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직급이 낮을수록 수입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영화 제작 현장의 '막내' 급인 수습 노동자의 경우 연수입은 평균 274만 원에 불과했다. 전체 평균 6분의 1, 감독급과 비교하면 7분의 1에 그쳤다. 직급에 따른 양극화가 심각한 것이다.
남녀 격차도 거의 3배 수준이었다. 전국영화산업노조는 6일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벌인 근로조건 실태조사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男 1494만 원 vs. 女 592만 원…"여성은 낮은 직급에 집중돼 있어"
영화산업노조가 제작 노동자 400명을 상대로 직접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영화 스탭들의 직급별 소득은 회사 대표가 4186만 원, 감독급이 1518만 원, 팀장급이 1154만 원, 퍼스트급이 928만 원, 막내급이 274만 원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수습이라고는 하지만, 연 수입이 웬만한 기업 사원의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 ⓒ프레시안 |
이런 격차는 남녀에서도 나타난다. 남성 노동자의 평균 수입은 1494만 원이지만, 여성은 592만 원으로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런 이유에 대해 영화산업노조는 "상위 직급에 남성이 집중돼 있고 여성은 대체로 낮은 직급에 집중돼 있는 탓"이라고 설명했다.
직무별로는 특수효과업무가 연 2000만 원으로 가장 높았고, 소품 담당이 315만 원으로 가장 낮았다.
80%가 "정기적 수입이 아닌 계약금과 잔금으로 돈 받는다"
임금 지급 형태는 무려 80.91%가 "계약금과 잔금으로 돈을 받는다"고 답했다. 월급제로 정기적으로 지급받는 경우는 전체의 15.8%에 불과했다. 연봉은 1.08%, 격주급은 0.81%, 주급은 0.5%, 일급으로 받는다는 답도 0.8%였다.
영화산업노조 홍태화 조직국장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근로기준법 제43조 제2항이 "임금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에 정하여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태화 국장은 "낮은 임금 뿐 아니라 불안정한 소득 주기가 영화제작 현장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영화 제작 노동자들은 월급제를 선호하고 있었다. 절반에 가까운 49.87%가 월급제를 선호했다. 주급이 9.92%, 격주급이 9.14%, 일급이 0.78%로 "정기적인 지급"을 원하는 응답자가 모두 70%에 달했다. 현재 관행처럼 굳어진 선금과 잔금, 일시금 등의 방식을 원하는 응답자는 28%였다.
▲ 영화를 만드는 영화제작 노동자의 1년 평균 연봉은 얼마나 될까? 평균치긴 하지만, 고작 1221만 원이다. 사진은 영화 <가문의 영광> 촬영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
66% "휴일 없다"…45.1%가 "임금 체불 경험"
영화 제작 산업의 특성상 휴일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정기 휴일을 사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6%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전체 조사 대상의 주당 평균 근로일수는 5.5일이었다. 직급별로 보더라도 큰 차이는 없었다. 촬영 기간 중 평균 근로시간은 하루에 13.5시간이었고, 야간 근무 시간도 4.9시간으로 나타났다.
부당한 피해 사례를 묻는 질문에는 임금 체불이 45.1%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크레딧 누락(8.9%), 성차별 및 부당대우(8.4%)의 순이었다. "없다"는 답도 28.2%나 됐다. 특히 임금 체불의 경우 근속기간이 많을수록 그 경험도 늘어났다. 임금 체불 경험이 있다고 답한 257명의 평균 제작 편수는 1.19편이었는데 10~15년 근속 집단에서는 1.98편으로 늘어났다.
1개 작품에 3~5개월, 연 평균 1.64편 일하는데 고용보험 180일 가입 어떻게?
더 큰 문제는 영화 제작 노동자들이 1년 동안 '일하는 날'이 별로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이들은 1개 작품에 참여할 경우 보통 3~5개월 정도 일을 하고, 연평균 1.64편의 영화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영화 제작에 참여하지 못할 때는 사실상 생계가 막막한 것이다.
설문 조사 결과, 영화제작 노동자의 71.81%가 "실업기간 동안 다른 경제활동에 참여한다"고 답했다. 자신이 경험해 본 다른 경제활동을 구체적으로 여러 개 꼽아보라는 질문에서는 "TV 드라마나 광고"가 38.5%로 가장 많았고, "아르바이트"가 19.5%, "비전문직 기간제"가 18.4%로 나타났다.
저임금의 불안정한 삶은 '이직'에 대한 고민도 만들어낸다. 이직 고려 사유를 묻는 질문의 1위는 "임금 급여가 낮아서"(58.4%)였다. 그 뒤를 "장기간 실업"(12.4%), "장기비전 부족"(8.4%)이 이었다.
영화산업노조에 원하는 것도 "직급별 최저임금 인상"이 22.16%로 가장 많았고, "작품 규모에 따른 임금 책정"(18.1%), "4대 보험 가입 강제"(14.15%) 등이 뒤를 이었다.
영화산업노조는 지난 2007년 처음으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단체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4대 보험 가입 등을 약속 받았지만, 실제 적용은 잘 되지 않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실업급여 수급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고작 3.76%에 불과했다. 전체의 무려 96.24%가 "경험 없다"고 답했다.
일단 이 협회에 들어오지 않은 제작사가 전체 영화 제작사의 80%가 넘는데다, 실업급여 수급 기준을 맞추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영화산업 특수성 고려한 별도의 실업부조제도가 필요하다"
때문에 노조는 영화발전기금 등 정부의 별도 예산을 통한 실업부조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홍 국장은 "현재 고용보험법의 실업급여 수급 조건은 영화제작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맞지 않는다"며 "건설 노동자 등과 같이 별도의 실업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에서 실업부조금제의 필요성을 "매우 필요하다"가 1점, "매우 필요 없다"를 5점으로 매겨보라고 묻자, 전체 응답자 평균은 1.54점으로 나왔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1년 이상 일한 건설 이용직에게 퇴직공제금을 지급해주는 '퇴직공제제도'의 필요성을 같은 방식으로 물은 결과도 평균 1.63점으로 강한 필요성은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태조사의 응답자는 총 400명으로 직급별로는 회사 대표가 2.6%, 감독급/기사가 14.8%, 팀장이 17.9%, 퍼스트가 17.1%, 세컨드가 32.4%, 수습 즉 막내급이 15.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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