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8일 한국사회학회에 주최한 학술대회에 박형준 수석이 초청을 받아 '국정과 정치: 몇 가지 성찰적 의제'라는 제목의 강연을 발표했다. 동아대 사회학 교수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박형준 수석은 "현대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국가경영의 새로운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수석은 "국정과 정당정치는 정책의 공공성을 구현하는 가장 직접적 기제"라고 평가하면서, "공공정책의 상당 부분이 선험적인 이념적 편 가르기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정치적 의제로 전환"했다고 우려했다.
나는 박 수석이 말한 대로 현대사회가 변화하면서 "전통적 좌우 구분의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과연 공공정책 가운데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 (또는 실용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사실상 공공정책의 모든 영역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다루어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공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과정은 사회 내의 정치구도 또는 정치적 균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처럼 공공정책과 정치적 과정을 무리하게 분리하려고 할 때 국정운영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는 것은 아닐까?
ⓒ청와대 |
정치구도의 변화
민주주의 체제의 선거는 종종 한 시대의 커다란 분수령을 만든다. 1987년 대선은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성격을 규정한 '독재 대 민주'의 정치구도를 송두리째 바꿨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이념, 계층, 지역, 세대의 정치적 균열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997년 대선 이후에는 외환위기로 중산층이 붕괴하고 빈곤율이 증가하면서 지역균열보다 계층격차와 빈부격차가 중요한 정치적 균열로 부각되었다.
가장 최근 치러진 2007년 대선 역시 한국정치의 기본 성격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이명박 후보의 선거운동은 과거의 이념, 계층, 지역, 세대의 균열을 새롭게 변화시켰다. 이명박 후보는 상당한 수의 중도 또는 진보 성향 유권자, 서민층과 중산층, 수도권, 젊은 세대와 중년세대의 지지를 확보했다. 이는 전통적 보수세력이 보수 성향 유권자, 부유층, 영남, 노인 세대의 지지를 주요 세력 기반으로 삼았던 것과는 대비된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고소영', '강부자'로 일컬어지는 편협한 인사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자산을 송두리째 축소시켰다. 급기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격화되면서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은 급속도로 약화되었다. 금융위기 이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구속되는 등 민주주의와 인권이 퇴보하고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앞으로 한국 정치는 '민주 대 독재' 구도가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예측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치의 기본 구도가 단순하게 민주 대 독재 구도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 대 독재 구도 이외에도 이념, 계층, 지역, 세대 갈등 등 복합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고 보아야 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렇게 복잡다단한 사회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정부의 정치적 능력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정당과 국회를 비효율적 집단으로 간주했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진 이명박 정부는 기업과 같은 효율성을 가진 조직을 선호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기업에서는 '스피드 경영'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다. 2008년 연말 청와대가 국회에 '속도전'을 주문하자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입법전쟁'으로 응답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국회의 폭력사태와 대통령의 권위 추락뿐이었다.
미국의 오마바 대통령은 상원과 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의 지도자이지만, 공화당 의원을 백악관에 초청해 칵테일파티를 열어 초당적 협력을 요청했다. 왜 이명박 대통령은 야당 의원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가? 국회 과반수를 차지했으니 "다음 선거 때까지는 여당 맘대로"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논란이 되는 법률안을 국회에서 심의하는 과정에서 여론수렴의 과정은 필수적이다. 다수당의 의석수만 믿고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법안을 밀어붙인다면 민주주의의 토대를 허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일방통행식 행정이 빚은 용산참사
2009년 벽두에 시민사회에 대한 무시와 정부의 일방통행식 행정이 빚은 최대의 참사가 발생했다. 올해 1월 20일 새벽 용산에서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용산참사 유가족 농성은 1년이 다 되도록 혹한 속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피해자 가족의 가슴에 흐르는 눈물이 말라 더 이상 슬퍼할 기운조차 없어 보인다.
용산참사는 서민의 생존권을 국가가 폭력적으로 짓밟으면서 발생한 비극이다. 물론 일부 농성철거민의 지나친 폭력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 원인은 정부의 재개발 정책이다. 무엇보다도 대책 없는 강제퇴거가 심각하다. 세입자에게 불과 3개월분의 주거이전 비용만 제공하는 형식적 대책과 강제철거만 안겨줄 뿐이다. 또한 모든 일이 속전속결인지라 재개발 사업인가를 대개 3~4년 만에 받는다. 일본 도쿄의 대표적 도심재생사업으로 꼽히고 있는 롯폰기 힐스는 사업인가를 받기까지만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공사가 완공되기까지 5년이 더 걸렸다. 게다가 다른 뉴타운 개발사업에서 3~4년이 걸리는 합의기간을 불과 4개월 만에 마친 용산 재개발은 사회갈등의 폭발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도시의 재개발 사업 전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계획단계에서부터 주거민의 의견의 수렴장치가 없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운영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토지와 주택소유자로만 구성된 조합은 세입자를 포함한 지역사회를 붕괴시킨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임시주택이나 상가가 제공되지 않는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퇴거와 철거 절차도 세입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주민과 용역업체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서울의 다른 뉴타운 사업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정부가 마련한 새로운 재개발 대책에서는 세입자 우선분양권과 이주대책을 보장했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권리금 제도에 눈을 감고 있다. 이러니 '제2의 용산'이 더 이상 재발되지 않으라는 보장이 없다.
민주주의의 큰 별이 떨어지다
2009년은 한국 민주주의의 큰 별이 떨어진 해이었다. 많은 국민이 눈물을 흘리며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했고, 어떤 사람들은 분노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현 정부의 표적수사로 인한 타살"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주의를 위해 인생을 바친 두 정치거인이 세상을 떠난 해가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논란이 일어난 시점이라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짧은 유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부탁하며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달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도 너무 놀라운 소식이었지만, 국민의 뜨거운 추모열기도 너무도 놀라왔다. 전국적으로 500만 명 이상이 조문하면서 노무현을 상징하는 노란색 풍선과 종이비행기가 전국에 가득했고, 영결식에는 수많은 울음소리가 따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충격과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예상치 못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권에 화해의 기운을 불어넣고 얼어붙은 남북관계에도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문안 뒤 화해를 선언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문병했다. 북한에서도 조문단이 방문했다. 이명박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을 허용했다.
무엇보다도 올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이명박 정부의 강경노선이 대비되면서 국민적 추모 열기가 폭발한 상황은 주목할 만하다.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은 대학교수의 시국선언을 촉발했고 공무원, 교사, 해외교민, 주부, 고교생 등 각계각층의 호응이 뒤따랐다. 이는 4.19혁명과 5공화국 당시 대학교수의 시국선언 이후 최대 규모의 시국선언으로 정부의 대대적인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행동이었다.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층을 재결집하고 25% 수준의 지지율을 회복한 데 비해, 한나라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촛불시위 이후 가장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청와대의 정책기조가 새롭게 변화했다. 8.15 경축사 등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실용주의'를 강조했다. 특히 '친서민' 정책을 강력하게 부각하면서 중도성향 유권자의 지지율이 점차 상승했다. 대학생 학자금 대출, 미소금융, 보금자리 주택이 대표적인 친서민 정책이다. 이 가운데 대학생 학자금 대출과 취업 후 상환 제도는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좌파정책'을 도입한 적이 있다. 2004년 교통체제 개편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중앙차선 도입과 고가도로 철거보다 버스노선 개편은 이해관계자가 많아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에 서울시는 사실상 준공영제를 실시하여 교통체제를 바꿨다. 이는 시장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시장 논리대로라면 버스노선은 민간이 알아서 해야 한다. 그리고 적자 회사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시장적'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공공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사례로 평가할 만했다. 그러나 2008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명박 시장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책 기조는 주로 감세, 탈규제, 민영화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동일하다. 이러한 시장만능주의는 세계적 차원에서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경제기구의 정통이론이 되어 '워싱턴 합의'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를 단순하게 신자유주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을 강조하면서 녹색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2008년 말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하루 빨리 탈출하기 위해 단기간에 엄청난 수준으로 정부 재정을 확대했다. 이는 전통적인 워싱턴 컨센서스의 정책 처방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미국의 민주당 정부와 영국의 노동당 정부 역시 재정확대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명박 정부와는 이념적 색깔이 사뭇 다르다. 오히려 독일의 보수적 메르켈 정부는 재정확대 정책의 후유증을 우려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현대 보수주의의 정통적 정책에서도 상당히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재정확대와 세금감면의 딜레마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은 오히려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토목공사인 4대강 사업을 위해 2012년까지 정부가 쓸 예산은 22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은 무한대로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는 약 35%이다. 재정적자 증가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빨라 2013년에는 50%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다음에 밀어닥칠 부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비효율적 사업의 과감한 지출을 줄여야 할 시점이다. 현재의 재정적자 증가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세를 추진하면서 대규모 공공사업을 추진한다면 매우 무책임한 처사이다. 아마도 세금감면과 재정지출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사례를 이론으로 만든다면 한국에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할 것이다. (아직까지 이 문제를 해결한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소수의 부유층과 건설업자를 위한 것이라면 사회정의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OECD 국가중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가 회복되고 G20 회의를 한국에 유치해도 국민의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고 빈부격차가 커진다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2009년 통계청이 발표한 '소득분배 지표'에 따르면, 2008년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한 지니계수는 0.325로 증가했다. 이는 1990년대 지니계수 수치를 발표한 이래 최고 수치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1990년 이후 0.25~0.27 수준을 유지하다가 외환위기 이후 1999년부터 0.30 수준을 넘었다. 김대중 정부가 복지제도를 도입한 후 일시적으로 하락하기도 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등장한 이후 2004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신자유주적 경제개혁의 속도에 비해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빈부격차가 더욱 심각한 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거버넌스의 위기, 정치의 위기
이명박 정부의 진정한 위기는 거버넌스의 실종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거버넌스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거버넌스를 쉽게 말하면 "의사결정의 과정과 결정이 실행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거버넌스는 기업 거버넌스, 국제 거버넌스, 국가 거버넌스, 지역 거버넌스를 가리킬 수 있다. 거버넌스의 분석은 주로 결정과정과 결정의 실행과정에 공식적, 비공식적 행위자들이 어떻게 참여하는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기 위해서 어떤 공식적, 비공식적 구조가 형성되었는지를 고려한다. 정부는 거버넌스의 한 행위자일 뿐이다. 다른 행위자들은 거버넌스의 차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정부 이외에 모든 행위자들은 시민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한데 모인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모인 거버넌스를 '협치'라고도 부른다.
한국사회에 정부와 시민사회의 거버넌스가 붕괴되면서 노사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결성된 노사정위원회가 노사정 협의의 일시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까지 노사관계의 적대적 성격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사내하청, 지역노조의 집단행동이 빈발하면서 새로운 노사갈등이 폭발하였다. 올 해도 철도노조 등 수많은 작업장에서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사례처럼 경제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에서 발생한 노사대립은 최악의 폭력적 대결로 비화할 수 있다.
왜 노동자들이 폭력행동에 가담하는 것일까? 일부 비판가들은 소수 노동조합 지도부의 극단주의를 지적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불법파업과 폭력시위에 동조하는 숨겨진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장 먹고 살 생활비도, 자녀의 교육비와 병원비도 없는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뻔하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길뿐이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협력업체를 포함해 20만 명의 노동자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고 다른 업체의 노사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정부는 강경 일변도로 대처했다. 철도노조 파업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정부에서 노동조합과 대화를 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쨌든 이러한 강경 모드의 재등장으로 다시 중도성향 유권자는 등을 돌리고 있다. 결국 10.2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대통령의 리더십,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읽을 책으로 참모들은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와 설득의 기술에 관한 <넛지>를 추천했다고 한다. 라인홀트 니버의 책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사회갈등이 심각했던 상황에서 출간되었다. 그는 아무리 도덕적 인간이라도 집단을 만들면 이익을 추구하는 비도덕적 특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의를 향한 인간의 속성은 반드시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고, 또한 정의를 향한 인간의 양심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니버의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청와대는 지금 거리에 헤매고 있거나 감옥에 갇혀 있는 노동자를 다시 생각하며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민주주의와 정의의 원칙을 실행해야 한다.
시카고 대학 경제학 교수 리처드 탈러와 법학 교수 캐스 선스타인이 쓴 <넛지>도 청와대 직원들이 반드시 읽었기를 바란다. '넛지'는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해석했다. 사람들을 부드럽게 '넛지' 함으로써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미디어법'과 '세종시'의 논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는 '넛지' 실력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4대강 사업' 예산안 논란으로 국회는 지금도 점거농성중이지만, 청와대는 야당과 대화하기보다 '준예산'을 거론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거대한 토목공사가 아니라 교육과 복지를 위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3분의 2 이상의 국민 여론을 청와대는 외면하고 있다.
청와대가 지금처럼 국회, 야당, 시민사회와 대화와 협상을 거부한다면 더 큰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청와대 직속 사회통합위원회를 제대로 운영하고 정무수석실과 시민사회수석실에도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박형준 수석이 말한 대로 "정치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역할이 중요하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일은 법무부 장관이 하는 것이고,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대변하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 지금 당장 대통령은 야당과 시민사회와 협력할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중도실용주의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 글은 2009년 12월 23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출간한 '동향과 분석' 138호에 게재한 '한국, 2009년 겨울: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의 위기' 제하의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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