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공소내용을 보면 산업자원부 고위간부들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을 밀기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돼 있다. 총리공관 오찬이 있기 한 달 전인 2006년 11월말에 이원걸 당시 2차관이 곽영욱 전 사장에게 "석탄공사 사장에 지원하라"고 전화했고, 담당과장이 직접 곽영욱 전 사장의 집을 찾았다는 것이다. 헌데 없다. 산자부 위간부들이 곽영욱 전 사장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직접적인 이유가 제시돼 있지 않다.
실마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게 있다. 이원걸 전 2차관이 "정세균 당시 산자부 장관의 지시로 (곽영욱 전 사장에게)전화를 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밝혀졌다"고 단정하면서 이렇게 보도했다.
믿자. '한국일보'가 전한 내용을 사실로 전제하자. 그래도 풀리지 않는다. 정세균 대표의 지시로 산자부 고위간부들이 곽영욱 전 사장을 석탄공사 사장에 앉히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해서 한명숙 전 총리의 '역할'이 확정되는 건 아니다. 정세균 대표의 '지시' 이전에 한명숙 전 총리의 부탁 또는 요청이 있었다는 게 확증되지 않는 한 산자부 고위간부들의 '동분서주'가 한명숙 전 총리의 인사 개입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게 핵심 문제다. 한명숙 전 총리와 곽영욱 전 사장 사이에 인사 청탁과 금품 수수가 있었다는 검찰의 공소내용이 입증되려면 먼저 정세균 대표를 거쳐야 한다. 정세균 대표가 곽영욱 전 사장의 뒷배를 봐준 이유를 한명숙 전 총리의 '역할' 범위 내에서 설명해야 한다. 아울러 정세균 대표의 '밀어주기' 시점이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보다 한 달이나 앞섰던 점을 설명해야 한다.
▲ 15일 열린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과 수구언론 정치공작 규탄대회'에 참석한 정세균 민주당 대표 ⓒ민주당 |
관련 보도가 있다. "정세균 대표가 2006년 12월 20일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에 참석하기 전에 곽 전 사장을 따로 만난 적이 있(다)"는 '동아일보' 보도다. '동아일보'의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인지 불투명하지만(정세균 대표는 곽영욱 전 사장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 한다고 주장하고 있단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핵심 문제를 설명하는 결정적 내용은 아니다. 2006년 12월 20일과 2006년 11월 말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메우는 데는 일정한 기여를 하는 보도이지만 정세균 대표의 '밀어주기' 동기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관련 보도가 하나 더 있다. '조선일보' 보도다. "곽 전 사장은 2005년 6월 대한통운 사장에서 물러난 뒤 한 전 총리에게 공기업 사장으로 가게 해달라고 수차례 부탁했(으며) 이에 한 전 총리는 2006년 산자부측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의 이 같은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동아일보'가 설명하지 못한 핵심 문제, 즉 정세균 대표의 '밀어주기' 동기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기사의 "산자부측"을 "정세균"으로 바꾸면 일단 앞뒤는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특정하지 않았다. 한명숙 전 총리가 "산자부측"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구체적으로 전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예단하지는 말자. '한명숙 공소장'에 핵심 문제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다고 해서 검찰 수사가 부실하다고, 재판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자.
이런 말이 검찰에서 흘러나온다. "우리가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는 재판 과정에서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말, 그리고 "산자부 차관과 과장이 무슨 이유로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런 일을 했는지는 재판 때 입증하겠다"는 말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못 밝힌' 게 아니라 한명숙 전 총리측에 '힌트'를 주는 걸 꺼려 공소장에서 '안 밝힌' 것이 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검찰이 쥔 패가 태산을 울린 서생 한 마리에 불과한지, 아니면 회심의 히든카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재판과정에서 추가로 밝히겠다고 하니 굳이 앞서서 판단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점만 확인하자. '예상문제'가 될지 모르니 반드시 밑줄 쫙 그어야 하는 사안이다. 하나는 검찰 수사의 미완성을, 다른 하나는 검찰 수사의 확대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첫째, 검찰은 정세균 대표를 조사하지 않았다. 소환 조사하지 않았고 서면 조사했다는 말도 없다. 근데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핵심 고리인 정세균 대표를 조사하지 않고 어떻게 한명숙 전 총리의 인사 개입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둘째, 다시 등장한다. 최초 보도 때 거명됐다가 한명숙 전 총리의 실명이 나오면서 쏙 들어갔던 두 인물, 즉 J씨와 K씨의 이니셜이 일부 언론에 의해 다시 거론되고 있다. 곽영욱 전 사장이 금품을 건넸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세 명 가운데 두 명, 참여정부 때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던 실세 두 명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게 뭘 뜻하는 걸까? 정세균 대표의 '밀어주기' 동기를 제공한 다른 인물이라고 검찰(과 언론)이 의심하는 걸까? 아니면 한명숙 전 총리와는 별개로 앞으로 수사하겠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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