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보이는 예술이요. 때문에 어렸을 때는 테크닉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얼마만큼 돌고 얼마만큼 뛸 수 있는지, 그걸 잘 해야만 훌륭한 무용수라고 생각했고 제가 보는 관점도 그것이었죠. 지금은 그것보다 연기를 많이 보게 돼요. 해외 유수의 훌륭한 무용수들을 보며 많이 공부하고 있어요. 발레를 꼭 모르더라도 연기는 누구나 알 수 있잖아요. 발레를 처음 보시는 관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발레리노 이영철이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무대에 오른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왕자와 그 왕자의 내면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공주 오데뜨를 백조로 만들어 죽이려고 하는 악마 로트바르트 역을 맡았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은 날다시피 뛰고 정신없이 돈다. 얼마 전 성황리에 막을 내린 발레 '왕자호동'에서 이영철은 호동왕자와 필대장군 역을 동시에 소화한 바 있다. 언론과 대중의 기대를 모았던 발레 '왕자호동'이 끝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지 겨우 2주. 그리고 또 다시 2주 후면 발레 '백조의 호수'가 무대에 오른다. 그는 도대체 언제 쉴까. 몸이 남아나기는 할까.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물었다.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대신 연습 끝나면 꾸준히 운동을 해요. 저희가 매일 뛰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운동을 또 하느냐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력이 약해져서 뛰다가 다칠 수 있거든요. 끝나고 나서 약 두 시간 정도는 꼭 운동을 하려고 해요. 스트레칭도 하고요."
발레리노 이영철은 딱 봐도 남자답게 생겼다. 그야말로 요즘 말하는 '훈남' 스타일이다. 뚜렷하고 강한 인상의 외모와 달리 차분하고 여유로운 말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만든다. 편안한 이 무용수는 포용력 있고 친근한 옆집 오빠처럼 동네에서 농구하기를 즐겨할 것 같았다. "운동을 많이 좋아했어요. 농구도 좋아하고 배구, 야구 등 다 좋아했죠. 친구들과 우르르 나가서 무조건 함께 했어요." 그러나 발레를 시작한 후로는 이 모든 즐거움을 포기했다. "많이 아쉬워요. 이제 겨울인데 보통 겨울이면 스키 타는 걸 많이들 좋아하잖아요. 저희 같은 경우는 잘못하다 다치면 거의 1년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발레단 입단하고 스키 등의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요. 너무 하고 싶은데 다칠까봐 못해서 아쉬워요." 그럼 이 건장한 남자는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할까. "주로 영화 많이 봐요. 특별한 활동보다는 마사지 받으러가고 사우나 가고 이정도. 발레단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대부분이고 비슷해요. 저희끼리 많이 어울리죠."
이영철은 발레 '백조의 호수'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좋게 말하면 원숙미지만 결국 나이가 드는 거죠. 백조의 호수에서 왕자는 성인식을 치르는,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청소년이잖아요. 그런 왕자를 표현하려고 어리게 생각하는 등의 노력을 해요. 어쩌면 외향적은 부분을 보기에는 예전이 훨씬 나을 수도 있죠. 그러나 그때는 경험이 없었고 어렸기 때문에 한 장면에 대한 연구를 거의 못했어요. 지금은 많이 생각하고 해외 발레단의 다른 버전을 보고 참고해요."
유리 그리가로비치 볼쇼이 버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악마 로트바르트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다른 버전에서 로트바르트는 지그프리트 왕자와는 별개의 인물인 악한 마법사로 표현된다. 반면 그리가로비치 버전에서는 이 악마가 지그프리트 왕자의 또 다른 내면, 즉 '악의 근성'이라고 표현된다. 이 두 역을 소화해야하는 발레리노 이영철. 그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는지 물었다. "우선 아다지오. 발레 '백조의 호수'의 아다지오는 어떤 무용수나 한번쯤 꿈꿨을 거예요. 선율도 너무 아름답고 백조들이 이루는 라인 또한 아름다워 어떤 버전을 봐도 좋아요. 또 이번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의 '백조의 호수'는 1막에서 왕자가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이 마음에 들어요. 애착도 가고요. 이 부분을 위해 많이 연구하고 연습하고 있어요. 나름대로의 색을 내려고 노력하는데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네요."
이번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이영철은 발레리나 박슬기와 호흡을 맞춘다. "활기차고 재미있고 걱정도 많은, 좋은 명수에요. 슬기는 준비기간이 짧아 걱정을 하는데 반면 저는 처음 함께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를 많이 했어요. 팔 라인이 굉장히 예쁜 친구예요. 백조의 경우 팔 쓰는 부분이 많거든요. 키는 제가 훨씬 큰데 팔 길이는 비슷할 정도죠." 이영철, 박슬기 팀만의 장점이 있는지 물었다. "자랑하라면 민망한데…. 일단 길고요, 라인이 조금 더 시원시원하다는 것?" 무엇보다 팀의 호흡이라고 전했다. "성격이 굉장히 잘 맞아요. 서로 배려하고 있죠. 항상 상의하고 대화하는데 의견 조율하는데 있어서 편해요. 이 호흡이라는 것을 무시 못해요. 두 사람의 기가 잘 어우러져 완벽한 하나로 이뤄 나가야하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는 큰 장점이죠."
그가 관객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박슬기, 이영철만의 백조의 호수가 탄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공연을 보신 분들이 '관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끔 노력하고 있으니 기대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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