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지방선거의 전망이 어둡습니다. 선거는 누가 다수파를 형성(Making Majority)하느냐에 따라 이기고 지는 게임인데 야권의 다수파 형성 가능성이 밝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야권은 중산층 유권자를 한나라당에 뺐긴 데다 저소득층 유권자에게도 버림받다시피 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제 차원의 역관계에 더해 정치적 지형에서는 더 심각한 위기입니다. 야권은 '민주주의'라는 가치 이외에는 이념적 중도층을 흡인해 낼 새로운 어젠더를 내놓지 못하고 있고, 진보층을 견인해 낼 강력한 정치 리더십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반면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여러 가지 정치적 무리수와 정책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집권 보수층이 헤게모니를 갖고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야당이 된 민주당은 육탄 저지 외에는 뾰족한 방법을 못 찾고 있습니다. 의회 안에서의 수적 열세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힘이 추가적으로 필요한 법입니다. 이를테면 3김시대 전통적 야당은 확고한 지역적 기반과 함께 도덕적 우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언론 환경도 과히 나쁘진 않았습니다. 나날이 성장하던 재야운동진영이 늘 우군이 되어 주었습니다. 카리스마를 갖춘 강력한 리더십은 그 자체가 문제이기도 했지만 위기 국면에선 최후의 방어선을 치는 구심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 야권엔 이 모든 것이 불비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야권이 다시 다수파를 확보하는 방법은 한 가지 뿐입니다. 연대와 통합, 즉 연합입니다.
▲ '2010 희망을 위한 시민사회 원로-야 5당 대표 간담회'에 참석한 야5당 대표들. ⓒ뉴시스 |
승리를 위한 선거연합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선거연합'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절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연합이 안 되면 수도권에서 확실히 이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가뜩이나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낮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야권 단일 후보가 나오면 찍겠다는 유권자가 과반수가 넘지만 따로 나와서는 야권 지지자들의 투표율은 더 떨어질 것입니다. 야권의 선거연합 실패에 따른 실망 때문입니다. 아니 실망을 넘어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반면에 선거연합이 성사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지극히 불투명한 것이 사실입니다. 민주개혁정당과 진보 정당이 분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개혁정당과 진보 정당 각각이 또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6일 국민참여당의 창당은 국민 눈에는 민주당의 분열로 비칠 것입니다. 이처럼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립은 서울, 경기에서의 한나라당 현직의 강세와 대비되어 대통령이 저토록 강공 일변도로 나오는 핵심적 이유입니다.
따라서 분열에서 연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불투명성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노력이 지금부터 필요합니다. 즉 본격적인 선거연합 과정의 준비 단계로서 우선 몇 가지 금칙부터 정할 필요가 있고 이 글은 그 논의를 시작해 보자는 것입니다.
분열의 두 원인
모든 분열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노선이고 하나는 정서의 문제입니다. 노선적 차이는 개혁정당과 진보정당 간의 갈등요인입니다. 정서상 차이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간의 갈등입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노선도 노선이지만 정서적 거리감이 다 갈등 요인입니다.
이것이 대개 정치권 주변의 분석인데, 그러나 저는 '과연 일반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하는 의문을 가집니다. 그래서 제 지역구의 이런 저런 분들한테 차이점을 물어봤지만 늘 괜히 물었다는 후회가 들곤 합니다. 대부분이 '글쎄 잘 모르겠는데…'라는 게 첫 번째 답입니다. 그래도 생각해보시라고 권하면, 조금 고민하다 말고, '에이 어차피 거기서 거긴데 생각하기 귀찮아'라고 뿌리치듯 말문을 닫고 맙니다. 그러니 물어본 제가 무안해지는 겁니다. 어쩌면 지금 야권이 하고 있는 정치 전체가 국민들 앞에선 피차 '무안한' 수준입니다.
노선의 차이
제가 생각하는 선거연합의 첫 번째 암초는 이 노선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지금 진보신당이 민주당에 대해 선거연합의 전제로 요구하는 것은 진보적 의제(노동시장 유연화 반대, 한미 FTA 저지, 고교 및 대학 평준화, 무상의료 확대, 대선 결선투표제,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제 전면 도입)에 대한 동의와 한편으론 과거 집권 당시 정책에 대한 반성입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 의제들을 일거에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반신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 민주당의 집권 당시 정책을 비판하면서 이를 인정하고 반성하라는 요구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집권 기간 서민 노동자층의 고용 안정과 소득 증대, 복지 강화 등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비판에 대해 민주당은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또 그 점에서 국민들 특히 서민과 저소득층에 대해 죄송하고 반성합니다.
하지만 민주당과 신자유주의 세력을 등치시키는 진보신당 식의 비판에 대해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겨울이 닥치면 아무리 난방을 해도 추우면 추웠지 더워지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마치 민주당이 겨울을 불러온 것처럼 이야기 하는 건 역사적 인과 관계가 틀린 겁니다. 겨울을 불러온 건 97년 이전 지금의 여당 정권이었습니다. 겨울을 불러놓고 따뜻한 아랫목과 싸늘한 냉골을 딱 나누고 각자 능력껏 아랫목으로 올라오라는 식의 정책을 내세운 것도 한나라당입니다.
또 만약 민주당이 서민과 저소득층으로부터 버림받은 게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었으니 그 정책을 펼친 것에 반성하라는 주장은 그 논리적 인과 관계가 의문스럽습니다. 그럼 신자유주의로 민주당이 망해갈 때, 반신자유주의를 외친 진보정당은 흥했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길게 말씀드릴 것은 아니나, 신자유주의 만병 원인론에 대해 과연 그런 건지 우리 모두가 재검토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스개 삼아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빌려 제 생각을 밝히자면 '신자유주의'는 구조이고 '좌파'는 입장입니다. 저는 국민들도 그렇게 구분해서 보지 않는가 싶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강제된 조건 속에서 좌파적 대응으로는 안 되는 것 같으니 이제 우파적 대응을 해봐라 해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맡긴 것입니다. 진보 정당이 주장하듯이 국민들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정파라고 봤다면 그 두 당이 같이 망하고 진보 정당만 흥했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얘기는 신자유주의에도 불구하고 좌파적 대안이 노동 계층이나 서민대중들에게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통 원인인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진보정당이 나름의 반신자유주의적 정책 대안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집권 당시 민주당에 대한 비판 역시 수긍합니다. 어쨌든 민주당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신자유주의는 강요된 국면이었지 좋아서 선택했던 게 아닙니다. 민주당은 신자유주의에 대응해 나름의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다 실패했을 따름입니다. 따라서 민주당더러 신자유주의의 원흉인 양 비난하는 것은 분명히 정치적 의도가 깔린 매도입니다.
노동 유연화를 거부하고, FTA를 안 하고, 부실채권을 떠안은 대기업을 해외 매각하지 않고도 신자유주의적 국면을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또 그 덕분에 앞으로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집권 가능성도 또 집권해서도 어렵다는 걸 잘 알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이렇게 까다롭고 어려운 게 바로 '노선'입니다. 아무리 금과옥조 같은 노선을 갖고 있어도 하다 보면 틀리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고 절충하기도 해야 법인데, 노선이 다르니 처음부터 아무 것도 같이 못 하겠다는 건 일종의 종교행위지 정치행위가 아닙니다.
더욱이 지금 우리가 통합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노선이 같으면 통합을 할 일이고, 노선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승리하기 위해 연대를 하자는 겁니다. 따라서 노선의 합일을 전제로 선거연합을 논의하는 건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지금 민주당과 진보 정당이 당 대 당 통합을 하자는 게 아닌 만큼 향후 선거연합 논의에 있어서 노선이니 의제 우선이니 하는 얘기는 폐기되어야 하며 그것이 제1금칙입니다.
정서적 이질성
두 번째 암초는 정서적인 것으로 협상 당사자 간 상호신뢰의 중요성이나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 협상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노선보다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정서가 아니라 노선이나 이념의 문제라고 할 겁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이미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간에, 그리고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간 진보신당 간에 문제는 감정의 앙금이지, 어차피 뿌리가 같고 하는 행동이 비슷하지 않느냐는 게 국민 대중의 직관입니다.
감정의 문제는 대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과정에 그 연원을 두기 마련입니다. 부부 싸움이 전형적으로 그렇습니다. 세상에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인 부부 간에 일어나는 싸움도 십중팔구는 과거지사를 들춰내면서 시작됩니다. 정치는 성인군자가 하는 게 아닙니다. 평균적 수준의 도덕성과 이기심, 통상적 수준의 공인의식과 명예욕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이들이 하는 정치가 민주주의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과거를 따지기 시작하면 '아름다운' 사람이 없습니다. 연대를 하는 것은 아름다운 사람, 즉 '나 같은 사람'과 함께 하자는 게 아닙니다. 나와 다른 사람, 그러나 같이 하는 것이 더 큰 이득이 될 뿐만 아니라 대의에 부합하니까 연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대의 제2금칙은 과거를 들추어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두 개의 금칙이 결국 '무조건 연대'를 하자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연대라면 아예 할 필요가 없고, 하지 않으면 다 죽는 판에서 연대는 '무조건 연대'가 가장 올바른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순히 선거연합 논의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제 솔직한 생각은 야권이 '빅 텐트(Big Tent)' 하에 다 모여야 한다는 데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
다수파 연합: '빅 텐트'로 모이자
저는 처음부터 선거는 '다수파 만들기(Making Majority)'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거에 이기고 나아가 어떤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수연합이 필요한 건 자명합니다. 다수연합의 핵심은 유권자층의 결집입니다. 그것은 성, 계층, 세대, 소득 및 교육 수준 등으로 나누어진 집단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가능합니다. 이 조합의 공식을 발견하면 다수파가 될 수 있고, 집권하게 됩니다. 정당은 이 조합의 공식을 찾아내는 게 당연히 사활적 과제가 됩니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우리 야권의 어느 정당도 이 조합의 공식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저는 이 공식(公式)이 '민주당의 중도층 회복 + 진보 정당의 서민노동층 흡수'라고 생각합니다. 그 의미는 첫째 한나라당에 빼앗긴 중도층을 되찾아 오는 노력만으로도 안 되고 서민노동층을 진보 정당이 온전히 흡수하려는 노력만으로도 다수파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민주당은 중도층 회복에, 진보정당은 서민노동층 흡수에 각각 역할을 분담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뜻입니다. 셋째로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선거연합은 일상화되어야 한다는 함의도 갖습니다. 즉 2012년 집권과 함께 연정을 하자는 얘기입니다.
역대 어느 선거 결과를 보더라도 민주당이 승리하면 진보정당도 같이 약진해 왔습니다. 한 쪽이 잘 되면 다른 쪽도 잘됐고, 한 쪽이 쪼그라들면 같이 쪼그라들었습니다. 즉, 둘은 길항(拮抗)관계가 아니라 상보(相補)관계에 있다는 게 국민들 눈엔 번히 보이는데 왜 우리 눈엔 안 보인다는 건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나라당 외에 누구도 좋을 게 없다는 경험칙을 이젠 솔직히 인정했으면 합니다.
'빅 텐트'는 집권시 범야권의 연정을 전제한 가운데 야권 내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정당간 연대틀을 의미합니다. 욕심 같아서는 미국 민주당처럼 급진파나 뉴딜주의자부터 블루독(Blue-Dog)까지 한 당에서 같이 하는 게 좋겠지만 그러기에 한국정치의 포용성이 아직은 너무 협애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다수파 연합 건설 즉 '빅 텐트'의 첫 걸음으로서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선거연합의 성사를 위해 두 개의 금칙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거연합의 구체적 방법과 경로에 대한 제 생각은 다음에 곧이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역사는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노선과 정서의 차이를 넘지 못하고 이대로 지면 우리 모두는 다시 역사의 죄인이 됩니다. 이 정도 차이 때문에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 과제를 방기하기엔 지금 현실이 너무도 엄혹합니다. 정치에서 패배만큼 큰 죄악은 없습니다. 지난 2년간 우리가 배운 쓰라린 교훈을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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