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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 너를 향해 펼친 생의 날개, 연극 '엘리모시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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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5] 너를 향해 펼친 생의 날개, 연극 '엘리모시너리'

[공연리뷰&프리뷰] 하늘로 날아오른 세 모녀 이야기

버석한 사막, 눈부신 태양이 내리쬐고 땅은 뜨겁다. 사막은 언제나 무료하고 나른하다. 가끔 지나가는 행인은 땀에 젖었고 지쳐있다. 지프차는 메마른 모래바람만을 날린다. 그리고 아주 작은 오아시스가 있다. 아무도 없는 이 사막, 오아시스에 꽃인지 풀인지 모를 식물 하나가 솟았다. 죽을 법 한데 황당하도록 명랑하게 꼿꼿하다. 하나의 줄기에서 세 개의 꽃이 폈다. 그 꽃의 이름은 도로시아, 아티, 에코우다.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이 꽃들의 색과 모양은 제각각이다.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저들이 없으면 혼자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 이 목마른 관계, 연극 '엘리모시너리'의 세 여자들의 삶이다.

▲ ⓒ프레시안

나는 당신의 노래를 이해하고 싶었다

괴짜이길 선택한 도로시아가 아직 소녀였을 때, 그녀는 멜로디 없는 삶을 이어가며 세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낳았다. 그녀는 대학에 진학해 꿈의 날개를 펼치는 대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진짜 날개'를 만들었다. 이 허무맹랑한 날개에 자신의 삶을 담았다. 일률적인 생활의 궤도와 법칙을 이탈해 직접 하늘을 날고자 했다. 고작 직접 만든 그 날개를 달고서. "초 현실 세계의 장점은 아무리 이상하게 행동해도 전혀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녀는 딸 아티에게 비행할 것을 요구한다. 정신력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며 높은 첨탑에 올려보 낸 뒤 손을 놓으라고 외친다. 그러나 아티는 안다. 자신의 엄마 도로시아가 믿는 그 날개가 얼마나 부질없으며, 이 세계를 초월해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 ⓒ프레시안
아티는 날개를 달고 엄마와 함께 하늘을 나는 대신 한 발짝씩 뒷걸음질 쳐 엄마에게서 멀어진다. 현실의 답답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려 했던 도로시아와 그녀로부터 가능한 멀리 벗어나고 싶었던,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 딸 아티. 이 모녀의 관계는 곧 끊어져버릴 줄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도로시아에게 딸 아티가 있는 것처럼 아티에게도 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에코우다. 아티에게 버려져 할머니 도로시아의 손에 길러진 에코우는 철자에 뛰어난 감각을 보인다. 그녀는 철자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 그 발음, 운율, 뜻을 느끼고 사랑한다. 에코우에게 있어 철자는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증명하는 수단인 동시에 소통의 방법이다. 에코우는 엄마 아티와 전화로 철자 맞추기를 한다. 에코우는 가장 자신 있는 것, 가장 확실한 것을 엄마 아티와 나누며 슬며시 묻는다. 엄마 아티,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음악 없는 이 삶을 나에게 선물한 당신의 노래는 어떤 리듬과 빠르기를 가졌는가에 대해.

나는 당신의 노래를 이해하고 있었다

연극은 흔하디흔한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그 모양과 색이 독특하다. 눈물과 애절함의 말랑말랑한 질감보다는 한쪽이 깨진 유리구슬처럼 딱딱하고 차갑다. 또 조심스럽다. 연극 '엘리모시너리'는 가족에 대한, 모녀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이고 적극적으로 자극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그러나 황량한 사막에 난데없이 떨어진 종이 날개를 탐구하듯 흥미롭게 다가갈 뿐이다. 좌절, 낙태, 고독, 몸부림 등을 그려내는데 반짝거리는 위트도 잊지 않았다. 심플한 음식에 맞는 깔끔함과 적당한 양념이 함께한다. 수시로 어긋나며 방황하는 이 관계를 표현하기 위한 무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세 여자가 독립적으로 각자의 위치에 서있고 앉아있고 누워있다.

▲ ⓒ프레시안
서로가 서로에게 부재한 상태처럼 보이지만 뒤로 보이는 영상은 이들이 '가족'임을 알린다. 영상은 연극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도구가 아닌, 인물의 내면을 은유하도록 유도한다. 영상의 사운드는 의도적으로 제거돼 무대의 연기자 목소리와 일치하지 않는다. 하나의 실험과도 같은 모든 영상과 무대, 음악은 애증의 끈으로 얽혀있는 세 여자를 매력적으로 조명한다.

자신을 도로시아와 아티에게 부각시키기 위해 에코우는 철자 맞추기 대회에 나간다. 참석하기 힘들겠다는 아티를 협박해 관객석에 앉혀놓고는 필사적이 된다. 재미있는 놀이였던 철자 맞추기에 온 힘을 쏟고 안절부절못한다. 그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코믹하면서도 슬프게 내려앉아 검은 그림자를 만든다. 에코우를 승리하게 만든 단어, 그것은 바로 '엘리모시너리'다. 엘리모시너리, eleemosynary, 이엘이이엠오에스와이엔에미알와이, 자선을 베푸는, 자비로운. 사실, 이 세 여자는 각각 자신의 방식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서로가 절실했던 이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용서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선택한 거야. 엄마를 사랑하는 존재가 되기로." 표현이 서투르나 화해의 손을 내밀게 하는 '자비로운 보살핌'이 사막에 꽃이 필 때부터 서로를 아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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