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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1] '엄마'를 바라보는 시간, 연극 '엄마, 여행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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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1] '엄마'를 바라보는 시간, 연극 '엄마, 여행갈래요'

[공연리뷰&프리뷰]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 그 첫 번째

'있을 때 잘해'라는, 아주 식상하고도 흔하며 수도 없이 내뱉어진 말이 있다. 노래 제목만도 여러 개, 동명의 드라마와 책도 있다. 도처에 널린 이 말은 지나가다 밟힐 만큼 모든 사람의 입에서 뚝뚝 떨어진다. 너무 많은 입을 거쳐 너덜거린다. 그러나 신발 밑창에 붙어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생명력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진리, 후회하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바로 있을 때 잘하는 것이다. 연극 '엄마, 여행갈래요'는 '있을 때 잘해'라는 이름의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내리친다. 어안이 벙벙할 즈음 예상했으면서도 막을 수 없게 치부를 격타하며 한 번 더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해!'

▲ ⓒ프레시안

- 달콤한 눈물, 그 불가능한 낭만에 대한 이야기

연극 '엄마, 여행갈래요'는 공연계의 대세라 할 수 있는 엄마 이야기를 다룬다. 위암 말기의 엄마라는 소재에서 이 연극은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 신파적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간이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엄마와 함께하는 둘만의 여행은 달콤하다.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비현실적인 낭만으로 남아있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엄마와 애인 때문에 가까스로 체면 유지하고 있는 시간강사 현수. 머리를 굴리고 손가락을 접었다 피며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결혼할만한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현수는 모든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신 슬쩍 물러나 얼버무리며 마무리 짓는다. 완벽히 퇴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있을 뿐이다. 그런 현수 때문에 착한 애인은 속이 터진다. 그런 현수 때문에 착한 엄마도 속이 터진다. 그러나 사람보다 착한 엄마는 아들이 안쓰럽다. 그리고 누구보다 예쁘다. 세상에, 나이만 먹고 키만 컸지 매일 생떼를 쓰고 술에 취해 똥과 된장도 구분 못하는 아들이 '장동건' 보다 더 예쁘다. 이 '소갈머리 없는 아들'이 결국 세상의 아들, 이 '사람보다 착한 엄마'가 결국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아니던가. 당연한 눈물이 객석 곳곳에서 미련 없이 흘러내린다. 어차피 이 연극은 제목만으로도 '당신 울리려고 만든 연극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 사람에 닿아있는, 영화 같은 연극

여행이라는 소재는 영화와 잘 어울린다. 고독한 여행자와 배경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은 생각만으로도 설레게 한다. 분위기로 먹고 들어가는 여행의 소재와 이미지는 연극에서 구현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연극 '엄마, 여행갈래요'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영화의 냄새를 풍긴다. 영화의 편집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장면전환 때문이다. 반복되는 암전의 타이밍은 설명하는 대신 여운 남기기를 시도한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대학생이 '아줌마 많이 아프다'고 알려줄 때도 현수가 당황해 어딘가로 달려가는 대신 그냥 그 상황에서 조용히 암전될 뿐이다. 그리고 조명이 켜지면 엄마와 함께 묵고 있는 객실이다. 이 영화 같은 연극은 쓸데없이 놀라고 소리치며 통곡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에 폭풍해일은 흔하지 않는 법. 이 작품은 근교에 위치한 호숫가의 느림처럼 고여 있는 일상을 담담하게 포착해낸다. 그 속에서 아프고 울고 웃는다. 이 연극이 영화의 느낌을 풍기는 또 다른 이유는, 너무나도 사소한 대사와 행동 때문이다. 연극 '엄마, 여행갈래요'는 과격하고 관념적인 언어가 아닌, 일상적이고 사소하며 구체적인 대화들로 이뤄졌다. 그리고 친근한 상황들이 재현된다. 베란다의 전구를 갈아 끼워달라는 엄마의 반복된 부탁이 결국 잔소리로 변화되는 과정은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게 영화 같으면서도 '사람'에게 닿아있는 연극이 '엄마, 여행갈래요'다.

우리는 연극의 제목과 '위암 말기의 엄마'라는 소재만으로 극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공연장은 관객들로 가득 찬다. 관객들은 이 뻔한 내용을 '확인'하면서 또 운다. 이것이 '엄마'의 효과다.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 그 첫 번째인 류장하 감독의 연극 '엄마, 여행갈래요'는 그렇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리고 대놓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바로 당신들에게 못난 자식들이 바치는 연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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