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나'의 또 다른 이름, 그것은 살인마
두 작품에서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살인마'로 표현된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형상을 갖고 인물(캐릭터)로 등장한다. '나'와 '내'가 대화하며 싸우고 손을 잡고 협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짜릿한 순간은, 바로 '나'와 '내'가 만나는 순간이다. 뮤지컬 '살인마 잭'의 다니엘은 사랑하는 여인 매춘부 글로리아를 구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그녀의 고용자인 잭을 살해한다. 7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잭이 다니엘을 찾아오며 관계는 시작된다. 연극 '루시드 드림' 속 만남은 조금 더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무채색의 어두운 방, 변호사 최현석에게 일주일 전 사망한 선배 김선규의 미망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건넨다. 어느 부분부터 이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름이 이동원으로 바뀌어있다. 이동원은 김선규가 변호를 맡았던 인물로 모두 열세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다. 최현석은 여기에 자극을 받고 이동원의 변호를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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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들은 왜 살인마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 안에서 가장 강렬하면서도 금기시되는 욕구가 바로 살인이다. 이들에게는 그 두려움을, 죄책감을 덜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잭과 이동원은 그들의 면죄부인 셈이다. 이는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시키려는 동시에 살인의 행동을 스스로가 인정하지 못하는 오류에서 발생한다.
'나'의 또 다른 이름, 그것은 신(神)
우리는 상상 속에서 전지전능한 신이 된다. 그 안에서는 못할 것이 없다. 누군가와의 사랑도, 화해도, 평화도 쉽다. 싸움도, 승리도, 전쟁도 쉽다. 그리고 살인도 쉽다. 상상의 중독성은 내가 무엇을 상상하든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 있다. 현실과의 괴리감을 만끽할 수 있는 그 짜릿한 자유로움. 매 순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상 속 간음과 살인은 아무런 죄의식도 갖지 않은 채 도돌이표를 찍은 후 다시 반복된다. 그러나 침범할 수 없는 커다란 상상의 풍선에 작은 구멍을 낸 사건이 있다. 일찍이 성경은 말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을 하였으니…." 이미 간음을 하였으니! 상상 속에서 행복한 꿈을 꾸다가 이것이 현실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현실의 나는 고립돼 있다. 이 간극을 파고드는 연극이 바로 '루시드 드림'과 뮤지컬 '살인마 잭'이다. 현실을 깨달았을 때, 이미 내 안의 살인마와 계약을 맺고 악수를 한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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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들에게 동정은 가능한가, 상상 속 살인은 죄가 되지 않는가, 두 작품은 이 물음을 남긴다. 화려하고 볼거리가 다양한 뮤지컬 '살인마 잭'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그리고 성경과 맞물려 있는 연극적 연극 '루시드 드림'은 지금도 유니버설아트센터와 산울림소극장에서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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