왕에게 현실을 바라보라고, 우리를 바라보라고 울부짖는다. 사람이 정을 나누고 울며 웃는 게 당연할진대 그렇지 못한 삶이 있다는 것을 호소하는 귀인 어씨. 그녀도 꽃신을 신고 들판을 거닐던, 설렘이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 슬프게 알린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난넬] 속 터진다. 이 여인의 바보 같은 삶이 답답하다. 왜 착한 여자들은 이렇게 다 안쓰러울까. 난넬은 모차르트의 누나로 한없는 희생을 베푼다. 결혼 지참금을 다 써버린 동생으로 인해 결국 결혼에도 실패한다. 허랑방탕한 모차르트를 찾아가 옷을 발가벗겨 거리로 내쫓아도 시원찮을 판에 난넬은 동생을 이해한다. 인생을 동생 볼프강 중심으로 살았던 난넬. 난넬 같은 딸보다는 언니, 혹은 엄마를 원할 만큼 그녀는 가족에게 위안을 주는 인물이다. 또한 난넬은 방황하는 모차르트와 그에게 실망하는 아버지 레오폴드 사이에서 둘의 관계를 유지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난넬로 인해 가족의 형태를 유지한다. 희생으로 인해 위안과 따뜻함을 전해준 좋은 여자가 난넬이다.

- 그 독(毒)까지 이해하게 만들어버리는, 나쁜 여자

▲ ⓒ프레시안
[연극 '뷰티퀸'의 모린과 매그]
'난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 대부분의 딸들이 한번쯤을 해봤을 법한 말이다. 그러나 자만하지 말자. 딸은 엄마를 닮아가기 마련이다. 한때는 뷰티 퀸이었으나 마흔 살이 되도록 남자 경험이 없는 노처녀 모린, 그리고 모린이 자신을 버릴까봐 모든 것을 간섭하고 방해하는 노모 매그.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를 할퀸다. 작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모여 바닥을 적실 즈음, 폭발하는 관계의 절정에서 모린은 엄마 매그를 살해한다. 그리고는 매그가 항상 앉아 있었던 의자에 조용히 앉는다. 이들은 서로에게 나쁜 여자였다. 사랑한 줄 모르는 이들의 잔혹한 사랑은 독이 돼 돌아온다. 어쩔 수 없이 나쁜 여자가 되어버린, 슬픈 모린과 매그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뮤지컬 '선덕여왕'의 미실] 이제 그녀는 영웅이다. 아름다운 미모와 뛰어난 두뇌로 나라를 휘저었던 매혹적 여성. 그녀의 스케일은 남자도 엄두내지 못할 만큼 넓다. 미실의 음모는 그녀가 똑똑한 만큼 위험하다. 그만큼 부담도 크다. 그러나 미실은 대담하다. 미실을 이토록 독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녀의 설움이자 아픔. 뮤지컬 '선덕여왕'의 미실은 엄청난 카리스마로 무대를 압도한다. 의상 역시 파격적이고 섹시하다. 그렇게 찬란했던 그녀가 마지막에는 작은 칼로 스스로를 찌르며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다. 그때 그녀 옆에 있었던 것은 아들이라 제대로 불러보지 못했던 비담. 미실이 꿈꿨던 세상은 그녀의 목숨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 바람처럼 지나가버린 그녀의 생이 쓸쓸하다.

- 당신들의 삶이 진정한 블랙유머, 이상한 여자

▲ ⓒ프레시안
[연극 '엘리모시너리'의 도로시아] 해괴하다. 어린 딸에게 날개를 만들어 달아주고는 날아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 요상한 장면을 영화로 찍는다. 자기 이름을 발음할 줄도 모르는 손녀에게 철자를 가르친다. 도로시아는 인생의 반 이상을 괴짜로 살았다. 받아들이기에 이 현실은 너무 좁고 답답했다. 살면서 쟁취하는 대신 포기하는 법을 터득하며 다른 삶을 꿈꿨다. 사실 다른 삶이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 그래서 그녀는 없는 세계를 만들었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곳, 바로 그녀만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딸은 혼자 만의 세계에서 꿈을 꾸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슬쩍 도망친다. 도로시아도 안다. 그러나 그녀는 변하지 않는다. 죽어서도 이상한 연구를 계속할, 위트 있는 여자가 도로시아다.

[뮤지컬 '헤드윅'의 헤드윅] 남자와 여자, 그 경계에 서 있는 인물로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헤드윅. 완전히 부서져버리지도 못한 삶을 어두운 그림자처럼 무겁게 이고 다닌다. 그리고 상처투성인 자신의 삶을 노래한다. 그런 헤드윅을 보며 관객들은 마음으로 위로한다. 당신은 아름답다고, 빛나는 헤드윅이라고. 학대와 배신, 조롱과 비웃음으로 채워진 그녀의 삶에 관객들은 환호한다. 긴 가발을 늘어뜨리고 두꺼운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은 당신의 이름은 헤드윅! 우리는 당신에게 반했다. 그리고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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