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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동 64년 만에 99엔…우리가 거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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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동 64년 만에 99엔…우리가 거지냐?"

[현장] 일본대사관 앞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통곡

"내 인생 망가뜨려 놓고, 평생 우체국으로 보내준다는 월급 1원도 안 보내주고 64년을 넘겼다. 우리가 거진가? 이제 99엔(약 1300원)을 주면 고맙다고 받게? 이놈들아, 사죄하고 내 돈 내놔라!"

연신 눈물을 닦던 양금덕(81) 할머니는 결국 길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손바닥으로 땅을 치고, 가슴을 두드려도 가슴에 맺힌 한은 풀리기 어려워 보였다. 그의 앞에는 콘크리트 담으로 높게 둘러싸인 일본대사관이 말없이 서 있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최근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에 끌려가 강제 노동을 당한 한국의 근로정신대 할머니 7명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청구자 1인당 99엔씩 지급했다. 근로정신대에 동원됐다 돌아온 지 64년, 1998년 소송을 제기한 지 11년 만에 돌아온 유일한 '보상'인 것.

일본 정부는 당시 연금 산정 근거에 따라 지급한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 화폐 가치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보상금에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를 비롯해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24일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마디로 언어도단이자, 또 한 번 피해자들을 농락한 처사"라며 수당금을 정식으로 거부한다고 밝혔다.

▲ 피해자 할머니를 비롯해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24일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마디로 언어도단이자, 또 한 번 피해자들을 농락한 처사"라며 수당금을 정식으로 거부한다고 밝혔다. ⓒ프레시안

"월급 보내준다더니 64년 동안 연락 없어…이 한을 알고 있나"

이날 기자회견에 양금덕 할머니와 함께 참석한 김성주(82)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사연을 읊었다. 오랫동안 앓아온 그의 손은 마이크를 잡고도 심하게 떨렸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일본에 가면 중·고등학교도 나올 수 있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부모도 속이고 일본에 갔다. 미쓰비시 공장에 가서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일했다. 그런데 결국 월급 한 번 제대로 못 받고, 해방 되면서 한국으로 나올 때 '왜 우리 월급 안 주냐'고 하니까 '너희 나라에 가 있으면 부쳐 줄 테니 가라'고 하더라.

그런데 해방 64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무 연락도, 소식도 없었다. 나는 그때 다친 다리로 평생 절룩거리면서 살고, 실연까지 당했다. 그때 절단기에 잘린 손가락이 부끄러워서 평생 남앞에 손 한 번 못 내밀었다.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몸 버린 여자' 취급을 당해서 숨어 살아왔다. 이 한을 일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까?"


그동안 일본 정부는 일제 강점기 당시 피해자들의 보상금 청구를 모두 거부해왔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대신 청구권 등 모든 문제를 소멸한다고 적은 '한일 협정'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당시 한일 협정으로 제공한 3억 달러는 순수한 경제협력자금이었음을 2006년 아베 신조 총리도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이번에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99엔을 지급한 것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만 정부는 2000배 보상 요구하다 결국 120배라도 받았는데…"

▲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81) 할머니는 결국 길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프레시안
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해온 최봉태 변호사는 "99엔이 비록 적은 돈이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한일 협정으로 모든 게 끝났다는 일본 외무성의 논리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제시대에 강제 동원된 대부분의 피해자들도 후생연금에 가입돼 있었다"며 "이것은 7명의 할머니만의 문제가 아니라 강제 동원된 수십 만명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최봉태 변호사는 "사실 이미 2003년에 같은 문제로 강제 노역의 피해자인 여운택 할아버지가 316엔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탈퇴 수당을 받은 사례가 있다"며 "그런데 10년 넘게 한국 정부는 무슨 일을 했나. 한국 정부는 이 문제가 상식과 법에 따라 해결되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미 타이완의 경우 1995년에 유사한 문제가 불거져서 2000배의 보상을 요구한 끝에 당시 금액 120배에 달하는 임금과 우편 저금을 피해자들이 돌려받았다"며 "99엔을 받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바로 국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토야마 총리, 이제 '과거 직시할 용기' 보여줄 때"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망쳐놓고도, 이제 와서 99엔이란 말인가"라며 "그동안 흘린 눈물 값으로만 쳐도 이보다 적을까"라고 되물었다.

이들은 "하토야마 총리는 '과거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고 누차 강조해왔다"며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지금, 일본 민주당 정권을 이제 '과거를 직시할 용기'가 어떤 것인지 보여줄 시험대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한국 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라며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 1등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에 '아리랑 3호' 위성 발사 용역권까지 주고 말았다. 64년 동안 임금조차 돌려주고 있지 않은 기업에 우리 정부가 나서서 길을 놔주고 있으니, 이 무슨 꼴인가"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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