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금융감독원과 함께 금융기관에 대한 공동검사 권한을 갖게 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될 전망이다. 또 한은의 목적조항에 물가안정과 더불어 금융안정 기능이 더해졌다.
국회 기획재정위는 7일 전체회의를 열고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획재정위는 관련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겼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개정안을 제출한 지 1년4개월만이다. 기획재정위는 지난 4월 경제소위에서 입법안을 의결했으나 법안 의결은 미뤄왔다.
표면적으로 한은의 목적조항이 두 가지로 늘어난 게 달라졌다. 이번 개정안은 한은의 설립목적에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할 때 금융안정에 유의한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이는 지난해 불거진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은이 물가안정에 치중하느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통화정책을 제 때 수립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최종 확정되면 한은은 경우에 따라 금융안정을 위해 물가안정 목표를 다소나마 희생시킬 수 있게 된다.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내년부터 3년간 적용할 중기 물가안정목표를 기존 2.5~3.5%에서 2.0~4.0%로 0.5%포인트씩 늘린 것을 감안할 때, 금융안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한은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졌다.
보다 큰 변화는 한은이 금융기관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검사권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한은은 금융기관에 구제금융 성격의 긴급여신을 제공할 때, 해당 기관의 금융 상황을 조사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한은의 오랜 숙원으로, 이번 개정안을 두고 한은과 금융위가 오래도록 신경전을 벌여왔다. 금융위와 재정부는 한은에 검사권을 주는 시기를 보다 미뤄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통화신용정책 범위도 넓어졌다. 은행권의 지급준비금 적립대상을 예금으로 한정하지 않고 금융채 등 유사예금상품으로 확대했다. 비은행 금융기관도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를 겪을 경우, 한은이 금통위 의결로 여신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지난 9월 체결한 `정보공유 및 공동검사(MOU)` 내용을 한은법 88조에 반영하기로 했다. 한은과 금감원 사이의 업무 협조 형태에 머물렀던 '공동검사'를 법적으로 보장하기로 한 것이다. 금감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한은의 공동검사 요구를 지체하면 단독으로 검사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한은이 운영하는 지급결제망에 참가하는 기관 등에 대해서도 금감원과 공동검사를 실시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검사권한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맡는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번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한은이 금융채 등에 지급준비금을 부과하는 지준제도는 은행의 대출금리를 높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한은이 금융권을 손아귀에 넣도록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발 후퇴한 개정안…한은 '볼멘 소리'
이와 같은 우려가 감안돼 당초 거론되던 원안은 개정안에서 대폭 축소됐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동시에 도모해야 한다"는 내용은 "금융안정에 유의한다"는 조항으로 수정됐다. 처음 검사권 부여 논의 당시 단독조사권까지 거론됐던 한은의 금융기관 검사권한도 직접조사권 발동요건을 대폭 강화해 제한적으로 운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금융기관에 대한 중복 감시 논란이 빚어졌던 사전적 조사권한은 폐지됐다.
지급결제제도와 관련해서는 당초 2700여개 전 금융기관에 대한 단독조사권을 부여토록 한다는 이야기까지 거론됐으나, 개정안은 한은이 운영하는 지급결제망에 참가하는 127개 금융기관(은행+일부 증권·보험사)과 3개 민간 지급결제제도 운영기관(한국거래소, 증권예탁원, 금융결제원) 등 130여 곳으로 감독대상을 줄였다.
당초 이들 부문에 대한 감독권 논의가 나온 까닭은 자통법 시행 등 금융결제환경이 바뀌면서 한은이 은행 이외에 새로 결제망에 들어오는 기관들의 시스템 안정검사도 해야한다는 의견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은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사실상 금융권 전체를 손아귀에 쥐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개정안이 축소돼 나오자 한은 일각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은의 한 고위직 인사는 "지준제도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지준율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금융기관의 발목을 잡는 원인, 시중금리를 올리는 원인은 사실상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아니냐"며 "금융채에 지준율을 부과하는 대신 정기예금 등은 요구사항을 낮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어찌됐든 기준 제도가 바뀌는 만큼, 조만간 금융채 지준부과를 포함해 전반적인 지준율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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