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전경 버스 끌어 당기기 퍼포먼스에 동참했다고
난데없이 벌금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그것도 직장으로. 이런 된장.
직장 상사는 힐끔힐끔 우편봉투를 보면서, 이번 기회에 저걸 짤라 말아 탐색하는 꼴이었어요.
야이! 십장생 계산기 신발 총 같은…. 욕이 절로 나와요.
그러나 멍 때리고 있다고 해결될 리 없어요.
엄마 외조모의 이종 사촌 언니 이복동생의 회사 친구까지 죄 뒤져 변호사를 찾아요.
돈 밝히는 변호사들한테서 답 안 나와요.
물대포 맞으면서 샴푸하고 샤워 놀이 할 때 만났던 친구가 알려줘요.
민변 변호사래요.
하지만 내가 똥줄 탄다고, 바쁜 양반한테 맨날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없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쫄지마 형사 절차!>(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지음, 사람생각 펴냄)가 나왔대요. 민변 변호사들이 썼대요.
불심 검문에서 경찰, 검찰 수사, 법원까지 '풀패키지 원스톱 서비스'예요.
'깜놀'하고 '므흣'해요.
대한민국 민주 시민 여러분, 원추예요.
공권력의 불법에 합법으로 대응하는 민주 시민탐구생활 필독서예요.
<쫄지마, 형사 절차!>를 읽은 오늘은 보람찬 하루였어요.
고맙게도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혀주신 분은 각하셨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똑같은 물대포에 똑같은 경찰의 곤봉과 방패질, 지금처럼 똑같이 맨바닥에 질질 끌려 다니며 범죄자가 되고 외롭게 부르짖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는 외로웠다. 그랬던 외로운 거리의 정치를 민주주의로 등극시켜 주신 분은 다름 아닌 그분이셨다. 더불어 수많은 시민을 민주 시민으로, 곧 전과자로 만들어주신 분도 그분이셨다. 그래서 이 책은 우선 그분에게 헌사되어야 한다. 21세기에 민주 시민 필독서를 발간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이런 된장.
▲ <쫄지마 형사 절차!>(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지음, 사람생각 펴냄). ⓒ프레시안 |
새벽 늦게까지 이어지던 집회의 끝 무렵에 대량 연행되는 시민들의 곁에 있어야 했기에 우리들은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같이 밤을 새야 했다. 피로와 긴장의 연속이었다. 공권력의 불법 양태는 나날이 갱신되었고 그나마 합법적 권리를 주지시키기 위해 시위대를 위한 안내서 같은 것을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축제 같은 시위가 잦아들고서 피해는 더욱 늘었다. 경찰과 검찰의 불법과 탈법, 또는 법률 과대 해석은 날로 커져갔다. 상식은 이미 뒤안길로 사라졌고, 법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목에 두르면 목도리가 되었다. 물론 법이라는 권력은 국가와 여전히 국가의 형님이신 자본만이 누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되다보니, 평생 법이라고는 입에 올려 볼 일도 없던 사람들이 툭하면 경찰서에 불려가는 일들이 일상다반사가 되고 있다.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가, 집회가 벌어지는 거리를 지나가다가, 억울하게 잡혀가는 시민을 보고 경찰에 항의하다가, 촛불 집회에 참석하기는 어색해서 교통안내 자원봉사만 했다가…. 억울한 사연은 천지에 넘친다. 진실은 정교하나 법률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날아오는 벌금 통지서, 구인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찰관을 피할 수가 없다. 억울하고 원통하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내 삶이 뿌리부터 흔들린다.
<쫄지마, 형사 절차!>는 이런 엉망진창이 된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나온 실용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완독할 책이 아니라 법이라는 애물단지가 내 생활의 어느 순간 난데없는 질문을 던질 때, 책장에서 뽑아서 필요한 부분을 읽어볼 만한 책. 그야말로 실용서다. 이런 실용서를 민주 시민을 위한 필독서라 추천하는 것 자체가 미안하기 그지없지만, 그러나 스스로 민주 시민이라 자처한다면 집안에 한 권씩은 두고 볼 만하다. 어쩌랴. 다시 말하지만 이 시대가 그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것을.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서 헌법조차 괴롭다고 아우성인 것을.
물론 이 책이 집회와 시위, 또는 그에 대한 정치적 권리를 침해받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바뀐 형사소송법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고, 일상생활에서 만나게 될 법한 고소·고발에 대한 대처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모름지기 국민의 요구와 반대되는 정책을 펼치는 권력은 결국 권리를 억압하면서 통치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덕치와 관용이 서야할 곳에 규율만을 앞세운다. 그 자체로 숨막히는 사회에서 법률의 통치를 피할 수 있는 국민은 없다. 그래서 법률은 많아질 수밖에 없고, 법률에 의해 통제되는 범죄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시나브로 범죄는 줄어들 수 없다. 법률을 장악하는 자만이 법률의 그물망에서 안전할 수 있다. 그런 불행한 사회의 연쇄작용으로 인해, 이 책은 필요하다. 책이 잘 팔리면 그것도 모두 각하 덕분이다.
씁쓸하지만, 다시 한 번 <쫄지마, 형사 절차!>를 추천한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책이 나왔던 적이 있었다. <또 하나의 투쟁-검거에서 석방까지, 투쟁의 원칙과 방도>(조한백 지음, 백산서당 펴냄, 1988년)이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의 징크스라는 게 책을 읽으면 결국 검거나 구속이 된다는…. 뭐 그런 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20세기 후반의 책이 업그레이드 되어서 21세기에 다시 세상이 나온 느낌이니,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가 뒷걸음질 치는 일은 없다고 믿었는데 한국은 그런 법칙과 무관한가 보다. 그래서 계속 체한 듯이 더부룩하다. 물론 책 탓이 아니라, 각하 탓이다.
그러나 투덜대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정보가 독점되지 않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공유된다는 점에서 형사 절차를 이토록 친절하고 소상히 설명하는 책이 등장했다는 것은 고맙고도 권장할만한 일이다. 그러니까 세상이 이토록 위태하지만 않았어도 책의 발간은 정말 칭찬받을 만하다는 뜻이다. 권리를 알고 권리를 읽고 배우는 것이 바로 권리 자체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뛰어다닌, 심장이 펄펄 뛰는 그들이 모으고 쓴 글이라서 책은 살아있다. 아마도 많은 교정의 순간, '이것도 필요해, 저것도 필요해'라며 목록의 욕심을 무던히도 부렸겠다, 싶다. 내가 만약 참여했더라도 책의 두께를 조정하지 못하도록 편집자를 괴롭혔겠다, 싶다. 위태로운 시대에 민주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같은 기분으로.
그러나 이 말만은 하고 싶다. 법이 권리의 모든 것은 아니다. 합법적인 것만이 모두 옳다는 논리에 갇히지 말자는 말이다. 권리의 요구와 확장은 법이 없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생각해보라. 노예 제도 철폐는 그 시대에 합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예 제도 철폐는 너무나 지당한 역사적 순리며 권리의 기본 걸음이다.
마찬가지로 법적 권리를 찾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법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만들고, 없애는 경찰, 검찰, 법원, 국회, 청와대를 보면서 배우고 있지 않은가. 법은 우리가 요구한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는(또는 지켜줘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에 불과하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우리의 요구, 즉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상식과 합리의 기준으로 권리를 확장해가야 한다. 법이 그곳에 있도록 감시하고 명령해야 한다. 저항하는 당신이 민주 시민이다.
쫄지말자, 당신!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정의로운 당신이 각하보다 옳을 뿐만 아니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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