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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선언

[한윤수의 '오랑캐꽃']<185>

시골에서 일하면 세상 물정에 어둡다.
어느 정도로 어두우냐 하면 사장님 말을 안 들으면 당장 경찰에 잡혀가거나 추방되는 줄 안다.

베트남 사람 후안은 전라남도 장성군 00면 00리의 공장에서 1년 4개월을 일하다가 퇴직하게 되었다.
사장님은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퇴직금은 *밥값으로 다 까부셨으니 줄 게 없다>는 내용의 정산서에 싸인하라고 강요했다. 도시 노동자들은 이런 협박에 안 넘어가지만 시골 노동자인 후안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만일 싸인 안 하면요?"
"경찰에 얘기해서 베트남으로 보내버릴 거야."
가슴이 철렁했다.
한국에 올 때 진 빚도 다 못 갚았는데, 추방되면 어떡하지?
하지만 퇴직금도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내 돈이 아닌가?

일단 추방되지 않으려면 싸인을 하긴 해야겠는데, 어쩔 줄 몰라 쩔쩔매다가 한 가지 꾀가 생각났다.
"옳다! 싸인을 하지 말고, 이 싸인이 무효라는 내 생각을 쓰자!"
그는 싸인을 하는 대신에 베트남 어로 <토이 콩 비엣( Toi Khong Biet )>이라고 썼다. "나는 모른다!"라는 뜻이다.
*일종의 양심선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기막히지 않은가?
내가 왜 베트남 사람을 똑똑하다고 보냐 하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어쨌든 사장님은 베트남 어를 모르니까 퇴직금을 포기한 줄 알고 만족했다.
"그래, 가도 좋아."

▲ ⓒ한윤수
후안은 상경하자마자 발안으로 찾아왔다.
내가 보기엔 이 회사는 웬만해선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쇠가죽처럼 질긴 회사다. 이런 회사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경기도 일원에는 이런 구태의연한 회사가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전라도 시골엔 있나 보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시골 노동자들도 점점 똑똑해지니까.


*밥값으로 다 까부셨으니 : 밥값으로 다 까부셨다는 사장님의 주장은 거짓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식당 밥이 입맛에 안 맞아 직접 밥을 해먹었으니까.

*일종의 양심선언 : "나는 모른다!"는 <당신이 뭐라고 주장하든 내 알 바 아니며, 인정할 수 없다>는 일종의 양심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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