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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6] 삶에 대한 쓸쓸한 비유, 연극 '백수광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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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6] 삶에 대한 쓸쓸한 비유, 연극 '백수광부들'

[공연리뷰&프리뷰] 우리는 모두가 환자, patient, 인내하는 사람들

한 여자가 물속에서 손을 흔든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인지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밤조차 잠든 늦은 시각에 찾아와 묻는 이에게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히 하자면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라 춤을 춘거였어요."

▲ ⓒ프레시안

낡은 천 조각들을 이어 만든 퀼트처럼 남루하고 얼룩덜룩한 것이 삶이다. 생을 하나의 색으로 매끄럽게 칠하기란 불가능하다. 무지개 색을 거쳐 결국 하얗게 새버리고는 인류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백수광부는 흰머리를 풀어헤치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가지 말라고 '공무도하(公無渡河)' 외치는 아내를 뒤로한 채 서서히 물속에 잠긴다. 물은 죽음을 껴안고 있지만 머물지 않고 영원히 흐른다. 물은 영원함과 생명력, 정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백수광부는 어쩌면 환생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여기, 연극의 한 여인이 넓고 넓은 바다를 갈망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꿈속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 ⓒ프레시안
연극은 하나의 서사를 보기 좋게 정돈해 순차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여자의 꿈이라는 배경 아래 꿈 속 모든 인물과 사건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허구의 인물들이 자신만의 생각과 사상을 갖고 생생하기 살아있다. 이 연극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보라고? "자신을 죽이는 악몽을 자주 꾸는 한 여인이 새벽에 심리치료사를 방문한다. 그는 여인에게 최면을 건다. 이제 죽음의 사신들이 멀리서 길을 물으며 다가오고, 헤어진 남편은 심리치료사가 되어 돌아온다. 속옷 바람으로 헤매다 들어간 카페에선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카페주인인 점술가는 여인의 미래를 예언한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미래를 예언하며……." 불가능하다. 이 작품의 줄거리 말하기를 극단도 포기했다. 주인공이 누구냐고? 글쎄. 한 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잘 다듬어진 주제를 정확하게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이 작품에는 없다. 사실 등장하는 그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비현실적으로 만나고 비현실적으로 대화한다.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삶이 이 연극에 있다. 어차피 인생이란 게 본래 그런 것 아닌가.

단 한 번도 마주칠 가능성 없는 우리가 사실은 누군가의 꿈에서 만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곳에서 서로에게 압상트를 건네고 쓸쓸함을 잊기 위해 기타를 치며 슬프게 죽은 샴쌍둥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때론 혼자 가는 길을 함께 동행해줄 상상속의 누군가가 필요하니까. 연극 '백수광부들'에는 그 외로움들이 모여 있다.

백수광부들의 삶은 시인보다 시적이고 배우보다 연극적이다

▲ ⓒ프레시안
관객이 친절하지 않은 이 작품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한다. 하지만 꼭 힘들어할 필요는 없다. 연극 '백수광부들'은 흘러가듯, 무심하듯, 장난이듯 그렇게 삶의 구석구석을 만진다. 하나의 주제 따위가 담지 못하는 생을 '신나게'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노래한다. 연극의 매력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어느 하나를 강요하지 않기에 비유되는 삶을 '내 마음대로' 느끼며 즐길 수 있다.

"어렸을 때 엄마는 말씀하시길 / 여자를 울려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 내 앞에 여자는 지금 울고 있다네 / 어렸을 때 내 친구는 말했었지 / 어른이 되더라도 이 친구 이름 잊지 말라고 했는데 / 이름도 잊고 얼굴도 잊고 친구도 잃어버렸네." 이는 백수광부들이 노래하는 백수광부의 삶이다. 연극 '백수광부들'은 중심을 잡고 있는 서사보다 조각난 이미지와 삶에 대한 짧은 비유가 빛나는 공연이다. 인생에 대한 절실함과 조롱, 진지함과 유머, 외로움과 아픔이 공존한다. 이해보다는 찰나의 공감이 우리를 쓸쓸하게 만든다. 또 위로가 된다. 연극 '갈매기'의 니나가 되고 싶은 여자가 바다를 갈망하듯 목마른 우리에게 무명 인생으로서의 삶을 비틀어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강물로 들어가는 나를 모두가 말릴 때, 존해했기에 아름다웠던 내 인생을 축복하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라 응원할만한 대담함이 있다. 연극 '백수광부들'은 극단 백수광부가 관객에게 선물하는 우울함이자 위트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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