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이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엄에서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평가한 건 '인간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추모 분위기가 가라앉은 다음에,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한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본격적으로 전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객석 앞줄에 앉아있던 노무현 정부 인사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난해 11월이었습니다. 진보매체 4개사가 합동으로 기획·방송한 '진보개혁 연대의 길' 토론회에 나온 천호선 국민참여당 최고위원에게 말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놓고 패널들과 길고 날선 토론을 벌이기에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적자를 자처하는 국민참여당 창당세력이 자발적으로 대대적인 평가토론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천호선 최고위원은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럴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국민참여당이 어제 창당했습니다. 예상했던 그대로 그 당은 '노무현 정신 계승'을 내세웠습니다. 이재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으로 살아가자"고 했고, 유시민 전 장관은 "노무현, 그 분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이 자리에서 새 출발을 한다"고 했습니다.
2.
국민참여당이 계승하고자 하는 '노무현 정신'은 뭘까요? 이재정 대표의 말처럼 "모두 이익을 추구할 때 홀로 올바름을 추구한" 정신일까요?
이것은 대답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넓게 봐도, 아무리 호의적으로 봐도 이재정 대표가 언급한 '노무현 정신'은 '인간 노무현' 또는 '정치인 노무현'의 정신이지 '대통령 노무현'의 정신은 아닙니다.
유시민 전 장관이 다짐한 '노무현 부활' 또한 대답이 되지 못합니다. 그가 언급한 '부활'이 단순 회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응당 '계승과 혁신'이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 노무현'이 남긴 족적에서 계승해야 할 것과 혁신해야 할 것을 찾아 '노무현 가치'를 재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참여당은 제시하지 않습니다.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시하지 않습니다. 국민참여당을 통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거쳐야 할 '노무현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개인들'이 회고조로 내놓은 평가(더 엄밀히 말하면 소회)는 있을지언정 노무현 계승세력을 자처하는 국민참여당이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내놓은 평가는 아직 없습니다.
3.
'진보의 미래'를 읽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진보의 가치와 노선을 새로 짜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 기록된 책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진보의 미래'를 정독하면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단초적인 문제의식은 발견했지만 대안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책은 물음표로 시작했을 뿐 느낌표는 찍지 않았습니다.
일면적인 평가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단초적인 문제의식에 체계적인 대안의 씨앗이 담겨있는지 모릅니다. 남은 사람에게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계기를 부여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참여당에 대한 평가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 앞서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야 할 국민참여당이 여전히 물음표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뉴 민주당 플랜'이란 걸 통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노무현 정부) 정책'으로 비판한 것에 대해 대답하지 않고, 진보정당이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응답하지 않습니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또는 개혁당에서 실험했던 정당운영원리를 내세우고, 민주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강령적 가치를 내세울 뿐입니다. 그래서 자초합니다.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성 질문을 자초합니다.
4.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국민참여당이 '진보의 미래'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한 그들의 창당은 온전한 게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기둥을 세우기도 전에 지붕을 얹으려 했다고, '노무현 정신'을 리모델링하기보다는 '노무현' 문패를 닦으려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 17일 국민참여당이 창당대회를 가졌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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