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 법안이 제출된지 1년5개월이 지난 만큼 이제는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1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에서도 쟁점 사안들에 대한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법안 처리가 또 미뤄졌다.
***환노위 법안소위, 파행하다 1시간만에 폐회**
환노위 법안소위는 이날 오전 회의를 열어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시도했다. 지난 7일 회의에서 쟁점 사안 중 하나인 '비정규직 차별처우'의 기준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진 만큼 조금만 더 논의를 진전시키면 법안 처리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김한길 원내대표 등 열린우리당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2월 내 법안처리 방침을 강조하고 나섰기에 어느 때보다 법안처리의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돼 왔다. 비정규직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전체 노동정책 추진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노동부의 볼멘소리가 더욱 커진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법안소위는 예상과 달리 파행으로 치달았다. 민주노동당이 예전처럼 회의장 점거라는 물리적 저지를 감행한 가운데 열린우리당은 경위권 발동 등의 강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법안소위는 오전 11시가 지나서야 개회됐지만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폐회됐다.
***사유제한 규정 도입여부가 쟁점**
이처럼 법안이 표류하게 된 이유는 쟁점 사안들에 대해 여야가 서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비정규직 법안 중 기간제 법안과 관련해 기간제 근로를 사용할 경우 사유제한 규정을 도입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당초 정부안에는 기간제 근로의 남용을 막기 위해 기간제한 규정(3년)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민노당을 비롯한 노동계는 기간제한 규정만으로는 기간제 노동자의 수를 줄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용사유 규정'을 별도로 추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즉 정부여당은 무제한적으로 기간제 근로 사용이 횡행하고 있는 상황이니 사용기간을 2년 혹은 3년으로 제한하고 이 기간보다 길게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면 기간제 근로자의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반면 민노당과 노동계는 2년 혹은 3년이란 기간제한을 둘 경우 해당 노동자의 근속기간이 2년 혹은 3년이 넘기 전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사용자가 해고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간 제한은 기간제 근로 남용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대신 기간제 근로를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를 법제화해 기간제 사용 자체를 원천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법(사유제한 규정 도입)만이 기간제 근로자의 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제출하고 있는 것이다.
*** 사유제한 규정을 둘러싼 대립, 유예기간 도입으로 풀 수 있을까? **
한편 이날 법안 소위 개회 여부를 두고 벌어진 단병호 민노당 의원과 우원식 우리당 의원 간의 설전에서 사유제한 규정 도입과 관련해 타협의 여지를 점칠 수 있는 발언이 나와 주목을 받았다.
우원식 의원이 "사유제한 규정을 도입할 경우 중소 영세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실직할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았는가"라고 단 의원에게 묻자, 단 의원은 "중소 영세업체가 지불능력이 부족해 소속 노동자를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사유제한 규정을 도입하되 유예기간을 두면 될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즉 재정구조가 열악한 중소 영세업체에게 사유제한 규정을 적용하면 대량실직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우 의원의 우려에 대해 단 의원이 사유제한 도입 시기를 사업체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둘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사유제한의 범위와 사유제한 도입 여부만을 두고 벌어진 그간의 논의에서 '도입 시기'라는 새로운 논의 주제가 등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여당이 사유제한 규정 도입을 수용하고 민노당이 중소 영세업체에 한정해서 도입 시기를 유예시키는 방안을 검토한다면, 사유제한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해소될 여지가 아직 남아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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