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당사국 총회에서 과연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국제협정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이 많이 있었다. 한 가지 아이러닉한 것은,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를 적극적으로 촉구하였던 환경전문가들이 이런 불만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이미 20여 년 전에 정확하게 지적하였다는 점이다.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이 천명되었는데, 이 원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번 코펜하겐 당사국총회는 바로 이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체결된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소집된 국제회의다.
▲ 코펜하겐 당사국회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사진은 코펜하겐 당사국회의 공식 포스터. ⓒ프레시안 |
우선, 첫 번째 주장(소득분배의 불평등이 환경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극심한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그 자체로서 정당화되기 어렵기도 하지만, 또한 사회불안의 주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부자는 소수이고 가난한 사람은 다수다. 다수가 불만을 품는 체제는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사회를 안정화시키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달래고 이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그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이 경제성장이다. 경제성장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가난한 사람들도 언젠가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참으면서 현 체제를 묵인할 수가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이 저마다 경제성장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한다. 그러나 통상 경제성장은 한편으로는 많은 자원을 소모함으로써 자원고갈을 초래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환경문제를 야기한다. 그렇다면 극심한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한 지속적 경제성장은 어쩔 수 없으며, 따라서 환경오염이나 환경파괴를 각오해야 한다.
물론 지속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성장의 열매의 80%가 소수 부자의 차지가 되고 나머지 20%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떨어진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경제성장의 열매가 코끼리 비스켓과 같은 것이라면 그런 경제성장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성장을 중지시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금의 부자로부터 돈을 뺏어오는 것뿐이다. 이렇게 되어서는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극심한 빈부격차가 존재할 때는 경제성장을 멈추기는 곤란하다.
이런 논리는 국제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쪽에서는 부자나라들이 떵떵거리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난한 나라들이 우글거리는 상황에서는 가난한 나라들은 부자나라를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기를 쓰고 경제성장을 이루려고 할 것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잘 살아보려고 악을 써왔고,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경제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나 중국, 인도 등의 온실가스배출이 급속도로 증가해왔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자체의 사회 안정을 위해서 경제성장을 계속 추구하고 있고,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을 따라가기 위해서 경제성장에 전력투구하고 있으니 범지구적 자연자원의 고갈과 환경파괴 역시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환경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원천적인 장애가 된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빈부격차가 심할 때는 어느 나라나 환경보전이나 환경개선에 신경을 쓰기 힘들다. 환경개선에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환경보전이나 환경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아무래도 경제성장에 지장이 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가들이나 관료 그리고 보수적 정치가들은 우리나라가 환경보전에 신경을 쓰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말을 누누이 되풀이 했다. 지금도 이렇게 말하는 기업가들이 많이 있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환경보전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물론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환경의식도 높아지면서 환경개선에 노력을 하는 지역이 나타나고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소득수준이 비교적 높은 서울이나 경기도 그리고 대도시에 국한되어 있다. 소득수준이 낮은 지방은 아직도 개발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에서는 하천을 자연 상태로 복원하자고 하는데, 지방에서는 강에다 시멘트 붓고 직강화 하기 바쁘다. 서울에서는 녹지조성에 신경을 쓰는데 시골에서는 공단유치에 열심이다. 시골에 가서 환경보전에 힘을 쓰자고 호소하면 빈축 사기 쉽다. 그러니 계층간, 지역간 빈부격차가 클 때에는 정부도 환경보전 정책을 전국적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기 어렵다.
▲ 국가간 빈부격차가 클 때 범지국적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구촌 역량을 한데 모으기가 어렵다는 게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 증명됐다. ⓒ프레시안 |
이런 현상은 특히 국제사회에서는 더욱 더 분명하다.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격차가 클 때에는 범지구적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지구촌의 역량을 한데 모으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 이번 코펜하겐 당사국 총회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서 세계의 모든 나라가 일제히 화석연료의 사용을 크게 줄여야 한다고 아무리 설교해봐야 선진국 따라가기 바쁜 후진국이나 개도국에게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화석연료의 사용을 크게 줄인다는 것은 경제성장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요, 경제성장의 포기는 후진국이나 개도국이 영원히 빈국(貧國)의 굴레 속에 갇히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진국 따라가기에 급급한 나라들이 존재하는 한 범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실상부한 국제협력이란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만일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을 주창한 학자들의 말대로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환경문제의 주된 원인이자 환경개선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면, 오늘날 범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계층간, 국가간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가능발전 원칙을 실행하기 위한 행동강령서인 <의제21(Agenda 21)>은 첫 머리부터 선진국이 후진국을 경제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도와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세계 주요 국가들이 이 행동강령서를 채택하면서 후진국 및 개도국에 대한 지원을 약속까지 하였다. 하지만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였다.
선진국들이 진정으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그래서 1년 후 멕시코시티에서 원만한 국제공조를 끌어내려 한다면, 개도국 및 후진국의 참여를 닦달만 할 것이 아니라 우선 후진국들에게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번 코펜하겐당사국 회의의 실패가 빈부격차 문제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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