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이런 날, 스노우볼 같은 지구에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눈송이가 한 사내만은 그저 스쳐지나간다. 그 앞에서는 종소리도, 눈송이도 힘없이 사라질 뿐이다. 평생 크리스마스 캐럴을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을 것 같은 스크루지 영감. 그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들떠있는 당신을 노려보며 말한다. 크리스마스는 게으른 놈들이나 좋아하는 쓸데없는 날이라고.
관객과 스크루지, 서로를 조롱하며 교차하는 시선
스크루지를 욕하지 말자. 그는 우리보다 열심히 일했고 우리보다 검소했으며 우리보다 열심히 세금을 냈다. 그의 검은 옷차림과 주름 가득한 얼굴을 보면 그 돈을 다 어디에 숨겨놓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보다 부지런히 살며 돈을 모았다. 말투와 표정을 제외하면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성직자와 같은 금욕적인 생활을 해왔다. 가족을 떠나 홀로 지내는 성직자의 모습을 떠올리자면, 혈육도 무시하고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사는 스크루지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만의 규칙을 지키고 사는 또 하나의 성직자와도 같다. 그가 숭배하는 돈, 그것만 바라보며 벽에 똥칠하지 않고도 먹은 욕을 명줄삼아 오래오래 살 스타일이다. 이 규칙적인 인간 스크루지는 그래서 관객들의 인색한 인심에 자극을 줄 수 있다. 아무리 좋게 보려 죽을힘을 다해 애를 써도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심술궂은 시선 속에서는 그를 조롱하며 바라보는 우리도 멍청하고 방탕한 광대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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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은 스크루지가 세 명의 유령을 만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는 원작의 뼈대를 취한다. 그러니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뮤지컬이 따뜻한 이유는 인류가 크리스마스에 끼워 넣어 억지로라도 만들려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는 내 것을 나누며 선을 베풀어 모두가 행복해야 의미가 있다는, 식상하지만 인류가 이뤄내야 마땅할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요인으로는 비교효과를 들 수 있다. 돈 많은 구두쇠 스크루지의 외로운 크리스마스이브와, 돈 없는 가족의 따뜻한 크리스마스이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흡사 비교체험 극과 극을 보여준다. 스크루지의 비참한 죽음 이후 아무 의미 없어진 그의 구두쇠 노릇과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은 한 인간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거기에 영국의 거리를 그대로 재현한 세트와 무대를 가득 채우는 함박눈은 주제를 넘어선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스크루지가 행복해야 세상도 행복하다
우리는 스크루지의 여행을 통해 외톨이로 지내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환경을 만난다. 스크루지는 언제나 외로웠고 고독했다. 가난은 그에게 한평생의 짐이 됐다. 어린 시절, 누군가 그에게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했다면, 마음을 위로하는 크리스마스를 만들어줬다면 어쩌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돈보다 마음이라는 이 유치한 원리를 그가 진정으로 깨닫기에 환경은 너무 열악했다. 혹시 그의 변화가 효과 있는 이유를 스크루지의 재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을 꼭 만나길 바란다. 혹 그가 가난해 물질을 베풀지 못하더라도 이 소재는 의미를 지닌다.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과 그 양을 떠나 황폐한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혹시 자신이 스크루지와 비슷하다면 스스로의 미래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주위에 스크루지영감이 있다면 그들에게 끊임없는 손길을 내밀기 바란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지 않나! 사실, 세상의 스크루지는 언제나 외롭다. 그 날이 크리스마스라 할지라도. 내 옆의 스크루지가 행복해야 내가 더 해복할 수 있다.
뮤지컬 '크리스마스 캐롤'은 12월 31일까지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올림픽역도경기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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