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면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삶이 벼랑끝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주장을 펴면서도 정작 이런 주장에 걸맞은 투쟁은 전개하고 있지 않다.
전면 총파업 등이 논의될 때마다 현장동력이 따라주지 않던 문제가 최근에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이래 민주노총이 전개한 총파업에 내실 있게 참여한 사업장은 전체의 20%를 채 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현장동력'의 침체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하지만 현장동력을 일깨우는 책임은 일선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의 몫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 내부에서 현장동력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노조 간부들이 먼저 헌신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3일째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김창한 위원장을 만나 최근의 노동운동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 오늘로 단식 23일 째다. 단식에 들어간 이유는 뭔가?
"금속노조 산하에 비정규직 노조 사업장이 모두 14개다. 조합원은 3500명 정도다. 그 동지들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년 넘게 싸우고 있다. 정당한 요구를 내세우고 투쟁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저임금에 근근이 꾸려오던 생활도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들 사업장의 싸움을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책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금속노조가 싸움의 돌파구를 열어야 하고, 금속노조가 나서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조합원들에게 줘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것이다."
- 산하 노조의 싸움에 상급단체가 나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위원장 단식은 노동진영 내부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정규직 문제로 촉발된 싸움에 정규직 조합원을 끌어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정리해고가 진행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정규직 조합원들의 동참이 더욱 어렵게 됐다. 구조조정 시기에는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버팀목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정규직 조합원들이 하게 된 것이다. 회사에 위기가 닥치면 비정규직이 자신들의 안전판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기 시작했다.
운동 하는 활동가들의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정규직 조합원을 끌어내지 못하면 대중투쟁이 안 된다. 나아가 싸움에서 승리를 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말로 수없이 설득해봤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위원장부터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비정규직 문제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사활적 과제라는 것을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노조 간부들, 아직도 각성 못하고 있다"**
- 최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나 대의원대회에서 간부들의 결단을 요구하는 발언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간부들도 비정규직 문제를 사활적 과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눈으로, 머리로만 볼 뿐이지 가슴으로 받아 안는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는 셈이다. 현장 조합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에 자기 보호 본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간부와 활동가들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간부들의 낮은 인식수준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간부나 활동가들이 아직도 각성하지 않고 있다."
-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투쟁전략들이 논의됐다. 김 위원장은 간부들이 헌신하는 선도투쟁을 많이 강조했다.
"비정규직법 개악안을 막고 권리입법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위력적인 총파업을 감행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비정규직법 개악안이 통과되면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의 삶도 벼랑으로 떨어진다. 이런 사태의 위급함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간부, 활동가, 일반 조합원 할 것 없이 긴장감이 떨어져 있다.
***"현장동력 탓하지 말고, 간부부터 싸우자"**
더구나 침체된 현장정서를 끌어올리기 위해 간부·활동가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내부적으로 보면 수수방관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동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간부 스스로라도 헌신적인 투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간부들이 국회 앞에서라도 선도투쟁을 하며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현장동력도 생길 것이라고 봤다.
각 노조에 상근간부만 해도 3000명이 넘는다. 하지만 국회 앞 간부들만의 집회를 해보면 불과 몇 명 안 모인다. 도대체 간부들이 싸우지 않는데 현장 조합원이 나서겠는가? 현장 조합원에게 간부들이 몸을 던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각인시켜야 현장동력이 살아난다."
- 금속노조 위원장을 하면서 느낀 점이 많을 것 같다.
"나도 정규직 노동자다. 만도기계에서 위원장을 하던 시절을 되짚어 보면, 참 쉽게 운동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조 동력이 되니까 투쟁도 쉬웠고, 교섭도 어렵지 않았다. 물론 현재와 비교해서 말이다. 당시에도 비정규직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나 자신의 문제라고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금속노조에서 일을 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다시 보게 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임금,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리는 일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법에 보장돼 있는 노동3권조차 일상적으로 침해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비정규직의 모습이다.
산하 사업장인 기륭전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해고를 통보받았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금속노조에서 일하면서 새삼 깨닫게 됐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의 운동과 과제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왜 과거에 안이하게 생각했는지 반성을 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 고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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