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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황청심환 잔혹사'를 아십니까?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우황청심환의 비밀

조선시대 궁에서는 구급약으로 쓸 환약을 만드는 날도 따로 정했다. 동지가 지난 후 세 번째 술일이 그날이다. 이렇게 내의원에서 환약을 만들면 왕이 가까운 신하에게 선물로 하사하는 일이 잦았다. 신하들이 가장 선호했던 최고의 인기 품목은 바로 우황청심환이다. 기사회생의 신약으로 인기가 높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22년 승정원에서 내의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우황청심환을 제작하는 것을 문제삼는다. 승정원은 "청심환을 의정부, 육조, 의금부 등에서 제작해 집집마다 간직하니 혜민국, 전의감에서 만든 것들은 다 팔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이미 그 때 우황청심환이 널리 복용됐던 것이다.

대부분 우황청심환은 중국이 원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기록을 살펴 보면,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김조순이 지은 <열양세시기>도 이 사실을 증명하는 기록 중 하나다.

"북경 사람들이 사신으로 왔을때 최고 인기 품목은 우황청심환이다.우리나라의 사절로 오면 왕공부터 귀인에 이르기까지 앞을 다투어 이것을 얻으려 했다. 왕왕 그 성화에 못이겨 약방을 중국에 가져가서도 만들 수 없었다. 기이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연경에는 우황이 없고 낙타황으로 대용하기에 설사 약방에 따라 만들어도 효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우황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중국에서는 소 외에도 낙타, 야크, 물소 등 다양한 소과 동물에서 우황을 얻었다. 기록에 언급된 낙타황은 타황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우황청심환의 원료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가장 좋은 품질은 역시 황우에서 얻은 것. 삼국사기에도 신라에서 인삼과 더불어 외국 사신의 선물로 우황이 선호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 우황청심환. ⓒ프레시안
우황은 소의 담낭, 담관 속에 생긴 결석이다. <본경소증>에서는 이것의 생성 원인을 놓고 이렇게 설명한다.

"봄철에 전염병(바이러스성)이 돌면 소도 독을 마신다. 독은 육체와 정신의 빈곳으로 공격한다. 소는 튼튼한 육체와 고삐가 낀 순종하는 마음으로 틈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정기를 모아 독을 진압한다. 독은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모하고 내부에서 응결한다. 이런 힘의 정수가 우황이다.이 튼튼한 힘의 정수는 정서장애나 열성경련을 치료한다."

옛사람은 우황이 든 소를 어떻게 구별했을까. 다시 <본경소증>을 살펴보자.

"소의 몸속에 우황이 있으면 밤에 몸에서 빛이 나고 눈에 핏발이 있으며 수시로 반복해서 운다. 사람을 두려워하며 물에 자기 모습을 잘 비춘다. 동이에 물을 받아서 소한테 대주면 웩웩거리다가 물에 우황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렇게 외관만 봐서는 우황이 있는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황을 구하기 위해서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기록이 곳곳에 등장한다. 숙종의 일화는 대표적이다. 숙종은 평생 온갖 질병을 안고 살았다. 시쳇말로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병이 심해지자 재위 39년 생우황을 대궐 안으로 들이라고 명령한다.

수백 두의 귀한 소가 도살되었지만 그래도 우황을 구해지지 못했다. 결국 이 때 아닌 소 학살을 보도 못한 신하들이 만류하는 상소를 올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우황에 집착했던 왕은 숙종뿐만이 아니었다. 역시 병치례가 잦았던 정조도 우황을 좋아했다. 그는 우황을 먹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우황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방법은 약물 성질에 근거한다. 지방은 가장 분해하기 힘든 것이다. 담즙은 본래 인체에서도 지방을 분해한다. 소의 농축된 담즙인 우황은 침투력이 가장 강하다. 엄지 손톱에 침을 묻혀서 우황에 손톱에 그으면, 손톱 속으로 약물이 침투해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황청심환의 기원은 <태평혜민화제국방>이라는 책에서 기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의보감>을 처방의 기준으로 삼는데 약량이나 약물 구성이 차이가 약간씩 있다. 약량에서는 <동의보감>이 <태평혜민화제국방>의 10분의 1 정도 양이고, 약물 구성에서는 경면주사가 첨가되어 심신의 안정 작용이 강화되었다. 이 점은 허준이 <본초휘언>이라는 책을 참고한 덕분이다. "우황은 심을 치료하는 약물이지만 주사와 함께 쓰면 안정시키는 기능이 더욱 커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황청심환의 구성 약물은 29가지에 이를 정도로 많다. 대부분 구급약으로만 알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크게 보면 세가지 처방을 합해서 만든다. 대산여원중(산약, 감초, 천궁, 행인, 맥문동, 방풍, 백작약, 백출, 백복령, 시호, 길경, 신곡, 당귀, 대두황권, 계피), 자감초탕중(감초, 생강, 계지, 대추, 인삼, 맥문동, 아교), 구미청심원중(포황, 서각, 황금, 우황, 영양각, 사향, 용뇌, 석웅황, 금박)이 그것이다.

대산여원은 질병 후에 기가 회복되지 않았을때 쓰는 보강 약물이고 자감초탕은 심장의 힘이 떨어져 생기는 부정맥에 사용하는 처방이여서 공격적이지 않다. 최근에 중독성이 있는 약물은 모두 제외되었다. 여기서 중금속으로 알려진 석웅황과 주사의 사용은 금지되었으며 서각은 코뿔소의 뿔인데 포획이 금지되어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 중국의 청심환은 구미청심원의 처방만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열 받는 세상에 우황청심환은 좋은 약이다. 최근의 청심환은 우리가 근심하는 만큼 강하거나 공격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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