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왜일까? 심드렁하다. 새롭다는 느낌도 '안 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됐던 사안이기 때문도 아니고 사면이 기정사실이 됐기 때문도 아니다. 말 그대로다. 새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이미 사면복권을 받았다. 원위치 되는 일반 사면복권이 아니라 '찬란한 부활'에 가까운 특별 사면복권을 받았다. 대통령에 앞서서 언론이, 그리고 사회 저명인사들이 이미 금테 두른 사면장을 발부해 줬다.
사면복권론의 주된 논거였던 '이건희 역할론'을 읽으면 나온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전 회장의 위상과 파워와 인맥을 활용해야 한다는 '역할론'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국제 스포츠계의 유력한 스폰서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국제 스포츠계의 스폰서이기 이전에 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일군 오너이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CEO다. 한마디로 이건희 전 회장은 '거인'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건희 전 회장은 '구세주'다. 평창, 아니 대한민국에 국익을 안겨줄 백마 탄 왕이다. '죄인'의 멍에를 벗고 IOC위원으로 복귀하면 평창 유치는 따 논 당상과 다를 바 없으니 그는 전지전능한 구세주다.
▲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뉴시스 |
이런 상식적인 반론과 반문은 국익이라는 맹목적인 목표 앞에서 내동댕이쳐진다. 신성불가침의 대전제가 돼 버린 국익 앞에서 상식적 문제제기는 감성적 상황논리에 무릎 꿇는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확장될 게 뻔하다. 아니 이미 확장되고 있다. 어떠한 상식적 문제제기도 허하지 않는 국익론이 이건희 전 회장 앞길에 레드 카펫을 깔고 있다. 평창이라는 지역 범위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경제라는 거시 틀에서 '이건희 역할론'을 스멀스멀 피워올리고 있다. 국부 확대-생산 유발-일자리 창출이라는, 그 누구도 감히 토 달지 못하는 국익을 앞세워 '거인' 이건희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15% 가량을 점하는 삼성전자를 국익의 실현 통로로 설정하면서 '구세주' 이건희의 역할론을 부각하고 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퍼붓는 광고에 일희일비하는 언론이 가장 먼저 나서서 '이건희 역할론'을 전파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형식적인 사면장이 뭐가 대수겠는가. 2005년에 일었던 '이건희 신드롬'을 능가하는 영화가 재현되는 마당에 형식적인 사면장 하나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하나 있긴 하다. 사면장 수령 여부가 등기이사 등재 여부를 가른다는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또한 괘념할 일이 아니다. 삼성은 이미 3세 경영체제 정비를 마쳤다. 이건희 전 회장의 분신들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경영 일선에 포진한 상태다. 이런 마당에 형식적인 등기이사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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